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천문화마을 입구에서 갈라지는 삼거리에는 다른쪽으로 향하는 안내판이 현대적으로다가, 이쁘게 잘 꾸며져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을 홍보하고 있다. 이건 또 무슨 컨셉으로 포장하려 한 걸까 싶어서 돌아보려다가, 


말그대로 일제시대 공동묘지였던 이구역 일대에 새롭게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 (아마도 해방즈음) 부족한 건축자재


대신 비석을 갖고 집을 짓고 살았던 흔적이 여전히 선연한 곳이라는 이야기에 다소간 기가 질려버렸다. 


감천마을처럼 지대가 높고 경사가 가파른 동네, 멀찍이 부산항이 시원스레 내려다보이는 정도다. 


비석문화마을은 그냥 산비탈을 따라 내려가는 길에 살짝 맛만 보는 정도로 돌아보려는데, 곳곳에서 고양이들이


골목을 따라오라 유혹하는 스킬이 아주그냥, 장난이 아니다.



문득 눈길을 돌린 곳에서 발견한 풋풋한 낙서 하나가 마음을 좀 가볍게 해줬달까. 이쁜 사랑하세요.ㅋ


낡고 오랜 자취라고 모두 '문화'라거나 '관광자원'이 되는 건 아니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엄연한 터전을 막무가내로


외지인들에게 개방하는 건, 게다가 '어렵고 힘들던 그 시절'을 돌이켜보라는 듯한 뉘앙스로 현재를 사는 이들의


공간을 포장하는 건 모두에게 수치스러운 일일 수 있다. 그런 식의 해석과 독법을 쥐어준 산동네 관광이라니.


에라, 생각할수록 불편하고 답답하니 나는 그냥 고양이 뒤나 쫓아다니기로.



도망칠 듯 말듯 하더니 한걸음 앞에서 종종걸음치던 녀석은, 어느 집앞에 내어진 밥그릇 앞에 멈췄다.


그 밥그릇의 온기만큼 녀석은 사람을 따랐던 거겠구나.


그리고 어디선가, 낑낑거리던 강아지 녀석의 소리만 들리고 모습이 안 보이길래 한참 찾다가 이층 창문에서 찾았다.


내려와서 같이 놀고 싶은 눈치가 한가득.







섬에 대한 로망이 늘 있었다. 제주도처럼 너무 커서 육지에 사는 것과 별반 느낌이 다름없는 거 말고-제주도가 


섬이라면 왠지 호주도 섬이고 유라시아 대륙도 섬이라고 해도 별로 억지스럽지 않은 것 같달까-섬 끝에 서면 섬의 


반대편 끝이 보이는 그런 작은 섬에 머물고 싶단 생각. 울릉도가 그랬고 그보다 더 작게는 가파도가 그랬으며


승봉도 역시 그런 섬이었던 셈이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자월도, 이작도를 거쳐 승봉도까지 닿는 뱃길은 대충 한시간. 새로 제작한 게 틀림없어 보이는


구명조끼 입는 방법에 대한 동영상을 관람하고 잠시 바다구경을 하고 나면 금세 닿는 거리지만, 바다를 사이에 둔


덕분에 분위기며 풍경이 확 다르다. 


피서철을 지난 때문이겠지만 거의 보이지 않는 여행자들, 그저 곳곳에 점점이 박힌 듯한 현지 주민분들.


숙소는 되는대로 도착해서 구해야지, 라는 생각으로 왔던 터라 무작정 선착장에서부터 바다를 따라 걸었다. 


내키는 풍광이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숙소를 잡을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멋진 바닷가를 앞에 품은 곳에


맘씨 좋은 아저씨가 살고 계신 민박집이 있었다.


(라면에 소주를 함께 기울이며 이런저런 좋은 말씀 해주신 아저씨, 감사합니다~*)



내가 도착한 날 아침에 들였다던 따끈한 강아지. 어미품에서 떨어진 충격이 커서인지 엄청나게 낑낑거리던


녀석의 이름은 개똥이.



그리고 나비. 사람을 무서워하지도 귀찮아하지도 않던 순둥이 개냥이의 이름치곤 다소 새초롬하다지만,


눈빛의 요염함이 뒤지지 않으니 인정.



민박집 앞마당의 낡고 닳은 파라솔, 저 그늘에 의지해서 책도 읽고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기도 하고, 참 좋았던 곳.


그리고 설렁설렁 돌아봐도 세네시간이면 한바퀴를 돌아본다는 승봉도 산책에 나섰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띄인 화장실.


