- 한국에서 즐기는 해외여행 1, 외국 분위기 물씬한 정원(윤성의)-

 


* 2016. 8. 16(화) KBS제1라디오 '라디오 전국일주' 방송분입니다.

* 아래글은 제 로그의 글 (엘레강스한 주인의 손길이 구석구석, 한려수도의 꽃 외도..)를 중심으로 재구성한 원고입니다.





안녕하세요. 라디오 전국일주 청취자 여러분. 한창 휴가철인 이맘때면 새로운 풍경과 경험을 찾아 해외로 나가는 여행객들로 공항이 연일 북새통이라는 기사를 많이 보실 텐데요, 저는 이번 한주동안 청취자 여러분께 해외에 나가지 않고도 즐길 수 있는 이국적인 풍경들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이번 한 주 저와 함께 국내 곳곳에 숨어있는 외국 분위기 물씬한 여행지들을 돌아보시면서, 진부하다거나 잘 안다고 생각했던 곳에 숨어있었던 낯섦 한조각, 설레임 한조각을 찾아보시면 어떨까요.

오늘 먼저 소개시켜 드리고 싶은 곳은 외도 보타니아 해상공원입니다. 외도는 깨끗하고 푸른 남해 바다와 경관이 수려하기로 이름난 한려해상국립공원 안에 위치하고 있는 해상공원입니다. 동양의 하와이라는 별칭도 있다고 할 만큼 온난한 기후에 물이 풍부해 여러 이국적인 아열대 식물들이 가득한 작은 자연 공간에, 지중해의 어느 해안도시처럼 유럽 스타일로 공들여 꾸며진 건물과 조경들이 무척이나 인상적인 곳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이전부터 섬에 대한 로망이 있었습니다. 한쪽 끝에 서면 다른 쪽 끝이 보이는 그런 조그마한 섬. 외도는 그 정도로 작지는 않아도, 불쑥 올라선 섬의 중앙부에선 섬의 가장자리가 닿을 듯 가깝게 보일만한 크기인지라 정원으로 꾸며진 섬 전체가 한눈에 보입니다. 그 너머 섬들이 가득한 남해바다가 희끄무레한 바다안개를 덮은 채 버티고 있었구요.

그렇다 보니 대략 한시간의 산책로는 그대로 섬의 외곽을 따라 한바퀴 도는 길입니다. 판판한 평지에 조성된 정원이 아니라 제법 오르내림이 있는 조그마한 언덕 같은 섬에 조성되어 있으니, 산책로를 걷는 재미도 더 큰 거 같았습니다. 더러는 잘 다듬어진 높은 야자수들로 울타리쳐진 길을 오르기도 하고, 아니면 야트막한 정원수들이 양쪽에 열지어 있는 길을 조심조심 내려오며 전체 섬을 내려보기도 하구요.

프랑스 식으로 네모반듯하게 잘 다듬어진 비너스 가든과 벤베누토 정원은 외도의 한복판, 그야말로 외도 정원의 노른자위라고 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중간중간에 놓인 이국적인 느낌의 벤치나 조각상들 역시 바닷바람에 씻기고 적당히 헐어보여서 오히려 더 맘에 들었습니다. 괜히 유럽이나 그리스식의 분위기를 흉내내느라 억지로 힘줬다는 느낌이 아니라, 이제 외도 보타니아만의 고유한 분위기를 자아내기에 이르렀달까요.

한바퀴 설렁설렁 돌아보고 선착장에 내려서기 직전, 외도의 마지막 포스트인 '외도 갤러리'에선 특히나 그곳에서 바라보는 바다쪽 풍경이 참 좋았습니다. 천장이 높아 바람이 숭숭 자유로이 드나드는 커다란 정자 같은 곳에 삼삼오오 앉아서는 바닷바람도 맞고, 멀찍이 바다에 시선을 던져둔 채 가만히 앉아있는 것. 바다랑 섬들이랑 사이좋게 어깨겯고선 남해의 풍경 덕분에 마음이 따뜻하게 차오르는 느낌이었습니다.

