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좁고 비싼 서울에서 복닥거리며 버티느니 근교의 괜찮은 땅을 구해 전원주택을 짓고 사시겠다는 것이 우리 부모님의 오랜 꿈이셨다. 마침 건축 쪽에 종사하시는 아버님이신지라 벌써 십여년전부터 어떤 집을 어떻게 지을지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고 고치기를 여러번, 그러다가 올해 4월부터 여러 가지 이유로 전원주택을 짓는 계획이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이제부터 올릴 사진들은 드문드문 내가 가서 찍은 사진들과 아버지가 현장을 관리하며 찍으신 사진들이 뒤섞일 예정이며, 가능한 집이 세워지는 시간순으로 실시간에 가깝게 업데이트하려 한다. 관련한 문의나 궁금한 점들이 있다면 비밀댓글로 남겨주시길.

 

 

21. 첫삽을 뜬 이래로 한달, 중간점검.

 

2015년 5월 23일, photo by myself



이제 건물의 근간은 어느 정도 선 상태, 화창한 날에 현장을 찾아서 요리조리 둘러봤다. 물론 어머니가 지적한 것들을


다시 반영하느라 아버지가 고쳐야 할 일들이 많이 생겼고, 그로 인해 창문이 더 커진다거나 하는 외관상의 변화도


여전히 남아있긴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실내외의 공간 구획은 확정이라 봐도 좋겠다.


개울가 바로 앞에 버티고 선 2층짜리 건물. 아시바..라고 하나, 건물 외벽의 작업용 구조물은 아직 떼어내려면 멀었다.


외벽에는 이제 절반 가량은 현무암으로 치장을 할 예정이고, 나머지 절반도 노출 콘크리트를 좀더 광택있고 부드럽게


다듬어야 하는 작업이 남았다고 한다.



사방에서 둘러본 외관. 


왼쪽 아래가 건물의 입구. 현관 되시겠다. 그러고 보니 건물의 2층 외벽면이 제법 울퉁불퉁하니 느낌이 좋다.



큼직큼직하게 사방에 난 창문들도 그렇지만, 콘크리트 벽면이 그대로 노출될 예정인 곳들의 질감이 눈에 확 띈다.


지금은 다소 거칠어 보이지만 좀 다듬고 광택을 주는 작업을 하면 훨씬 이뻐질 거라고.


타단~ 현관을 거쳐 들어가면 보이는 첫 장면. 


그리고 1층 거실에서 보여질 외부 풍경이다. 좀더 키우기로 했으니 이보다 더 탁 트인 풍경이 보일 듯.


1층 안방의 화장실 창문. 


그리고 안방에서 보이는 바깥 풍경. 


1층에는 거실과 안방, 부엌 공간이 배치될 예정.


이게 아마 부엌이 될 공간에서 내다보이는 바깥 풍경이던가. 


여기가 보일러실..이었던가. 아직 그다지 외부 풍경이 낯익지 않은데다가 내부에도 특징이 없으니 가물가물하기만 하다.


뭐, 하여튼 그렇다. 사방이 초록초록. 그리고 큼직한 창문들이 있다는 사실.



여긴 어디 창문이더라, 아래로 개울이 흐르고 저만치 다리가 놓인 게 한눈에 보이는 게 좋다.


그 와중에도 '어머니 지적사항'은 그치지 않는다. 아버지는 일일이 체크하고 변경이 가능한지, 아니면 더 나은 대안이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시고, 그렇게 두분은 머리를 맞대고 후끈한 토론을 거치며 집을 지으시는 중. 여기는


이만큼 창문을 더 넓히라는 지시가 틀림없이 반영되기로 약조를 맺은 현장.


그리고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간이 계단. 나중에는 저 창문의 우측 경사도에 맞추어 나무 계단으로 제대로


만들어지겠지만 당장 공사중에는 이렇게 생긴, 어떻게든 위로 올라가고 아래로 내려갈 수만 있으면 된다는 계단으로


충분한 거다. 다소 흔들흔들하고 위험해 보이기는 해도 막상 올라가보니 잡을 데도 많고 안전하더라는.



2층 테라스. 다소 고심하게 되는 저 동그란 구멍 디자인. 그대로도 괜찮을지 아니면 다른 개선안이 있을지는 좀더


두고 봐야 할 듯. 어쨌거나 여긴 비오는 날 흔들의자에 앉아서 밖을 바라보며 와인 한병 까기에 딱 좋은 공간이다.


내려다 보이는 풍경.


그리고 2층에는 방이 두개. 그리고 창고가 하나. 여기는 그중 동생이 쓰게 될 방.




여기는 올라오는 계단이 끝나는 바로 옆에 만들어질 자그마한 창고방. 


거기서 내다보이는 바깥 풍경.


그리고 2층의 또다른 방, 내방. 


이건 내방 화장실에서 보이는 바깥 풍경, 주금산의 정상이 선명하게 보인다. 


그리고 옥상으로 올라가는 간이 계단. 나중에 여기는 그냥 막힌 창문으로 마감될 듯.