남자화장실은 도약하는 돌고래, 여자화장실은 해바라기(?) 그림을 붙여둔 게 뭔가 의미심장하다.



확실히 서해바다는 갯벌이다. 물이 쓸려나간 전장에 남은 흔적과 잔해를 헤집고 다니는 자잘한 생명체들.


그 와중에는 제법 우아하게 뒤뚱거리며 이런 자국을 남기는 녀석들도 있고.




갯벌길을 따라 한바퀴 돌기에는 중간중간 바닷물로 끊긴 구간도 있고 제법 난코스여서 다시 섬으로 상륙. 



승봉도 삼림욕장 안내도. 피톤치드를 듬뿍담뿍 흡수하실 수 있으시단다.



무성한 녹음, 그리고 잘 닦였지만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찻길.




김인지 해초인지 뭔가 양식을 위한 구조물이 설치된 해변가를 따라 섬의 끄트머리, 나무가 많이 나서 목섬이라는 


이름이 붙은 작은 섬으로 설렁설렁.



나무데크로 길도 잘 갖춰져 있고, 걷는 와중에 쉼없이 우측으로 지나는 거대한 고래같은 화물선들 보는 재미도 쏠쏠.




목섬 역시 썰물 때는 이렇게 육지랑 이어진 채, 밀물 때나 조금 바닷물로 가로막혀서 섬다운 모양새가 되는 곳이다.


조그마한 섬이니까 에라 모르겠다, 하고 길을 벗어나 아무렇게나 섬의 반대편으로 접어든 참인데..숲이 우거지고


풀떼기가 무성하게 자란 곳에는 역시 함부로 발딛는 게 아니다. 미아되서 해경에 신고할 뻔.


이름붙여진 돌들에서 그 이름에 걸맞는 형상을 찾아내기란 또다른 수수께끼를 푸는 기분이다. 차라리 그냥 내멋대로


딱 보여진 형상으로 새롭게 이름을 붙여주는 게 좀더 유쾌한 수수께끼일 거 같지만. 대체 촛대바위가 무슨 돌에 


붙은 이름인지 몰라 사방을 헤매다가 포기, 내눈엔 그저 황량하고 거친 돌들 뿐인데. 


굳이 이름붙이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가 솔직한 심정이겠다.







서해 인천에서 대부도, 선재도, 그리고 영흥도까지 다리로 전부 이어져 사실상 육지와 같은 셈. 다리가 이어지는데


전깃줄이라고 못 이어질리 없다. 온통 사방으로 치렁치렁한 송전탑들.



선재도와 영흥도를 잇는 다리.



그리고 영흥도 십리포 해수욕장의 해안데크. 잠깐 산책할 정도, 일이십분 정도의 거리가 편도로 만들어진 길이라서


올라섰을 때 챙겨들었던 맥주캔이 홀딱 비워지고는 빈 깡통만 들고 돌아왔다.




멀찍이 신기루처럼 보이는 풍경은 아무래도 인천인 듯. 


살짝 성수기를 빗겨난 해수욕장엔 둘둘이 짝지어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왠지 멀찍이 보이는 송도의


높은 스카이라인을 배경으로 하니 미래소년 코난이라거나 로스트라거나 난파구조물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기도.


서기 2046년, 지구는 멸망했다. 쓰나미에 쓸려가지 않고 용케 남은 자들은 잔해를 껴안고 바다를 전전하다가


어느 무인도에 닿게 되었다, 랄까 그런 컨셉의 영화를 찍기에도 좋겠다.


그리고 통일사. 이름에서 느껴지는 쌈마이풍은 제외하고라도 아무래도 섬에서 가장 높은 곳이니 해가 지는 풍경이


이쁘겠다 싶어서 타이밍 맞춰 올라가본 절이었다. 꽤나 꼬불꼬불한 비포장도로를 달린 길 끝에는 예상보다 훨씬


작고 최근에 새로 지어진 느낌이 가득한 절이 있었다. 


절 자체보다도, 그리고 온통 나무에 가려지고 인접한 섬들에 가려져 생각보다 실망스럽던 풍경보다도, 통일사에서


가장 맘에 들었던 건 여기서 노닐던 강아지 두마리. 똥개임이 분명한 녀석들의 살가운 손님맞이라니.



삼각대가 없고 HDR이 과하게 들었간 때의 대표적인 망사진 한장만 남은 통일사.




 

용이 지키는 도시,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 Ljubljana라는 이름에서 보이듯 기묘하게 얽힌 채 이어지는 발음은 정말 쉽지 않다.