외도는 국내 유일의 해상농원으로, 놀랍게도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섬이라고 합니다. 부부가 1969년부터 수십년간 지극정성으로 가꿔온 섬, 곳곳에서 묻어나는 그분들의 개인적인 취향과 안목을 살펴보는 재미도 각별하지만 그분들의 자연에 대한 애정과 오랜 세월 쏟아오신 노력도 잊지 말아야 할 부분입니다. 자연에 거스르지 않으면서 이런 독특하고 고유한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도, 흔히 우리가 빠지기 쉬운 개발이냐 보존이냐, 라는 양극단 이외의 길이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해주니까요. 지금까지 낯설게만 볼 수 있다면 어디서든 여행이 시작된다고 믿는 윤성의였습니다.

꼭 이름난 곳, 유명한 곳을 따라 다니는 것말고도 재미난 일들은 많다. 동네 마실삼아 설렁설렁 카메라 들고 다니면서


만나는 풍경도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으니. 낯선 눈으로만 볼 수 있다면. 그리고 마음의 여유가 1만 있다면.


특별한 뭔가가 있지는 않지만, 그냥 짠 바닷바람을 맞아가며 천천히 낡아가는 마을의 살아있는 풍경들.


인공잔디밭이 넓게 펼쳐진 너머에는 야트막한 울타리, 그리고 바로 짙푸른 남해 바다.


몇명이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샛노란 스쿨버스 두대가 얌전히 커다란 아름드리 나무 아래에서 쉬고 있는.


논밭 한켠에는 이렇게 생활하수가 흘러내리는 '싱크홀'.


그리고 이름과 외관의 이 아이러니도 참, 온통 낡고 헐어보이는 아주아주 오래된 새마을농업창고. 


그리고 이 오랜, 담쟁이조각이 눌어붙어있고 온통 붉은 녹물이 흘러내리는 철문짝.


언제 마지막으로 열렸을까 싶도록 오랜시간 아무도 접근하지 않은 듯한 철문이었다. 


그리고 등이 굽은 자전거 라이더.


굴양식을 위해 바다속에 걸어두는 조개껍데기들. 여기에 매달려 자라는 건가.





강물이 바다와 만나는 하구쪽에서, 이 나무 울타리는 왜 때문에 설치해 둔 건지 모르겠지만 새들의 좋은 쉼터가 된 듯.






바닷가 아스팔트길은 온통 갈라터지고 깨져있기 일쑤, 그 틈새에 머리박고 자라난 물색없는 이파리들.


바닷가를 떠나 크게 우회해서 마을로 돌아가는 길. 각기 다르지만 오묘하게 비슷하게 바랜 빛깔의 슬레이트로


누덕누덕 기워진 지붕이 눈길을 끈다.


그리고 벌겋고 퍼런 차양이 갈기갈기 찢겨있는 어느 헛간.



그나저나 사람 한명 구경하기가 쉽지 않은 동네다. 아까 배 떠나갈 때 두어분의 어르신이 타시는 거 보고 계속 혼자.


이 가로등은 언제 이렇게 기세가 꺽여서는 바다를 굽어보고 있는 걸까. 지난 태풍쯤이었으려나.




남해군의 맨 아랫곁, 남해 바다를 향해 싹둑 잘린 느낌의 가파른 경사를 따라 토막토막 논을 일군 오랜 흔적. 다랭이논.



한창때의 짙푸른 녹음이 그악스런 산복판이나 계단처럼 차곡차곡 내려오는 논밭이나 시퍼렇기는 매한가지.


구름다리 두개가 듬성하니 지나가며 바닷가의 날카로운 바위들을 가로지른다.


다랭이논조차 만들 엄두를 낼 수 없도록 깍아지른 바닷가 가파른 절벽이 병풍처럼 이어지고.


바다 저아래 수천년 수만년 파도에 시달렸을 바윗덩이는 평생 땅을 파먹고 사느라 거북이 등껍질처럼 딱딱했던


할배의 손등같기도 하고.