비좁은 틈새로 가까스로 올라와보면 보이는 풍경. 여기는 이제 길쭉한 고깔 모양의 창문으로 덮일 거니깐.



이웃한 다른 전원주택들. 애초 부모님이 고려했던 모양새 중에도 저런 '유럽식' 고깔 지붕이 잠시 존재했다가


순식간에 지금과 같은 갤러리 형태의 건물로 바뀌었다.



여기는 테라스 바로 위. 이렇게 두개의 구멍이 위로 뚫려 있지만 나중에는 역시 고깔 모양의 창문으로 덮을 예정.




그리고 나중에 건물이 점점 정리되면서 비교해보는 재미를 위해 찍어둔 구석구석. 


아, 여기는 이 집에서 전적으로 아버지의 의지에 따라 만들어진 공간. 나중에 연못이나 수조 같은 식으로 쓰실 거라는데


아직 어떤 형태가 될지는 오리무중.


어느새 한달, 생각보다 집은 빠르게 지어지고 있는 참이다.





 

 설악산 울산바위까지의 등정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 아직 채 농익지는 않았으나 그대로 또 풋풋한 단풍을 눈에 담았다.

 

왕복 네다섯시간의 산행을 마치고 해가 뉘엿해질 무렵, 설악산 초입쯔음에서 문득 돌아본 설악산의 석양. 노란빛과 파란빛이

 

적당히 버무려진 신비로운 하늘 아래에는 금빛을 잔뜩 품은 개울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오전에만 해도 사람이 바글거리던 좌불 동상 앞에는 바삐 걸음을 재촉하는 하산객들만이 띄엄띄엄.

 

 

셔터속도를 달리 해서 찍은 사진은 좀더 밝기는 한데, 금빛이 덜 표현된 듯. 이것도 이것대로 좋다만서도.

 

 

 

춘천 인근에 있는 오봉산, 야트막하니 산책삼아 걷기도 좋고 개울을 따라 빽빽한 나무그늘도 좋았던 곳이다.

 

오봉산 청평사의 독특한 발코니 형태의 창도 사진찍기에 꽤나 좋은 포인트였던 것 같고, 짧은 가을에 덜 익은 단풍도 꽤 이뻤던 곳.

 

 

 

 

 

 

 

 

 

 

 

 

 

 

 

 

 

 

 

 

 

 

 

 

 

 

 

 

 

 

 

 

 

 

 

 

 

 

눈이 펑펑 쏟아지다 못해 눈보라가 맹렬하던 서울의 하늘과는 달리, 나몰라라 새파랗기만 하던 가평의 하늘.

 

클림트의 '키스' 작품을 천조각 퍼즐로 짜맞추는 일은 생각보다 무척이나 어렵다. 반복적인 문양과 미묘한 색감의 변주.

 

 

강아지들이 눈보면 완전 신나서 펄쩍펄쩍 정신줄 놓고 나댄다더니, 정말 그 끝을 보여준 누렁이 한 마리.

 

문득 얌전한 틈을 타고 카메라를 들이댔더니 뭘 알았는지 늠름하게 카메라를 응시해주신다.

 

 

마당에 놓인 테이블 위에 눈이 두껍게 내려앉았다가 슬슬 녹고 있다.

 

 

NEX-5R의 일러스트레이션 필터를 적용해 촬영해 본 몇 장의 샘플들. 꽤나 재미있는 효과라서 자꾸 써보게 된다.

 

 

이런 느낌, 뭔가 거칠게 붓질을 한 느낌같기도 하고 굵은 윤곽선을 따라 형체만 잡고 나머지는 뭉개버린 느낌이 색다르다.

 

침실 옆에 깔린 핑크빛 커튼이라거나 비즈 장식, 그리고 굵은 매듭이 잡힌 매무새가 이쁘다.

 

 

마당에 주차되어 있던 차들과 외바퀴 수레. 엊저녁까지 눈을 치우는데 썼는지 눈이 가득 담긴 채 바닥엔 장갑이 한 짝 널부러졌다.

 

 

계속되는 일러스트 샷들. 펜션 옆 진입로를 비추는 등 주변에 소복하니 내려앉은 하얀 눈과 앙상한 겨울 나뭇가지들.

 

 

눈이 녹고 다시 얼어붙은 바닥에 갇혀버린 단풍잎 한 장.

 

 

그리고, 펜션 앞으로 흐르던 비실거리던 개울 위론 꽁꽁 두껍게 얼음장이 얹혔다. 제법 겨울 풍취가 동한달까.

 

 

 

 동국대 캠퍼스 너머 남산N타워가 올려다보이는 장충단공원에 다다른 짧은 가을 풍경.

 

돌로 만들어진 석교 위로 사뿐사뿐 떨궈지는 색색의 낙엽을 즈려밟고 가을이 줄달음질치는 중이다.

 

 공원 한쪽에는 가을빛을 머금은 맑고 차가운 개울이 흐르고, 그 위로 울긋불긋한 가을 풍경이 한겹 깔렸다.