 

류블랴나. 오타가 아니다. 류블랴나. 그런 도시의 밤풍경은 도시의 이름과 닮아서 기묘하게 얽힌 골목들이 두 개의 혀처럼 얽힌다.

 

 

 류블랴나를 관통한 채 숱한 아름다운 다리를 남긴 강의 이름은 류블랴니차 강. 멀찍이 언덕 위의 류블랴나 성이 보인다.

 

 

류블랴나 구도심의 중심인 프레셰렌 광장으로 이어지는 다리. 대체 왜 이리도 발음들이 어려운지, 혀의 낯선 움직임만큼의 거리감이

 

아마 한국과 슬로베니아의 거리감일지도 모르겠다.

 

 물이 맑아서 저런 빛깔이 도는 건지, 아니면 특정한 광물이 녹아들은 물이라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제법 유속이 되는 강이 시퍼렇다.

 

 

 그리고 밤이 되니 한층 더 흉악해진 눈빛과 포악스런 근육들을 꿈틀거리는

 

 

손님이 들어설 때마다 입구의 주인 아저씨가 피아노로 한곡조 멋지게 연주를 해주는, 따라라라딴딴딴. 그런 서점을 가진 거리.

 

류블랴나 성으로 향하는 길 어귀, 그래서 그런가 가게 앞 셔터를 내리는 대신 삐죽삐죽 못이 튀어나온 방어진을 설치해놨다.

 

 

오벨리스크가 서있는 조그마한 광장을 지나고.

 

류블랴나 시내의 미니어쳐-라고 해봐야 꽤나 커서 왠만한 중간방 사이즈만한-지도가 있는 프레셰렌 광장을 지나면 신시가가 나온다.

 

 

슬로베니아 스타일의 맥도날드 메뉴를 선전하는 광고판에 불이 들어와 있기도 하고,

 

대낮처럼 환하게 불을 밝힌 슈퍼와 온갖 샵들에 기대어 풍금을 연주하는 거리의 악사가 보이기도 하고.

 

그 뒤로는 쇼핑하러 들어간 주인을 기다리며 문 앞에서 충직하게 경계중인 견공이 한 마리.

 

 

그리고 류블랴나의 음악홀..이었던가, 덩그마니 자리잡은 건물을 은은하게 감싸고 있는 조명이 참 이쁘더라는.

 

아무래도 이 용의 위풍당당하다 못해 무시무시한 모습은 서양과 동양의 '용'에 대한 이미지가 갈라지는 지점에 서 있지 싶다.

 

동양의 용에서는 위엄있고 우아하고 현명하다는 느낌이 먼저 다가온다면, 이 용님께옵서는 그저 무섭다. 가차없는 야수나 짐승의 느낌.

 

 

 

 

태국 꼬싸멧의 동부 해안가, 핫 싸이 깨우(보석모래 해변)에서 아오 힌콕(돌 언덕 해변), 그리고 아오 파이(대나무 해변)이란

 

이름으로 이어지는 그곳에서 늘어지게 휴식을 취하기로 하고 우선 아침 겸 점심. 탁한 색깔로 바래버린 먼지투성이 팬이

 

머리 위에서 빙빙 돌아가는 길가의 음식점에서 간단한 식사로 토스트, 햄과 베이컨 등.

 

텔레비전이 있는 음식점을 들어갈 때마다 꼭 한번씩은 한국 드라마나 한국 배우를 봤던 거 같다.

 

여전히 한국의 촌에 드문드문 남아있는 시골 상회같은 느낌으로 번다한 음식점의 카운터.

 

그리고 꼬싸멧 동부해안의 서로 다닥다닥 붙어있어 쉽게 구분하기 쉽지 않은 어느 해안으로 들어가는 길목.

 

아마도 아오 힌 콕과 아오 파이의 사이쯤이랄까, 사실 해변의 이름이 중요하진 않다.

 

이렇게 하얗고 보드랍고 고운, 밀가루같다는 표현이 딱 어울릴법한 모래사장에서 일광욕을 하고 쉴 수 있다면.

 

뜨거운 햇살을 막아줄 천을 파는 아저씨가 온몸을 칭칭 가리고서 모래사장을 산책중이셨고.

 

아직 주인을 찾지 못한 파라솔과 긴의자들은 따끈하게 덥혀지는 중이었으며.

 

비로소 자리를 잡고 돌아본 주변 풍경은 정말이지..

 

구아바니 망고니 코코넛을 바구니에 담고 팔러다니시는 행상아주머니도 적절한 타이밍에 찾아주시고.