한발 멀찍이서 보면 온통 빽빽하게 무성한 초록 지천이더니 가까이 다가서면 이런 산책로와 논두렁길이 숨어있다.


다랭이논이 산의 사면을 따라 슬금슬금 올라가는 모습.




역시 여름이다. 사람들이 꽤나 오다녔을 텐데도 서슬이 퍼런 잎사귀는 손바닥보다도 크게 자라나 길을 가렸다.



해남 땅끝마을에 비해서는 조금 북쪽에 위치해있다지만, 느낌으로는 거기 못지않다. 땅끝의 느낌.







남해 다랭이마을을 돌아보는 길은 '남해바래길'의 일부로 다랭이지겟길 코스라고 한다. 남해의 수려한 풍광을 한켠에


두고 반대로는 산비탈을 깍아만든 다랭이논을 지나볼 수 있는 트레킹코스.


한국의 아름다운 다리 중 하나로 손꼽히는 남해대교, 마치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와 같은 현수교이자 붉은 색감이


인상적인 다리이기도 하다. 충북 괴산이나 전북 무주보다 더욱 접근성이 떨어지는 남해에 들어가는 관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오지이니만치 한번 가서 제대로 돌아보는 것이 좋을 듯 하다.




 

부산에 놀러갈 때마다 슬쩍슬쩍 걷던 길이, 멀리 청사포항에서 달맞이고개, 달맞이고개에서 해운대를 지나 동백섬,

 

동백섬을 지나 광안리해수욕장까지 걷게 되다 보니 얼추 바닷가를 따라 내려오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된거

 

계속 이어서 가보자고 시작한 길이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이기대 공원을 지나 오륙도까지.

 

처음에 광안리해수욕장의 모래사장을 사부작사부작 걸으며 지날 때만 해도 그 코스가 의외로 길고 힘들 줄은

 

몰랐던지라 카메라며 노트북이 든 가방을 그대로 메고 걸었던 거다.

 

 

이렇게 바닷바람에 온통 시퍼렇게 녹이 슬고 만 송수구에도 굳이 무릎을 꿇어가며 사진을 찍을 만큼 여유롭던 출발.

 

그리고 이렇게 낚시대 네다섯개를 일정하게 벌여놓고 고기를 기다리는 아저씨 옆에서 잠시 구경할 만큼 느릿느릿.

 

 

길에 표지판도 있고 걸어온 거리, 앞으로 걸어가야 할 거리가 적혀 있긴 했다지만 꼭 끝까지 갈 생각도 아니었고,

 

그냥 되는 대로 설렁설렁 걸으며 사진이나 찍을 생각이었으니까.

 

 

 재미있는 조형미를 가진 등대를 구경하기도 하고.

 

 부산의 세찬 바닷바람에 떨어질세라 케이블타이로 꽁꽁 묶인 화분들의 열차놀이.

 

 어라, 그러다 보니까 이기대해안산책로의 입구쯤이다. 그리고 비로소 한눈에 잡히는 광안대교와 해운대 신시가지.

 

 제법 시가지와 떨어져 흙길을 밟는 느낌이 좋았다. 마치 울릉도나 제주도 올레길을 걷는 느낌같기도 하고.

 

 

 이기대 해안산책로 초입의 웨딩홀이던가, 한적한 까페가 있는 곳에서 잠시 앉아 딴짓도 하고 책도 보고.

 

역시 이때만 해도 이기대 해안산책로가 한번 걷기 시작하면 중간에 빠져나오기가 힘든 통발같은 코스란 걸 몰랐다.

 

어쩔 수 없었다. 계속 걸어갈수록 광안대교와 해운대를 함께 바라볼 수 있는 더 멋진 각도와 뷰포인트들이 나타났다.

 

 

 

예컨대 이런 장면. 우와...감탄감탄.

 

 

그리고 해안산책로를 따라 계속 이어지는 해안선의 거칠고 투박한 분위기도 맘에 들었다.