 

새파란 하늘, 바삭바삭 익어가는 가을 낙엽들.

 

 

곳곳의 벤치에서 따끈한 가을볕에 몸을 덥히며 여유로운 시선으로 가을 풍경을 만끽하던 사람들,

 

장충단공원의 가을이다.

 

 

 

 

 

네모난 창을 통해 바닥, 그리고 벽면까지 기울어진 햇살 자국이 낙인처럼 선명하다. 아오모리현 카즈노의

호텔에 체크인하고 짐을 풀고는 다시 밖으로 나가 동네를 살펴보려는 차에 햇살부터 설레였다.

호텔 입구에 있던 뭔가 '안테나'를 광고하던 티켓. 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저 사슴뿔이 안테나처럼

쫑긋쫑긋 서 있는 게 귀엽다. 아무래도 아오모리가 워낙 깊은 숲동네인지라 저런 동물들을 활용해서

캐릭터로 만들고 활용하는 게 좀더 잘 어울리는 거 같다.


아오모리로 오는 길에도 내내 도로변에서 온갖 야생동물이 그려진 표지판들을 보며 왔더랬다.

아, 중간에 한장은 담배꽁초 버리지 말라는 사인이지만 여하간, 그만큼 숲이 울창하고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다는 이야기일 거다.

사람이 드문드문 지날 뿐인 골목을 걷다가 발견한 빈티지스러운 표지판. 뭔가 사방팔방으로 손가락을

해대는 게 살짝 수다스러워보이기도 하지만, 적당히 빛바래고 톤다운된 모습 덕에 과하진 않아 보인다.

호텔 앞으로 지나던 기찻길. 두 갈랫길이 합쳐지는 합류지점에 서서 짙은 초록색이 한가득한 산으로

둘러싸인 조그마한 동네를 바라보았다.


마을을 어슬렁거리다가 간판 하나를 발견했다. 개울을 따라 쭉 이어지는 산책로가 십여킬로미터에

이르도록 정비되어 있다는 이야기인 거 같다. 일본어를 모르지만 대충 이런저런 풍경도 마주칠 수 있고

그렇다는 거 같아서, 설렁설렁 걸어보기로 했다.


슬쩍 산책로로 접어드니 방금 지나친 기찻길이 저 쪽의 다리 위로 지나는 게 보였다. 몇걸음 옮기지도 않았는데

마을 풍경이 저만큼이나 가려져 버렸고, 이내 빼곡하게 자라난 늘씬한 나무들 사이에 파묻혀 버렸다.

아직까지는 그래도 마을 뒷산같은 느낌이다 싶었는데, 산책로 바닥에 툭툭 돋아난 저 나무뿌리들을 보니

뒷산보다는 좀더 원시의, 야생의 느낌이 짙다.

출발하자마자 맞부딪힌 건 '곰 출몰주의'라는 커다란 경고문. 워낙 산이 깊고 숲도 울창해서 야생곰이

여전히 살고 있는 지역이란 얘긴데, 느리게만 보이는 곰의 최고 속도가 시속 40킬로미터에 육박한다니

맞부딪히면 큰일이다. 어느새 허리까지 올만큼 주변 풀숲도 무성해져서 딴 길로 새면 안되겠다 싶다.

이 길을 걷는 사람도 거의 없는 듯 길바닥에까지도 온통 초록색이다. 사람들이 많이 다녀야 조금이라도

사람 다니는 길과 옆엣 풀숲이 구분이 될 텐데, 정말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아도, 땅을 보아도 온통 초록색이다.

흔들다리. 다리 위를 걸으며 일부러 쿵쿵 소리 내어 발을 굴러보기도 하고 펄쩍펄쩍 뛰어보기도 했지만

그리 많이 출렁거리진 않았다. 다리를 건너다 말고 양쪽 끄트머리를 바라보니 무성하고 울창한 숲에 덥썩

먹힌 느낌이다. 뭐랄까, 커플이 빼빼로 하나 입에 물고 먹기게임을 하듯이, 숲과 숲 사이의 다리 하나.

숲과 숲 사이로 내어진 개울. 다리 위에서 바라보니 개울을 경계로 양쪽 숲이 삼엄하게 대치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온통 녹색으로 뭉개진 듯 삼엄한 숲이지만 엄연히 디테일은 살아있었다. 초록 일색으로 보이던

풍경 속에 숨어있는 샛노랑 꽃밭이라거나, 사람 발길이 이어져 만들어진 길가에 용케 뿌리를 박고

꼬깃꼬깃 잎새를 편 산죽나무 새싹들.

개울을 끼고 계속 이어지는 산책길. 사람 하나 만날 수 없었지만 그래도 꽤나 잘 정비되어 있는 길이었다.

옆에 쉬어갈 만한 정자도 있구, 개울 옆으로 따라달리는 가지런한 나무데크와 적당한 높이의 나무난간도 그렇고.