 

 

어느 중년의 부부는 양산을 하나씩 받쳐들고서, 한손엔 신발을 덜렁거리면서 나란히 백사장을 거닐고 있었다.

 

 

모래사장이 워낙 하얗고 깨끗해서 더욱 맑고 투명해보이는 바닷물.

 

 

바닷물이 이런 파스텔톤의 에메랄드빛이랄까, 청록빛으로 반짝거리는 데야 뭍에서 버틸 재간이 없는 거다.

 

 

잠시 뛰어들어 파도랑 놀다가 다시 파라솔 아래로 들어오면 파라솔에 걸러진 기분좋은 햇살이 몸을 말려준다.

 

이런 풍경을 보면 기분이 더 좋아지기도 한다..지만 잘 모르겠고. 크흠.

 

 

해가 슬금슬금 중천으로 오르며 더욱 많은 사람들이 바닷가로 내몰렸나보다.

 

그러고 보니 긴의자 옆에 적힌 저 태국문자, 이국적이고 매력적이다.

 

 

사람들이 슬슬 많이 보인다 싶더니 패러세일링 하는 사람도 계속 보이고, 멀리 나간 배들도 많아진 듯 하다.

 

파라솔 이용료를 걷으러 다니는 아주머니의 움직임은 살짝 부산해진 거 같지만 역시 여유롭기만 하다.

 

 

파라솔 아래서 뒹굴, 청록빛 파도 아래서 뒹굴, 하다가 슬몃 몸을 일으켜 술을 찾으러 가는 길.

 

술집에는 시계를 걸어두지 않는다더니, 여긴 그래도 시간은 봐가며 마시라고 하나보다. 저 온갖 류의 신의 물방울들은 어쩌고.

 

꽁무니에 태국 국기를 펄럭이며 앞코를 들썩들썩, 벌름벌름하는 게 어지간히 배고픈 모양새다. 내달리는 모터보트.

 

숨은 쉬고 있나, 걱정될 정도로 몸을 운신하지 못하던 검둥개 녀석. 만사 귀찮거나 어지간히 나른한 게다.

 

 

꺄아..이런 물빛을 맨눈으로 볼 수 있었다는 건 정말.

 

패러세일링이나 스노클링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직접 찾아다녀주시는 서비스.

 

흠..찍으려던 게 뭐였냐면..저 푸른 바다..

 

아니면 이렇게 의자까지 갖고 다니시는 간식 파는 아주머니 아저씨.

 

그러고 보면 파라솔 아래 긴의자 밑에는 예기치 않게 강아지들이 숨어있다. 곳곳에 숨은 강아지를 찾아라.

 

그치만 다시 시선은 푸른 바다..로 쏠리고.

 

서양 꼬맹이들은 왜케 인형처럼 귀엽게 생긴 건지, 금새 커버리고 징그러워지겠지만서도.

 

어느 험난한 시절엔가 목을 잘린 불상이런가, 해변 들머리에 놓여있던 부처의 미소가 은근하다.

 

MEDITATION이란 글자 왼쪽에 이렇게 내리깔고 있는 눈매도 인상적이고.

 

그러고 보면, 여기서 이렇게 목걸이도 꿰고 팔찌도 꿰는 이네들의 눈매가 저 그림이랑 닮았다. 순하고 정신적인 느낌.

 

꼬싸멧의 동쪽 해변, 푸른 바다와 하얀 모래 위에서 이리저리 몸을 굴려대며 보낸 한나절.

 

달리 해야 할 것도 보다 중요할 것도 없던 그런 더할나위없던 시간.

 

 

 

군산의 유명한 '경암동 철길마을'.

 

기찻길 옆 오막살이~ 라는 노랫말이 무색하도록, 그 옛날옛날 한옛날에나 있었을 거 같은 기찻길 옆 오막살이들이

 

여전히 고스란히 살아있는 곳. 옛 군산역에서 페이퍼코리아 회사까지 원자재 및 제품을 실어나르던 화물열차길인데,

 

놀랍게도 1944년에 개통된 이 노선이 2008년 6월에야 폐선이 되었다고 한다. 좀더 일찍 알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좁은 일차선 철길 옆으로 기차가 다니는 풍경은 어땠을까. 지금은 이렇게 철길에 다닥다닥 붙여서 온갖 잡동사니들을

 

늘여놓았다. 과거에도 그 자투리 공간을 주민들이 어떻게든 활용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는데 덕분에 영화촬영지나

 

출사지로 명성을 날렸다고 한다. (근데 왜 난 전혀 몰랐을까..)