 

 

 

 

날씨가 많이 따뜻해지긴 했는지 야외촬영중인 예비부부들도 보이고, 곳곳에 커플들이 해바라기중이다.

 

 

나중에는 해가 지고 나서도 한번 와봐야겠다고 생각한 게, 영화 '해운대'에 나왔던 야경을 보던 장소가 여기라나.

 

아...이즈음부터 풍경이 살짝 등산과도 같다 싶었는데, 돌아나왔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왠지 한쪽에서 약숫물이 이렇게 흐르는 풍경도 그렇고.

 

 

 

다소 지루하다 싶도록 녹색의 짙은 숲길을 헤치고 나가는 해안산책로, 사실 제법 오르내리막도 있고 풍경도

 

심심하진 않았지만 전날의 숙취와 며칠전의 지리산 둘레길 트레킹 덕분인지 조금 녹색에 질려있던 참인 듯.

 

그래도 결국 이 구간의 종점이라는 오륙도까지 도착하니 좋다. 어쩌면 숲길을 뚫고 사람 사는 동네로 나왔다는 게

 

좋았는지도 모르겠지만. 늦게 출발하고 여유부리다보니 사실 바다아래로 넘어가려는 해가 조마조마했었다.

 

오륙도 전망대에 꽂힌 화살표들. 도쿄와 엘에이와 독도, 홍콩, 그리고 뜬금없는 질문이 하나. 당신과 나의 거리는?

 

언젠가 해운대의 바다를 보면서, 그리고 광안해수욕장의 바다를 보면서 여기는 동해인지 남해인지

 

궁금해했던 때가 있었다. 어차피 인간들이 붙인 자의적인 구분이긴 하지만, 비로소 여기에서 해답을 발견.

 

오륙도는 동해와 남해를 구분하는 분기점, 그러니까 오륙도 동쪽의 해운대니 광안리 앞은 동해바다 되시겠다.

 

오륙도에 좀더 가까이 다가가 내려다볼 수 있는 스카이워크도 있더라는. 오후6시인가가 마지막 시간대여서

 

들어가 밟아보진 못하고 이렇게 멀리서 어찌 생겼는지나 한장.

 

보는 각도, 그리고 밀물썰물에 따라 다섯개로도 보였다가 여섯개로도 보였다가 해서 이름이 오륙도.

 

이제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 라는 노래가사에 떠올릴 수 있는 풍경이 생겼다.

 

알고보니 이곳 오륙도에서부터 해운대 끝의 미포까지가 동해를 따라 걷는 해파랑길 1코스란다.

 

지자체마다 해파랑길이니 갈맷길이니 강릉바우길이니 강화 나들길이니, 온갖 이름으로 트레킹 코스를 만들어놨지만

 

이런 식의 난립은 조금 곤란한 거 같기도.

 

그러니까 저 굽이굽이의 이기대 해안산책로를 지나 광안대교를 따라 광안해수욕장을 걷고 동백섬을 휘감아 한바퀴

 

돌아본 후에 해운대 해수욕장을 따라 달맞이고개까지, 대략 14키로정도의 해파랑 1코스.

 

삽시간에 해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가방은 사정없이 어깨를 조여와서 택시를 잡아탈까 하다가 눈앞에 버스정류장이

 

나타났다. 종점인지 버스 몇대가 출발시간을 기다리는 중이었고, 온통 바닷바람에 녹슨 양철표지판이 삐걱대던 곳.

 

마지막으로 눈에 담은 오륙도의 모습. 제법 듬성듬성 초록빛 머리칼이 풍성한게 아직 미중년의 모습이다.

 

 

 

배 위에서 화장실이 급할 만큼 긴 시간 배를 탄 적이...부산에서 후쿠오카 건너갔던 때 말고는 없었던 거

같다. 그 쾌속선이야 워낙 시설이 잘 갖춰져 있었으니 딱히 화장실이 눈에 띌 만큼 특징적이지도 않았지만,

남해의 소매물도니 외도를 돌아보는 이 유람선에 이렇게 설치되어 있는 화장실은 신기했던 거다.