중간에 그늘이 짙게 드리워진 곳에 있던 나무등걸 하나가 눈길을 땡겼다. 누군가 나무를 일부러 저런

모양으로 자른 걸까 싶을 정도로 의자랑 비슷한 모양으로 남아있는 나무등걸. 엉덩이가 놓일 자리에는

보기만 해도 폭신폭신한 이끼가 소담하게 앉아있었다.

가다 보니 '폭포'라고 말하기도 민망할만큼 낮고 작은 낙수물도 떨어지고 있었다. 그 가느다란 물줄기가

굉장히 섬세하고 부드러워 보여 느낌을 좀 담아보려 노력했으나.

배배 꼬인 나무들이 불쑥 산책로를 틈입해서는 나봐란 듯이 팔다리를 내뻗고 있기도 했고, 맑고 투명하던

물은 어디쯤에선가 저런 쑥빛으로 바뀌어 있기도 했다. 햇살에 정통으로 맞아 하얗게 바래보이는 잎새들.


인근에 수력발전소가 있나보다. 물을 방류하면 수위가 높아질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듯한 경고 표지판,

그런데 만화 그림체가 귀여워서 뭔가 메시지가 담고 있는 정색한 표정을 살짝 풀어주는 거 같다.

어느 순간 산책로 양쪽으로 병풍처럼 드리워져 있던 산이 슬쩍 숨을 죽였다. 내려진 차창처럼 그 사이로

햇살이 잔뜩 들어왔고, 어슴푸레하지만 몇 그루 소나무가 비탈에서 꼿꼿이 자라고 있는게 보였다.

그리고 개울가의 돌밭에서 나뒹구는 새까매진 나뭇가지 하나.

너무 멀리 나왔다 싶어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사람도 하나 없어 문득 겁이 나기도 했고, 언제 곰이 나올지

모른다는 반투명하던 불안감이 점점 형체와 색깔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 문득 잊었다는 듯 울어제끼는

새소리와 배경음처럼 깔린 물소리가 전부이던 산책로. 너무 좋았는데, 대충 한시간 가까이 걸어왔으니

그만큼 시간을 들여 돌아갈 생각하면 이쯤에서 유턴할 타이밍.

돌아나와 마을을 둘러보는데, 아무래도 사람 얼굴을 계속 연상시키는 이 노랑색 건물이 나름의 기준점

역할을 단단히 해주었다. 유독 높은 건물이기도 했고, 색깔이나 모양새가 워낙 튀기도 하고.

눈이 많은 아오모리 지방인지라 건물들은 대개 단층, 높아봐야 이층짜리, 그리고 지붕은 이렇게 비스듬히

얹힌다고 한다. 차가 워낙 조그마하니 차고도 미니어처처럼 조그맣다.

새 두마리가 노닐고 있는 모양이 새겨진 맨홀뚜껑. 외국에 나가서 눈여겨보는 것 중 하나가 맨홀뚜껑이다.

나름의 고유한 특징과 문화적인 미감이 담겨 있는 섬세한 것도 있고, 그저 기능에 치중한 심플하고 멋없는

것들도 있지만 그런 모양 자체로 그 지역의 분위기나 특색을 말해주는 게 있는 것 같다.


조그맣지만 정갈해 보이는 게 일본 가옥의 대체적인 이미지 아닌가 싶다. 특히나 여기는 집집마다 정원을

잘 꾸며놓아서 꽃들이 활짝 피어 있었다. 조용하지만 깔끔하고 화사한 분위기, 이런거 좋다.


호텔 내부를 찍은 몇 안 되는 사진 중 하나. 히메노유 호텔이란 호텔 이름을 군데군데 알아볼 수 있었던

등불이 지키고 선 뒤쪽으로는 노천온천이 있었다.

아무도 없을 법한 시간대에 카메라를 들고 들어간 노천온탕의 전경. 그렇게 크지 않은 온천탕이지만

소슬한 밤공기 속으로 펄펄 뜨거운 김을 흘려보내는 그 온천의 마력이란. '카즈노의 대표 미인 온천'이란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온천을 하고 나서 피부가 보들보들, 매끈매끈. 게다가 하루의 피로가 싹

풀리는 그 개운함은 잊을 수 없다.




@ 히메노유 온천호텔, 아오모리 카즈노.

오이라세계류, 아오모리현의 특별명승지이자 천연기념물이라는 계곡을 따라 하늘을 가릴만큼 빼곡한

원시림 숲길을 걸을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다. 전체 거리 약 17킬로미터에 이른다는 오이라세계류

산책구간은 어쩌면 이제 한국에도 익숙해진 올레길, 둘레길 같은 트레킹 코스의 경쟁상대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제 점수는요. 바로 옆으로 2차선 도로가 구불구불 함께 달리고 있음에도 마치 사람 하나 찾기 힘든

깊은 산속의 좁은 숲길을 혼자 걷는 듯한 호젓함과 한가로운 느낌이 너무너무 좋았다.