 

이제 열차가 지나다닌지도 오육년이 흘렀고, 철길 옆으로 다닥다닥 어깨를 겨루는 허름한 슬레이트 건물들 지붕을 따라

 

떨어진 낙숫물들이 철길 위에 고드름을 만들었다.

 

지나는 사람도 흔치 않은, 칼바람이 심하던 12월 중순의 어느 평일날에 찾아든 사람을 보고 강아지가 신났다.

 

 

 이런 식으로 약 일 킬로미터 이어지는 단선 철로, 그리고 그 양쪽으로 늘어선 슬레이트 가건물과 엉성한 외벽 건물들.

 

 

 그리고 페인트칠이 벗겨져 나가는 철문, 그야말로 '우드득 우드득'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은.

 

 

 얼음이 꽁꽁 얼어서 손수레 안은 온통 작지만 두꺼운 빙판이 되어 버렸고, 어디고 물방울이 떨어지던 곳은 고드름이 익었다.

 

 빨간 기본칠에 더해 초록색 페인트칠을 했던 슬레이트 벽면에 자글자글 균열이 생기고 말았다. 딱 보자마자 생각났던 건,

 

최근 루이비통과 콜라보레이션 작업중인 '도트의 여왕' 야요이 쿠사마의 작품들. 시각에 문제가 있어 세상 모든 물체가

 

점들의 배열로 보인다는 그녀의 작품 세계랑 저렇게 균열진 벽면이 묘하게 닮은 거 같다.

 

 

 

야요이 쿠사마와 루이비통의 콜라보레이션, 이런 식의 디스플레이를 두고 혐오스럽다는 사람도 있었던 거 같지만,

 

그녀의 집요하고 강박적이랄 수도 있을 작품들은 어찌됐건 굉장한 시각적 임팩트를 남기는 건 틀림없어 보인다.

 

특히나 위에 스크랩한 야요이 쿠사마의 작품 중 마지막 작품을 보고 나서 다시 보면, 정말 그렇게 보이지 않나. 나만 그런가;

 

기찻길 철로 위에는 발이 걸리적거리지 않게 아예 나무로 판판하게 덮어버린 구간이 태반이고, 아예 이렇게

 

길 옆에 초막이랄까, 지붕 달린 평상이 하나 지어져 있기도 했다.

 

 

샛길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채 곤죽이 되어버린 선거 홍보물. 18대 대선이 아무리 시끄러웠다고 해도 이런 볕이 덜 드는

 

공간에까지 커버하지 못하는 대선이었으니 무슨 좋은 결과를 바라랴 싶기도 했다. 실제로 그랬고. 

 

 

 

아마도 이전에는 철길 건널목이 있었을 골목통, 지금은 거침없이 차들이 달리는 길을 지나 계속 철길 따라 가는 길.

 

흘러내릴 듯한 슬레이트 지붕이 켜켜이 쌓인 무게를 이기지 못했는지 야트막한 집이 한층 더 낮아보인다.

 

 

덧대고 이어붙이고 다시 쪼아맨 그물망 뒤로는 개인지 닭을 기르던 공간 같은데, 지금은 하얀 눈만 망사를 뚫고 한가득.

 

어느 녀석이 참 꼼꼼히도 그려놨다. 누군가의 이름, 그리고 볼록하니 풍요로워보이는 하트가 두근두근.

 

바로 옆에 이어지는 학교가 있길래 슬쩍 들어갔다가, 무려 20년짜리 타임캡슐이 줄줄이 묻혀있는 곳을 발견.

 

구암초등학교 졸업생들이 이십년 후라고 하면 대충..서른 초반인가. 별 거 없다 흥.ㅋ

 

좀더 가까이, 철길마을의 널판지와 얼기설기 엮인 벽면 너머를 들여다 보고 싶었다. 잔뜩 녹슬어 언제 마지막으로 열렸는지

 

알 수 없는 자물통들이 대개 더이상의 접근을 막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이런 흔적들. 지금도 여전히 텃밭을 일구고 고추를 말리고 빨래를 널어놓는다더니, 지난 여름에 썼을 호미가 널렸다.

 

아리랑 티비에서 취재를 했던 적이 있는지, 그래피티 아래 아리랑 로고가 보인다.

 

아마 텃밭을 일구다가 흘렸던 땀방울을 닦을 수건을 널어두고 싶으셨던 걸까. 조금 부서지고 이그러지긴 했지만

 

여전히 수건 몇 개 걸어두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는 자바라 옷걸이.