뭐,이런 화장실에 눈이 갈 만큼 긴 시간 배를 탔던 것도 이유겠고, '소변만 가능'하다는 저 협소하고 불편해

보이는 조그마한 공간이 불쑥 혹처럼 튀어나온 게 눈에 잘 띄기도 했고. 살짝 문을 열어보고는 그 강렬한

냄새와 위생상태에 질겁을 하며 문을 닫아버렸다는.

사실 파도만 좀 잔잔해서 바다가 거울같이 반반하고 실크처럼 매끈하다면, 그래서 배가 전혀 요동이 없고

흔들거리지 않았다면 화장실이 그렇게까지 되어버리진 않았을 거라 짐작해 본다. 배 위에서 일을 본다는 건

일종의 거대한 천재지변과 정면으로 마주하겠다는 의지, 그 의지로 자폭해버리거나 뒷사람에 민폐를

끼치는 걸 막기 위해 아마도 '소변만' 가능하다고 읍소한 거였나 보다.




남해 구조라 선착장, 외도나 소매물도로 나갈 수 있는 유람선을 타는 곳이다. 생각보다 조그마한 선착장

앞에 컨테이너 하나가 덜렁 있다 했더니 화장실. 그야말로 제일 기본형의 화장실 표시를 달아두고 있다.

뻣뻣하게 선 채 두 팔을 늘어뜨린 파랑색 사람의 이미지.

여자화장실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남자화장실 표시랑 비교하니 드러나는 몇가지 흥미로운 지점.

우선 남자와는 달리 다리를 딱 붙이고 섰다는 점, 아마도 현숙하고 조신한 모습을 알게 모르게

주입하려 했던 걸까. 그리고 양쪽으로 한옥 처가지붕마냥 휘영청 올라간 치마의 흔적. 여자는

전부 치마를 입어야 한다는 듯한. 양쪽으로 어정쩡하게 귀여운척 하듯 올라간 두 손은 아마도

치마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거 같기도 하지만, 왠지 애교부리는 포즈같기도 하다.

이렇게 앞에 배들이 둥실둥실 떠 있고, 남해의 수많은 섬으로 떠날 생각에 설레있는 사람들한테 조금은

더 이쁘고 여행 분위기 돋우는 화장실 표지를 보여주진 못한다는 건 좀 아쉽다. 게다가 그냥 기본형의

표지를 썼을 때 알게 모르게 거기에 묻어있는 남/녀의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을 전파하는데 일조하는

건 아닌가 싶어 더욱 아쉽다. 지자체에서 이런 부분들을 좀만 더 신경쓰면 충분히 명물이 될 수 있을 텐데.

올린 김에, 구조라 선착장에서 외도나 매물도로 떠나는 유람선 요금표. 2011년 2월 기준.




* 여행을 다니며 결코 빠질 수 없는 '답사지' 중 하나가 그곳의 화장실이란 점에서, 또 그곳의

문화와 분위기를 화장실 표시에까지 녹여내는 곳들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국내외의 특징적인

화장실 사진을 모아보고자 합니다. 자신이 본 최고의 화장실 표시를 제보해주실 분은 댓글을

부탁드립니다~!

외도에서 촬영되었다는 옛날옛적의 드라마, '겨울연가'를 알리는 낡은 간판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2002년 드라마였던가..했다가 문득, 군대가는 바람에 마지막 엔딩을 못봤었단 생각이 떠올랐다.

근데 정말 어떤 장면에서 외도가 나왔던 거지? 전혀 기억에 남는 게 없는 걸 보면 내가 놓친 엔딩?

국내 유일의 해상농원,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섬으로 개인적인 취향과 안목이 그대로 투영된

이국적인 아열대 식물들, 평소에 관리가 얼마나 잘 되고 있는지를 느끼게 하던 범상치않은 조경.

온통 하늘로 치솟은 덤불의 끄트머리가 무슨 탑의 형상같기도 하고, 에너지가 뻗쳐나가는 거 같기도.