오이라세계류를 따라 걷는 길은 계속 이런 식이었다. 다리를 건너 개울 건너편으로 간다거나 잠시 구불댄다는

등의 변칙은 있었어도, 대개 한켠에는 개울을, 신록이 그득한 원시림 한꺼풀 너머에는 이차선 도로를

끼고서 걷는 길. 다니는 차가 많지도 않았지만 두껍게 드리워진 초록빛 커튼이 소음과 부산함을 전부

막아내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마치 다른 세상을 걷고 있는 듯한 이 기분을 어떻게 설명할까.

길 중간중간 오이라세계류 트래킹코스로 합류할 수 있는 샛길 길머리에는 어김없이 이런 안내판이

서있었다. 일본어로밖에 안 나와있는 건 아쉬웠지만 그림과 간략한 영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를

알 수 있는 내용들. 시끄럽게 하지 말고, 식물을 채취하지 말고, 동물을 함부로 풀어놓지 말고,

불을 붙이지 말라는 주의사항들은 어찌보면 굉장히 당연한 이야기들이지만, 저런 기본이 제대로

지켜진 덕분에 이곳의 짙푸른 원시림과 그 특유의 분위기가 지켜지는 거 같다.

핫코다 하치만타이국립공원 내에 있으며 일본에서 세번째로 깊다는 도와다호수는 강물이 전혀 흘러들지

않고, 땅에서 솟는 물과 비, 눈으로만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 호수에서 유일하게 흘러나가는 물줄기가

바로 오이라세계류, 계류가 이끼낀 바위 사이를 힘차게 흐르면서 일으키는 하얀 물거품이 선명하다.

게다가 무성한 이파리에 가려 드문드문 찢겨진 채 떨궈지는 햇살 한 조각이 묘하게도 이끼낀 바위위에

떨어지는 것도 굉장히 묘한 감정을 일으킨다. 마치 하늘에서 의도한 적정량의 조명이 적절한 바로 그곳에

딱 맞춰서 예정대로 떨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숲이면 다 같은 숲이지 '원시림'은 또 뭐냐, 하는 맘이 없지는 않았다. 한국에도 여기저기 조성된 트레킹

코스들은 대개 나무가 무성한 숲길 한가운데를 걷거나 숲과 바다와 산을 끼고 걷는 길인데 새삼스러운 게

있으려나 생각했었던 거다. 그런데 '원시림'의 포스는 뭔가 분명히 다른 게 있다. 저 수령을 알 수 없는

두껍고 단단해 보이는 나무 주변에서 아우라처럼 뻗어오른 잔가지들, 그리고 그 잔가지를 다시 감싸는

초록색 이파리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다른 거다.

저 너머 도로에 꽂혀있는 급코스를 경고하는 노랑색 교통표지판이 보이는 즈음에, 나무 역시 급코스를

온몸으로 예고하듯 격하게 뒤틀어져 있기도 했다.


길 중간에 개울 너머로 다리를 놓아주고 있는 통나무 다리도 만나고. 나무로 만든 다리가 아니라

말그대로 통나무 하나를 베어내선 개울 이쪽과 저쪽으로 걸쳐놓은 통나무 다리였다. 흔들리지 않게

제법 단단히 양쪽 땅에 고정된 거 같긴 했는데, 뭐하나 의지할 것 없이 이 나무다리를 건너 저쪽으로

건너갔던 사람이 있기는 할까. 의구심과 동시에 저 건너편에 대한 맹렬한 호기심이 일어난 것도 사실.

나무 옆구리에서 톡톡톡, 연지곤지 찍듯이 여리고 둥근 연두빛의 잎사귀가 부드럽게 돋아났다.

계단 옆으로 하얗고 두꺼운 나무 뿌리 두개가 툭, 툭, 상아처럼 튀어나온 것도 꽤나 눈길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부러지고 넘어지고 휩쓸리고 뒹굴던 나무들. 이미 당당히 하늘을 향해 온몸을 펼쳤던 모습은

오래전 과거의 것인 듯 부러지면 부러진 대로, 넘어지고 휩쓸리면 휩쓸린 대로 각자의 모습 그대로

연두색 융단이나 액세서리들을 도톰하게 휘감고 있었다. 반지의 제왕에서 나왔던 숲의 정령들이

어디에선가 끼이- 끼이- 거리면서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벌인대도 이상하지 않을 듯한 풍경.


전체 17킬로미터 구간을 다 걷지는 못했고 일부만 걸었는데, 그 중에서 이렇게 넓은 길은 정말 극히

일부였던 거 같다. 대개가 한사람이 딱 걸을만한 좁은 폭, 반대편에서 사람이 올라치면 어깨를 칼처럼

세워서 서로 지나쳐야 할 정도로 좁았으니까. 아무래도 숲을 보호하는 게 우선이니까 길을 최소한으로

내려고 했던 거 같다. 한국의 지자체들도 걷기 열풍을 타고 트레킹코스를 만든답시고 나무데크로

길을 완전 포장해버리는 짓을 하고 있는데, 자연이 우선이라는 마인드가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야 이렇게 고사리가 무섭도록 무성하게 자라난 곳도 무딘 발에 밟히거나 쓸려나가지 않을 테고,

이렇게 좁은 숲길 양쪽에 펼쳐진 이끼 융단이라거나 여리디 여린 덩굴들이 그물처럼 서로를 엮어넣은

모습을 지켜낼 수가 있을 거다. 오이라세계류의 원시림을 이렇게 훌륭하게 지켜낸 건 그런 마인드 아닐까.