 

 

 

흔친 않지만 2층 이상 되는 건물들도 철길 옆으로 바싹 어깨를 겯고 있었는데, 발이 숭숭 빠질듯 보이는 사다리는 참.

 

철로에 머리를 대고 아예 누워버린 국화꽃 화분 위에 하얀 눈이 이불처럼 덮였다.

 

 

안전하려나, 싶을 만큼 붉게 녹슬어버린 양철판으로 지어진 (그것도) 2층 집. 카드로 만든 집처럼 위험해 보이는데..

 

 

눈이 흠뻑 언덕처럼 올라서 버린 어느 곳에서 불쑥 머리를 세우고 있는 맨드라미. 살짝 색이 바랜 느낌의 도돌도돌 맨드라미.

 

그러다가 평상 밑에서 눈을 피하고 있는 꼬맹이 블랙앤화이트 고양이를 만나기도 하고.

 

'당신이 불편해 했을 거란 생각도 했었죠' 라는 시적인 문구가 적힌 장독대도 만나고.

 

그 근처에서 또 발견한 문구 하나. '그래서 다음 만남은 편안하게'. 누가 누구에게 남긴 메시지일까.

 

또다른 문구가 남겨진 게 없나 찾아보는데 계속 뒤를 졸졸 쫓아오는 고양이 녀석.

 

물기도 모두 날려버린 채 바싹 마른, 얼어버린 행주가 빨래집게에 찝혀서는 너울너울 그림자를 흔들어 주었다.

 

다 타버린 살색의 연탄이 구멍을 송송 드러낸 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기도 했던 경암동 철길마을변 풍경.

 

 

군산에 가면 꼭 들러보아도 좋을 곳. 가는 방법은, 군산 이마트를 찾아가면 바로 그 입구 맞은편에서부터 시작된다.

 

 

 

 

1박2일 경북 안동으로 여행을 다녀오며 건진 사진 중 가장 귀여운 사진이랄까.

똑같이 생긴 듯한 강아지들 십여 마리가 한덩어리로 뭉쳐서는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게,

제각기의 눈망울에 호기심과 경계심과 흥미로움과 쉬크함과 멍때림 그 모든 걸 담고 있었다.


그 와중에 제일 귀여운 녀석은, 앞선 두 녀석의 귀로 양쪽 눈만 가린 깜찍한 녀석.






지브리 미술관에서 나오는 길, 미타카 역을 가리키는 화살표 하나, 미술관을 에워싼 공원을 가리키는 화살표가

또 하나. 미타카 역에서 지브리 미술관으로 이어지는 길이 꽤나 매력적인 산책로라는 이야기에 그쪽으로 바로

빠지기로 결심은 했지만, 지브리 스튜디오의 분위기가 그대로 이어져 있는 공원에서 좀더 여운을 즐기고 싶은

마음도 움찔움찔.

아까 뛰어들어오느라 보지 못했던 지브리 박물관/미술관/스튜디오의 간판.

끝내 문을 나서서 돌아나오는 길, 샛노란 칠이 산뜻한 지브리 스튜디오 건물 안의 커다란 토토로가 배웅해주는

듯하다. 이제 막 스튜디오에 들어선 꼬마아이 하나가 토토로와 눈싸움을 시작했다.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나와 미타카 역쪽으로 방향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태풍 '곤파스'가 가로수를 뽑고 휘두른다던

서울과는 달리 이곳 도쿄는 사람이 몇 명이나 죽어나간다는 전례없는 폭염이 계속되던 중. 비행기 타고 고작

두시간도 안 날아가는 거리인데 이토록 판이한 날씨라니. 이런 점에서도 가깝고도 먼 나라, 맞다.

이국적인 느낌의 신호등, 빨간 신호등의 불빛이 유난히 붉다.

사실 미타카역에서부터 지브리 미술관으로 걸어오면서 점점 줄어들어야 하는 숫자, 미술관까지 300미터

남았음을 알리는 표지판. 푯말을 들고 있는 토토로도, 푯말 위에서 휘영청 몸을 꺽어내는 도마뱀도 귀엽다.

한참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닐 시간 아닌가, 오후 두세시경. 옆에 개천을 끼고 이어지는 골목길에는 그렇지만

사람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고즈넉하고, 조용하면서 깨끗한 거리.

나무도 많고, 집들도 아기자기하고, 그런 산책로를 따라 가다보니 금세 지브리 미술관에서 멀어진다. 어느새

500미터나 떨어졌다. 거꾸로, 미타카역에서 이 길을 따라 지브리 미술관을 향하는 길도 생각보다 금방 가닿을듯.