동양의 하와이라 불리기도 한다는 외도에서 눈에 띄던 건 역시 육지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아열대의 식물들, 황금빛에 가까운 신기한 빛깔을 뽐내던 요 신기한 풀떼기처럼.

산책로를 따라 걷는 길, 한바퀴를 도는데 대략 한시간 정도 소용된다니 걷기 전에 몸을 가볍게

하는 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이 엘레강스한 화장실 표지 역시 섬주인의 취향이 그대로

묻어나는 하나의 특징적인 포인트일 텐데 조금 거창하단 느낌이 없진 않았지만 이쁘다.

화장실 표지도 표지지만, 전지역 금연을 실시할 정도로 환경을 보호하기에 열심인 이 작은 섬에선

빗물을 저장시설에 모아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아마도 섬이 작아 딱히 물이 있지는 않은가 본데,

이렇게 많이 다녀가는 관광객들을 소화하려니 이런 부탁을 할 수 밖에 없을 듯.

정말이지 깔끔하게 전정된 가로수들, 가지들을 툭툭 쳐낸 모양새가 인상적이다. 옷걸이로 쓰면

딱 좋겠다 싶은 생각도 들고, 저기에 잘못 부딪히면 푹 박히는 거 아닌가 싶어 지레 소름돋기도

하고. 저런 곳의 나무를 켜내면 옹이구멍이 송송 박혀있는 거 아닌가.

2월의 매화꽃. 짙은 초록색의 두텁고 반들거리는 울창한 잎사귀 사이에서 샛노란 술을 가진

새빨간 꽃들이 촘촘이 박혔다. 슬쩍 잎사귀를 차양삼아 햇살을 가리려는 듯한 꽃잎의 제스처가

사랑스럽다.

판판한 평지에 조성된 정원이 아니라 제법 오르내림이 있는 조그마한 산 같은 섬인지라, 이렇게

산책로를 걷는 재미도 더 큰 거 같았다. 더러는 높은 나무로 울타리쳐진 길을 오르기도 하고,

아니면 저런 야트막한 정원수들이 양쪽에 줄서 있는 길을 조심조심 내려오며 전체 섬을

내려보기도 하고.

조금 당황스러웠던 공간, 외도에서 가장 뭐랄까, 이질적이고 뜬금없다 싶었던 공간이었던 거 같다.

물론 갠적으로. 이름하여 '비너스가든'과 '음악당'. 루브르박물관에서 봤던 니케상 비슷한 것도

하나 서 있고, 그리스 느낌 가득한-그렇지만 꽤나 아쉬운 느낌 역시 가득한-구조물이 바닷바람을

맞고 녹슨 채 서 있었다.

프랑스 식으로 잘 다듬어진 정원은 외도의 한복판, 그야말로 외도 정원의 노른자위라고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조금만 늦게 와서 날도 풀리고 꽃도 좀더 피고 녹색도 좀더 싱싱했다면 더 멋졌을 거 같긴

하지만, 뭍은 아직 겨울바람 씽씽 불어닥치는 2월에 갔어도 꽤나 좋았았던 공간.


중간중간에 놓인 벤치 역시 바닷바람에 씻기고 적당히 헐어보여서 오히려 더 맘에 들었다.

괜히 엘레강스한 분위기를 내려 힘준 게 아니라, 그리고 괜히 유럽이나 그리스식의 분위기를

잡느라 꼬불꼬불한 문양으로 흉내낸 게 아니라 좋았다.


같이 갔던 사람들이 여긴가, 여긴가 했다. '겨울연가'에 나왔던 장면이, 나왔던 외도의 풍경이

여기 어디선가 찍혔던 건 아닐까 추측이 난무했던 곳.


곳곳에 숨어있던 귀여운 소품들, 고양이 가족들의 익살맞은 표정도 맘에 쏙 들었지만 색색깔의

기린들이 보이는 시크한 표정과 우물대는 듯한 입모양이 참.

