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사진 혹은 글.
요새 나의 '현실', 친구에게.
ytzsche
2009. 12. 10. 01:33
하는 상황에 버럭버럭할 기운 따위는 이미 엥꼬난지 오래. 행사장 세팅이 완료되려면 세네시까지 되어야 할 것
같아 이미 호텔에 방까지 잡아두고 다음날 입을 정장까지 챙겨온 채 행사장서 일하고 있던 참이었다.
전화기 너머 친구는 술이 잔뜩 올라있었다. 미국으로 간다고 했다. 어메리칸 드림 따위가 아니라, 그냥 여기는
아닌 것 같아 사람답게 인정받으며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탈출한다고 했다.
때와 달리 바짝 곤두선 내 목소리가 영 거슬렸나보다. 넌 뭐하고 있냐고, 일욜밤에 여태 일하고 있었냐고
묻는다. 오랜만에 오랜 친구와의 통화인지라 불끈 솟은 기운을 빌어 씨댕씨댕, 투덜거렸더니 이 녀석, 그게
너의 현실이다. 이런다.
억지섞인 그건 분명 '꼬장'이었지만, (그의 말에 따르자면) 내가 살고 있다는 현실의 황량함과 각박함, 그리고
그가 살고 있다는 현실의 비현실성 혹은 다른 의미의 우중충함 때문에 뭔가 날카롭게 다가왔다.
굉장하다는 사람들이 온 자리여서 영 정신사나웠던 거다. 게다가 여전히 자유무역만이 살길이라는 식의
교조적 메시지를 전하는 자리였어서 더더욱 맘에 들지 않았었다. G-20정상회의로 이어지는 기간 내내, 아니
그 이후로도 계속 한국정부는 70년대 박정희식의 '수출입국', '자유무역만세' 따위 입장을 고수할 게 뻔하다.
숫자놀음으로 후발국 열패감을 위무할 건지. 어쨌거나 이게 (그의 말에 따르자면) 나의 현실. 머릿속의 생각과
관계치않고 밥벌이를 위해 조직 내 부품으로 일하고 있는.
얼마만큼 돈을 주고 산 거니까. 답이 나오는 퍼즐을 위한 대가로, 일정액을 지불했으니까. 그렇지만 실은 그
걍퍅한 자본주의적 마인드, 등가교환의 마인드는 대개의 현실에서 작용하지 않는 게 아닐까.
그 친구가 맞추고 있는, 혹은 맞추다가 말고 에이썅 안해, 이러면서 다시 흐트려버린 퍼즐이나, 내가 궁시렁
궁시렁대가면서도 어찌어찌 맞춰나가는 듯 보이는 퍼즐이나, 별로 답이 있어 보이진 않는다.
그의 호방함, 여전히 꺽이지 않는 자신만만함, 그리고 지를 수 있는 용기, 그러저러한 것들에 비추어 나를 보고
있다. 그는 나를 통해 그에게 아직 안 갖춰진 것을 보고, 나는 그를 통해 나에게서 휘발된 것(처럼 보이는 것)을
본다. 현실과 비현실이 아니라, 하나의 현실, 그리고 또하나의 현실이다. 각자도생중인 각자의 현실.
재미있는 경험했네, 이렇게 관찰하듯 딴 사람 이야기하듯 넘어갈 수 있는 때가 그런 때다. '재미있게'라는 말이
담는 경박함이 그런 장난스러움에서 나왔을 수 있지만 외부에 너무 휘둘리지 않고 바보같이 흥분하지 않을 수
있어서 다행이지 싶다.
반면 가끔 세상에 너무 몰입해서 산다 싶어 경계하게 될 때도 있다. 세상이란 건,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일들,
사람들, 그런 외부의 것들을 말함이다. 바보같다 생각하는 일이지만 어느 순간 문득 너무 깊이 발을 들였다
후회할 만큼 들어와버리는 경우도 있고 한발만 떨어져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지나치게 바싹 붙어 생각한
나머지 쓸데없이 흥분하거나 맘상하게 되는 경우다.
회사 이야기, 일 이야기를 길게 쓰는 건 그 징조다. 바보같은 일에 너무 많이 에너지를 소모한 두세 주였다.
어쨌거나 그 친구에게 담날 전화해서 확인해 보니 미국은 안 간댄다. 그런 거다. 심각해지지 말고, 너무
진지하지 않게, 장난치며 놀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