어느 집 앞마당에 얼기설기 세워진 대나무 울타리에 붙여진 안내판.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개와 고양이 그림이

귀엽다. 뭐, 이런 개나 고양이가 마당에 침범하지 않도록 주의해 달라는 그런 걸까.

좀더 걷다 보니 다른 그림들도 눈에 띈다. 아이들이 손으로 직접 그린 듯한 포스터들, 그리고 검정귀를 가진

하얀 강아지가 푯말로 붙어있는, 그런 류의 귀여운 안내판들.

그리고 칠백미터. 토토로 말고 다른 캐릭터들도 푯말을 들고 있게 하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긴 하지만, 아무리

뭐니뭐니 해도 지브리의 가장 대표적인 캐릭터는 역시 토토로. 붉은돼지 아저씨가 푯말을 들고 있기엔 왠지

어울리지 않는 거 같고.

이번엔 파란 불, 이건 또 아까 신호등과는 모양생김이 다르다. 햇살은 워낙 내리쬐이고 그늘은 또 그만큼

짙고, 도무지 광량을 조절하기가 쉽지 않았던 도쿄.

신호등 앞에는 이렇게 멈춰서서 기다리라며 발자국 모양까지 그려넣는 세심함..이랄까 유머러스함이랄까.

장난스럽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지브리 스튜디오-미타카 역을 잇는 이 산책로의 이름은, '바람의 산책로'. 아닌 게 아니라 개천을 따라 쓸듯이

불어내리는 바람이 머리빗처럼 순순한 방향으로 행인들을 빗어넘기고 있었다.

문득 툭 튀어나온, 그렇지만 너무 과하게 튀거나 부조화스럽지는 않은 일본 스타일 강렬한 집도 한 채 지나고.

그러다보니 벌써 지브리 스튜디오에서부터 천백미터. 그리고 거의 코앞까지 당겨져버린 미타카역.

지브리에서의 여운을 곱씹으며 마음을 탁 놓은 채 걷기에 딱 좋던, 딱 알맞은 거리와 분위기의 산책로.





"그냥 국물 몇 숟갈 뜨고, 못 먹겠다고 하면서 삼계탕이나 하나 시켜먹어."


저녁 회식자리에서 개고기를 먹게 되었다고 알린 나도 나지만, 문자를 받고 득달같이 전화한 엄마도 엄마다.

그만큼 우리 집에서 '개고기'는 아무도 먹어보지 않았고 먹을 생각도 해본 적 없는 그야말로 '금기의 음식'.

뭐 딱히 개를 사랑해서라거나, 비위가 약해서는 아니다. 우리 집안에선 예전부터 개고기를 먹지 않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 개고기를 안 먹는 이유는 그러니까 말하자면 개고기를 먹는단 것에 대한 거부감이라기보다는

안 먹던 거니까, 왠지 찝찝하니까 정도의 부담감이랄까. (그렇지만 안 먹어 보았던 새로운 음식을 먹는 건 아주

좋아라 하니 찝찝함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도 되겠다.)

처음 와 봤으니 이것저것 맛을 봐야 한다 하여 수육이랑 탕이랑 테이블 위에 올랐다. 기름을 반들반들 머금은

고기가 나오는데, 속살은 흑염소고기처럼 결이 져서 부드럽고 껍데기쪽은 쫀득거린다. 맛이 나쁘지 않았다.

음식점 한 켠에는 '드시지 못하는 분을 위해 외부음식의 아웃소싱을 해드린다'는 안내까지 있었지만 적어도

내가 있던 룸 내의 사람들은 전부 잘만 먹더라. 딱히 먹으면서 추억할 만한 누렁이와의 기억도 없고, 그렇다고

먹으면서 점점 내 말소리가 개소리로 변해가는 것 같지도 않고.


집에 도착해선 다녀왔습니다, 대신 멍멍, 짖어서 인사를 갈음했다. 국물만 먹었냐고, 고기 정말 먹었냐고

그러길래 계속 멍멍, 그렇게 답하다가 한 대 맞고. 그러다가 개고기를 먹어선 안되는 이유에 대해서 나름

'치열한(이라 쓰고 저열한, 이라 읽는다)' 논리 싸움. 우리 윤씨는 대대로 개와 잉어를 피했다고 하길래,

조상이 개나 잉어에서 변신한 것도 아닌데 뭘 그러냐고 그러다가 멍멍거린다고 한 대 맞고. 뭐라더라,

개랑 잉어한테 도움을 입었다던가, 그래서 그랬다. 어차피 키우던 소랑 돼지랑 닭한테도, 그리고 키우던

깻잎이랑 상추한테도 도움을 입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집안에 도움이 된 게 어디 개와 잉어 뿐이겠냐고.