좋은 계절에 온 것 같았다. 온통 나무들이 꽃보다도 이쁜 초록빛 잎을 크고 두껍게 피워내는 신록의 계절,

계류를 따라 맑게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새소리마저 신비한 숲속을 산책하면, 시끄러운 물소리에도

불구하고 몸과 마음이 온통 차분하고 경쾌하게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분명 몇걸음 앞에 다른 일행이나

사람들이 앞서고 뒷서며 함께 걷고 있음에도 웬지 이곳에 홀로 쉬고 있다는 느낌.

실타래처럼 떨어지는 폭포인 '시로노이토'. 삼각대를 갖고 왔어야 저 가늘고 부드러워보이는 폭포수가


더욱 그럴듯하게 표현되었을 텐데 아쉽기 짝이 없었다는. 이곳은 아무래도 호수에서 뻗어나온 개울이다

보니까 낙차가 그렇게 크지도 않고 유량이 많은 편도 아니라고 한다. 폭포라길래 뭔가 콰콰쾅하는 소리가

사방에 진동하고 물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그런 걸 기대하는 건 무리라는 사실.


그건 '조시오타키'라는 이름의 폭포도 마찬가지였다. 제법 낙차가 있고 유량도 많은 편이긴 했지만,

앞선 폭포의 섬세하고도 미묘한 물줄기를 보고 기대치를 어느정도 조정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조금 실망할 뻔 했다. 그렇지만 도쿠리병의 주둥이처럼 생겨서 저런 이름이 붙었다는 이 폭포는

이 오이라세계류에 산다는 무지개송어의 장벽이기도 하단다. 자세히 보면 중간중간 시퍼런 색깔이

섞인 게 신비한 분위기를 살풋 풍기며 부지런히 쏟아져내리는 폭포수가 굉장히 시원헀다. 


아마도 상수원이니 물을 깨끗이 보전하자는 건가, 아님 나무와 풀을 보호하라는 건가, 여하간 꽤나

오랫동안 저 자리를 지켰을 강철표지판의 가장자리가 온통 낡고 닳았다.

커다란 구렁이가 나무를 칭칭 휘감고 올라가는 건가 해서 깜짝 놀랐는데, 눈비비고 다시

보니깐 두툼한 가지 하나가 나무둥치를 휘감고 뻗어있었던 거였다. 깜짝이야.

원시림을 벗어나 다시 세속으로 돌아나오는 길, 불과 몇걸음 안 떼었는데도 방금까지 바로 옆에서

지줄거리며 흐르던 개울과 단단하게 공기를 쥐고 있던 푸른 잎사귀들로 이루어진 공간이 꿈인양 하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속담은 이런 곳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걷고 둘러보고 느끼는

와중에 딱 어울릴 것 같다. 다시 딱딱하고 살짝 끈적해진 느낌의 아스팔트를 밟으니 정신이 번쩍 난다.

도와다 호수로부터 뻗어나온 유일한 개울이라는 오이라세계류가 그럭저럭 직선을 그으며 흘러나가는

길을 따라 이어지는 황토색 길, 17킬로미터에 이르는 전 구간을 걸었으면 딱 하루 코스였을 텐데 시간만

허용되었다면 정말 꼭 걷고 싶었다. 아쉽게도 이렇게 살짝 맛만 보고 돌아서야 하다니. 주위에 보니

차를 타고 오기도 하고,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타고 온 사람들도 적잖이 보였는데 무지무지 부러웠다.

우리나라의 숲길들도 잘 보존해서 이런 상서로운 분위기를 풍길 수 있는 때가 오길.


* 오이라세계류의 위치.







* 이번 여행은 하나투어 '겟어바웃' 필진의 일원으로 다녀왔습니다.
Get About - 당신의 여행이야기

백운산에 오르려다 개울을 만났다. 날이 풀리고 산이 뱉어내는 물, 개울 너머가 궁금해서

결국 벗어던진 양말과 신발 속 창백한 맨발이 꽁꽁 얼어붙어버렸다.

花. 신발을 벗어던지고 시원하다 못해 모세혈관까지 꽁꽁 얼어붙는 듯한 개울에 발담그게 만든

풍경, 낙엽이 갈빛으로 깔린 바닥 가운데로 개울이 졸졸거리며 흐르고, 나무들엔 물이 올라

불쑥 연두색 새순이 돋았고, 개울 옆에는 점점이 노랑빛 꽃이 한웅큼씩.