외도의 주인이 얼마나 조경에 힘쏟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몇그루의 잘 가꿔진 나무들.

남자사람 머리만 해도 삐쭉삐쭉대지 않도록 잘 다듬어주려면 삼주에 한번씩은 깎아줘야 하는데,

작다고는 하지만 이 섬 전체를 정원으로 꾸며버린 스케일을 감안했을 때 정말 얼마나 손길이

필요한 일일까. 하나 흐트러짐이나 지저분한 구석없이 이렇게 관리하려면. 



양배추처럼 생긴 꽃..저거 이름이 뭐더라, 맨날 듣고는 까먹어버리는 이름의 꽃들 사이로

곰발바닥이 새겨진 시멘트 바닥을 따라가면, 지금은 출입통제된 정원의 어느 샛길이 나타난다.

막혀있단 거 뻔히 보이지만 곰발바닥이 귀여워서 일단 따라 걷고 보는 단순한 걸음걸이.


이전부터 섬에 대한 로망은 있었다. 한쪽 끝에 서면 다른 쪽 끝이 보이는 그런 조그마한 섬.

외도는 그정도 사이즈는 아니어도, 불쑥 올라선 섬의 중앙부에선 섬의 가장자리가 손에 닿을듯

가깝게 보일만한 사이즈. 정원으로 꾸며진 섬 전체가 한눈에 보였다. 그리고 그 너머 섬들이

가득한 남해바다가 희끄무레한 바다안개를 덮은 채 버티고 있고.

기묘하게 생긴 벤치, 아마도 커다란 죽은 나무를 다듬어서 만든 거 같기도 하고. 그리고 어디론가

통하는 샛길 하나가 또 나무를 얼기설기 엮어 만든 귀여운 바리케이트로 막혔다. 자연스런

나무의 휘어짐이나 모양새가 그대로 살아있는 느낌이 좋다.

날씨에 따라 대마도까지 보인다는 전망대, 오백원짜리 동전은 내가 어렸을 적 통일동산이나

판문점 같은 곳에 올랐을 때부터 변치않는 가격인 거 같다. 물가는 미친 듯이 뛰었어도

전망대용 망원경 가격은 십여년째 그대로.


날이 흐리고 해무도 끼어서, 게다가 딱히 망원경까지 동원하지 않아도 섬 너머는 전부 바다니깐

그냥 맨눈으로 보아도 이쁘다. 그리고 전망대 아랫자락으로 펼쳐지는 외도의 살갗도 참 이쁘고.

거의 외도를 한 바퀴 돌고서, 선착장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 내려다보이는 '비너스정원'과

'음악당'의 모습이 자그마하니 귀엽다. 그리고 건물 안에서 삥삥 도는 저 계단 역시.


'명상의 언덕'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에 있는 조그마한 교회, 혹은 성당. 사이즈로는 정말

X딱지만하다는 표현이 딱 맞아떨어질 정도로 작지만, 안에 슬쩍 들어가서 바라본 창밖

풍경은 바다랑 섬들이랑 사이좋게 어깨겯고선 따뜻하기 그지없던.


선착장으로 가는 길, 바닥엔 동글동글 까만 돌들이 모여서 이런저런 기하학적인 문양들을 만들고

담백한 풀꽃모양도 떠올려냈다. 그리고 가로수들 그루마다 둘러싼 깔끔한 돌화분에 박혀있는

산뜻한 타일들, 애기들이 지나가다 관심을 바싹 갖고 하나하나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바닥에 하트 모양이 둥실둥실 떠다니는 공간을 발견, 저 은은하고 부드러운 핑크빛의

하트에는 동글동글하고 작은 조약돌로 두번이나 하트모양으로 띠도 둘려 있다. 일종의 이별여행을

떠났던 곳이니만치, 저런 모양 하나하나에 쿡쿡 가슴이 찔려왔지만, 사랑ing인 사람들이야 뭐.