그리고 친가 쪽만 조상이냐고, 외가 쪽에서는 먹지 않냐고 했다가 외가 쪽도 안 먹는다는 말에 깨갱 한번.

뭐 대충 그렇게 일 합씩 주고 받는 상황에서 우리 집 족보가 과연 진짜일까욤, 요런 질문 던져봐야 별로

도움될 이야기는 아니어서 속으로만 하고 말았지만, 사실 그것도 그렇다. 씨족에 따라 존중하고 보살피는

동물이 있다고 치더라도, 그 씨족에 대대로 속해서 족보와 가계에 맞는 오리지널 정통 계보가 얼마나

되려나 싶다. 대부분 돌쇠, 점순이를 조상으로 갖고 있을 텐데.


할머님이 먹지 말라 했다고 당부하셨다고, 옛날 어른들 말씀이 다 이유가 있는 거라고 그랬다. 손에 잡히지 않는

'조상'이란 단어보다는 훨씬 와닿는 할머니의 말씀이었다니 왠지 뜨끔하긴 하지만, 옛날 어른들 말씀이라고

다 삶의 지혜니 살아본 경험이니 응축된 건 아닌 거다. 막말로 사람들 영혼 빼앗긴다며 사진찍히지 말라던 것도

고작 백년안팎 이전의 옛날 어른들 말씀이다. 혹시 모르지, 현대 과학으로는 아직 입증되지 않았겠지만 특정

성씨의 씨족에겐 개고기의 DNA와 충돌하는 치명적 오류가 있다거나 하여 옛 어른들의 경험칙으로만 구전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어젯밤은 하얗게 지새우고 말았다. 몸을 보하는 게 아니라 허하게 만드는..;


결국 우리집에서 개고기를 먹지 말라는 이유는, 그러니까 말하자면 개고기를 먹는단 것에 대한 거부감이라기보다는

개고기를 먹지 않았던(먹지 말라는 불문율이 내려오는) '전통' 혹은 '조상'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움이겠다. 그런 조심스러움에 더해 조상님들 심기를 거스르면 안 될 거 같다는 막연한 두려움, 외경이

개고기에 대한 찝찝함을 증폭시키는 이유랄까. 맛보고 나니 사실 맛있게 먹을 수 있었고 전혀 거리낌없이 먹을

수 있긴 했는데, 왠지 그런 부분이 걸려서 딱히 다음에도 또 먹고 싶을 만큼 땡긴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괜히

조상님들을 화내게 만들고 싶진 않아..란 생각이 깊숙이 인셉션되어 있는 거랄까. (아...이렇게 심지가 약했던 걸까...)


물론 그 밖에 개고기를 둘러싼 많은 찬반의 이야기들이 있다. 개는 인간의 친구라느니, 가장 유전적으로

유사한 생명체라느니, 혹은 반대로 우리 민족의 전통이라느니(사실 동남아니 다른 나라에서도 참 많이들

먹고 있다길래 깜짝 놀랬지만) 따위의 감성에 호소하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영양학적 근거를 통해 우수한

단백질 보충원(보양식꺼리)라는 입장과 요새같이 영양분 넘치는 세상에 굳이 개고기까지 먹을 필요가 있냐는

다소 실용성에 주목한 입장(음식의 맛 차이나 그런 요소는 모조리 무시한) 등이 있는 거다. 혹은 위생적으로

전혀 깔끔한 도축 과정이나 유통 과정을 거치지 않는 지금의 실태를 지적하며 이를 개선하라거나 아님 아예

금지하라는 입장도 있는 거고. 정답은 뭘까.


그냥, 개인적으로는 아무 생각없이 개고기를 가리키며 "개속살은 담백하니 맛있네요. 근데 개껍데기는 좀

쫀득하면서 돼지족발같애요."라고 이야기했다가 살짝 뜨아했다. 개속살, 개껍데기라...돼지속살, 돼지껍데기랑은

조금 다르게 울리던 단어들. 그리고 사실 단순히 이 문제는 개냐 돼지냐의 취사선택이라기보다는 육식이냐

아니냐의 선택이 좀더 근본적이고 깊이있는 프레임이 아닐까 싶다. 이전에 국과수에서 시체 부검하는 것보고

생각했던 것처럼. (음식의 미학-부검 견학의 감상.)


* 나름 개고기계에서 이름난 맛집이라 하여 첨부해 보는 정보. 먹을 사람은 먹어야지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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