水.
마침 드문드문 내렸던 비로 물이 불기도 했나보다. 수량이 넘쳐서 곳곳에 엉킨 채 섬을 이룬

낙엽들, 벚꽃잎들, 그리고 위에서부터 떠내려왔을 썩은 나뭇가지들. 그렇게 자연이 순환하는

개울 위로 세상은 온통 푸릇푸릇하다.

 


花. 산등성에 가렸는지 아직 꽃눈이 채 다 벌어지지 않은 꽃송이들이 있었다. 분홍색 빛깔이

여리여리하면서도 어찌나 곱던지, 뒷배경처럼 싱싱한 연두빛이 깔린 위에 압정처럼

꽂혀있는 꽃봉오리들이 조만간 폭죽처럼 펑펑 터뜨려지리란 예감에 괜히 가슴이 설렜다.


生. 땅을 온통 뒤덮은 채  사체들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피어난 얄포름하고 여린 이파리들이

눈에 띈다 싶더니, 그 위에 얹힌채 바람에 풀썩이는 노랑 알갱이들이 궁금했다. 잔뜩 몸을

구부려 눈에 힘을 주니 보이는 건 꼬물거리는 아기 거미들.

新綠. 그야말로 신록, 올해 새롭게 뻗어나는 녹색의 잎사귀들. 하늘을 향해 양손을 활짝 펼친

그런 겁없고 당찬 느낌이다. 온몸을 들어 하늘로 향하는 듯한, 그런 거침없고 적극적인

모양새 덕에 굉장히 동적인 분위기가 나는 거다. 게다가 저 이파리들에 햇살이라도 비칠라치면,

온통 속살까지 투명하게 반짝거리며 빛나는 모습이라니.

 

影. 산이 흘려낸 물들은 모두 저수지로 모였다. 봄바람이 불자 바다처럼 잔물결이 일었지만,

그래도 제법 잔잔한 수면 위로 녹색의 나무가, 녹색의 둑길이, 녹색의 산이 전부 담겼다.

가을철의 나무처럼 아직은 헐벗고 앙상해보이는 나무들이지만 좀더 부드럽고 긴장감이

느껴지는 것이 역시, 봄날의 새순을 기다리고 있다는 분위기가 물씬 맴돌았다.




백운산에서 물이 흘러넘쳤다.

개울을 이루고 흐르는 수면 위로 몇 겹의 동심원이 노래처럼 번졌고,

어느 순간 통통한 심장 모양의 벚꽃 한 잎이 나려앉았다.

아직 눈도 채 못 뜬 봄꽃들이 알알이 핑크빛을 머금고 있던 곳.

이미 활짝 피워올려진 꽃 한 송이가 머쓱하지만 단호하게 외친다. 봄이다.

하늘을 향해 번쩍번쩍, 두팔 벌려 세팔 벌려 환호작약하는 이파리들.

조그맣고 귀여운 모양새 안에 꽉 채워진 연두빛깔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 경기도 백운산.

봄이면 으레 드는 생각. 뭔가 죽은 줄 알았던 것들이 저런 생명을 품고 있었구나. 만물이

푸릇푸릇 움트기 시작하고 죽은 듯하던 나뭇가지에서 어여쁜 연두빛의 잎사귀가 꼬물꼬물

기지개를 켜는 시간이라는 생각이다. 너무 작고 여려서 손가락끝 갖다대기도 저어스러워지는

그런 여린 속살이 어떻게 저런 딱딱하고 두텁한 나뭇가지를 뚫고 나왔을까.

거칠한 나뭇가지를 기어가는 빨간 벌레인 줄 알고 자세히 살폈더니 꽃눈이었다. 전혀 나뭇가지와

어울리지도 않고 융화해보이지도 않는, 툭 돌출한 까실까실한 꽃눈. 일단 한번 눈에 뜨이고 나니

나뭇가지 곳곳에서 툭툭 터져나오고 있었다. 정답을 알고 난 숨은 그림찾기처럼.

고만고만하니 고개만 삐죽이 내민 꽃눈, 잎눈들이 아니라 나름 날개를 펼친 아이들. 바싹 마른채

툭툭 분지러질 거 같이 위태한 나뭇가지 끝에서 한웅큼 새순이 올랐다. 보기만 해도 보들보들.

그렇다고 이 따뜻한 봄날이 온통 생명의 기운, 새롭게 시작하는 느낌으로만 충만한 건 아니다.

겨우내 산이 품고 있던 물들이 흘러넘치는 개울가에 푹신하도록 뭉쳐있는 솔잎들, 그리고

이미 분해되기 시작한 그 주검들 위에 내려앉은 얇고 투명한 벚꽃잎들. 쓰나미가 몰아닥쳐

온갖 부산물들이 뒤엉킨 그런 현장처럼 뒤숭숭하고 비감한 분위기마저 느껴진다.

그 와중에도 드문드문 바람결에 휘감겨 개울로 낙하하는 벚꽃잎들. 이미 많이 상하고 시든

꽃잎이지만 벚꽃잎의 위엄은 그대로다. 새하얀, 투명한, 그리고 입술처럼 감각적인 모양새까지.