선착장에 내려서기 직전, 외도의 마지막 포스트인 '외도 갤러리'라는데 다른 것보다 그 뷰가

참 좋았다. 천장이 높아 바람이 숭숭 자유로이 드나드는 커다란 정자 같은 곳에 삼삼오오

앉아서는 바닷바람도 맞고, 멀찍이 시선을 던져둔 채 망연하게 넋놓고 있는 것.

배가 선착장을 떠나는 순간. 선착장과 배 사이를 쉼없이 이간질하며 철썩철썩 거칠게 내지르는

파도를 견디어내려면 저렇게 튼튼한 타이어를 빈틈없이 둘러야 하는 거다. 그렇게 하고서도

바닷물과 바닷바람과 파도와 무디고 둔탁한 뱃전에 쓸려 금세 낡고 허름해지는 타이어들을

보고 있으면, 정말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구나. 늘 긴장 가득한 관계구나 싶다. 배와 항구란 거.




통영 미륵산 정상까지, 한려수도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고 나니 발아래 저만치 보이던 잔뜩

갈기갈기 찢긴 듯한 다도해의 수많은 섬들. 정말 저 너머가 바다라고 느끼기에는 너무 빼곡하다

싶을 정도로 크고 작은 섬들이 수평선을 지워버리고 있었다.

섬마다 소보록하게 덮여있는 나무들의 질감은, 마치 습기찬 어느 바윗돌 위에 잔뜩 덮여있는

촉촉한 이끼같이 부드럽고 보슬보슬할 거 같다. 저 너머 너울너울 오르내리는 섬들의 실루엣은

무슨 장대한 산맥이 몇겹으로 놓여있는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


전날 저녁에 횟집에서 푸짐한 상차림을 마주하기 전에, 얇은 비닐이 한 겹 깔려있는 테이블 위에

또르르 물방울이 굴렀었다. 사방으로 퍼진 물방울이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는 땡글땡글 섬처럼

자리잡았다. 한려수도의 수많은 이름모를 크고 작은 섬들처럼.



2월말, 조금 흐려진 하늘이 걱정스러웠지만 소매물도를 위시한 남해바다의 숱한 섬들 사이를

요리조리 헤치고 나가는 유람선을 타고 바라본 바다는 기세등등하게 검푸른 빛깔이었다.

갈매기가 몇 마리 따르고, 어느 지점에서 배가 달리던 간에 가깝고 먼 섬들이 사방을 온통

둘러쳐주는 모습이란. 게다가 그 섬들의 기기묘묘한 풍경까지.



소매물도 십자동굴을 보러가던 차였다. 온몸에서 통통거리는 유람선을 타고서 제법 높은 파도를

뚫으며 달리던 길에 빼어든 새우깡에 갈매기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입이 찢어져라 벌리며 공중에서 과자를 낚아채는 녀석, 그리고 애절하게 손을 내뻗으며

나도 한입..이라고 외치는 듯한 다른 녀석들의 눈짓과 날갯짓이란.

굉장히 시크하게 생긴 녀석들이 새우깡 한두조각에 미친듯이 갸르릉거리며 덤벼드는 걸 보자니

왠지 배신감도 느껴지고 그랬다. 그나마 석모도 가는 길의 그 탐욕스럽고 무시무시한 괭이갈매기

녀석들보다는 훨씬 낫긴 하다만.

슬쩍 보이는 배의 꼭대기 위에서부터 퍼져나가듯 날아가는 갈매기들.

니놈들 중에 조나단은 없는 거냐.






@ 외도, 소매물도.

조그만 선착장 위에 부려진 채 커다란 동물처럼 웅크리고 있던 짐꾸러미와,

어딘가에 그 끝이 묶이지도 않은 채 하염없이 감겨있을 뿐인 투박한 밧줄과,

누군가의 삶과 죽음을 움키고 있었을 구명튜브의 뻥 뚫린 가슴 속으로,

병풍처럼 앞바다를 둘러친 섬들의 어깨를 훌쩍 짚고 넘은 햇살이 달겨들었다.



@ 외도 선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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