물길을 따라 이리저리 휩쓸리다가, 돌틈에 숨어 한숨 돌리기도 하고, 자기들끼리 만나서

넝출거리며 비비대기도 하고.


물살이 빨라지는 곳, 돌멩이 위에 차곡차곡 잔뜩 걸려있는 낙엽들 위에 슬쩍 얹혀버린 꽃잎

한장이 동그란 구멍처럼 보이기도 하고. 보글보글 봄볕에 끓는 물빛이 투명하기만 했다.

더러는 이렇게 물살에 휩쓸리지 않고 어딘가에 단단히 정박중인 고목나무를 붙잡고 있기도.

옆에는 그새 형체를 사그라들어가버린 벚꽃잎의 자취가 남았다. 조금은 서늘한 기분.

개울가 옆에 하얗게 내려앉은 벚꽃잎들, 녹지 않는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일 듯한 기세로

바닥을 온통 하얗게 덮은 채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에 나풀나풀.

 

개울이 흘러 저수지에 다다랐다. 전날의 폭우로 잔뜩 흐려진 수면 위에서 더욱 싱그러운

연두빛의 잔가지들. 저 수많은 뉘앙스의 색감을 표현할 단어란, 초록색, 연두색, 연두빛,

풀색, 누런색, 노랑색 등등이 뒤적뒤적 뭉쳐진 그 무언가쯤이 되려나.

딱딱하고 바싹 말라 되려 쭉쭉 갈라터지는 나뭇가지 속에 저런 솜털보송보송한 잎사귀가

숨어있었다는 것도, 조그만 티눈같았을 점에서부터 저렇게 귀엽고 앙증맞은 잎사귀

형체를 뻗어내는 것도, 그리고 무엇보다 저 부드러운 잎사귀에 떨어지는 이 따사롭고

포근포근한 봄볕까지. 모든 게 다 황홀하던 어느 봄날.




@ 백운산.(경기도 의왕시, 백운호수 옆)

절을 찾아가는 길은 꼭 산과 내를 찾아가는 길이 되곤 한다.

다독다독 잘 다져진 흙길을 따라 걷다 보면 그 길 끝쯤, 더이상 들어갈 수 없다 싶은 깊숙한 산허리춤에서

문득 산사가 나타나는 거다.

불끈 진로를 비틀고 내려닫는 나뭇가지가 수면을 희롱하고 있다.

백화산 반야사 들어서는 입구. 커다란 대문이 반긴다.

선명한 단청보다 눈에 들어왔던 건 배불뚝한 기둥에 그려져 있던 네 마리 용.

사천왕상을 대신해서 휘감겨있는 네 마리 용인가보다.

흑백톤으로 바꾸니 또 다른 분위기가 나는 것 같다. 이른 봄 실개천을 가로지른 돌다리.

500년 묵었다는 나무가 굵고 커지지는 않고, 꼬불꼬불 안으로만 무성해졌다. 배롱나무랬던가. 메롱이다.

삼층석탑의 단단한 기단 위에 사면으로 네 명 부처가 앉았다. 그리고 그보다 많이 올라앉아 있는 돌멩이같은

납작한 동전들. 어떻게 보면 부처를 향해 가르침을 청하는 것 같기도 하고.

스님들이 수행하시는 곳, '출입금지'라는 두꺼운 붓글씨가 멋지다. 금지의 '지'자가 살풋 앞으로 구부린 모습이

이런 딱딱한 표현을 쓰게 된 것에 대한 미안함이랄까, 종교인답게 양해를 구하는 것만 같다.

무너져 내릴 듯 살짝 위태로운 산방의 대나무울타리.

백화산 산신령의 호랑이가 출현하는 국내유일의 도량, 백화산 반야사. 절 에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는 형상이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낙석무더기들이 흘러내린 모양이 호랑이를 닮았다는 건데, 글쎄. 그냥 저건 많이 휘어진 나이키 로고다.

아까 지나친 삼층석탑, 기교와 크기와 가용자원의 차이일 뿐 그것과 같은 정성이 땅에 발딛고 하늘로 뻗었다.

다소간 끈적해 보이는 개울물이 휘여휘여 흘러내리고 있었다. 엉성한 나뭇가지로 까칠한 윤곽을 가리던 산이

너울너울해진 수면 위에 내려앉아 한결 부드러워졌다.

돌탑위에 또 돌을 올리자니 이미 완결되어 버렸다 싶은, 오를 대로 오른 돌탑들 뿐이다. 괜찮다. 위로 오를수록

작고 가파르고 위험해지는 돌탑이 정점에 달했다 싶으면 또 다시 그 옆에 큰 돌 하나부터 차분히 박아넣고

시작하면 되는 거다.  

오밀조밀 사이좋게 쌓여있는 땔나무들이 이쁘다. 그 땔나무가 토해내고 있을 흰연기가 굴뚝을 거쳐 사방으로

뽈뽈뽈 번져 나갔다.



▶◀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기억합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