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여행과 여행사이/기타(공연/전시 등)
배병우 사진전을 보고, 덕수궁의 야경.
ytzsche
2009. 11. 23. 21:08
확실히 겨울이었다. 들어갈 땐 흐릴 지언정 사방이 환했는데, 몇시간 지나지 않아 금세 어둠이 짙게 나렸다.
어둠 속, 문득문득 도심의 야만스런 불빛과 소음이 정적을 깨뜨리는 가운데 둥실둥실 떠오른 덕수궁 내 중화전.
중 태반은 해뜨기 직전, 실내는 묘한 공기에 감싸이고 바깥은 몽환적인 보랏빛이나 초콜렛빛 어둠이 출렁이는
그런 시간에 얻어졌다고 했다. 뭐, 사진이 쉽게 찍히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어쩌면 상당부분 '우연'이란
요소가 짙게 작용하는지도. 일단 빛이라는 것부터가 그러니까 말이다.
하다 싶은 사진들. 진눈깨비처럼 펄럭이며 내리는 빗물 탓이기도 했지만, 한동안 덕수궁미술관 입구 처마 안에
우두커니 선 채 셔터만 눌렀다.
질려버렸다. 스크림의 그 유령 마스크가 떠오를만큼.
실용적이었던 것 같다. 내가 보는 것, 내가 눈여겨본 것, 그런 것들을 기억에 남기기 위한, 일종의 USB였다.
기억의 외장하드. 딱히 미감이나 예술적인 측면을 고려했던 것 같지는 않다는 게 솔직한 고백. 아..사진 좀
잘 찍고 싶다. 카메라도 질렀는데 제길.
부풀고 꺽여든 나뭇잎들의 그림자가 벽면에 대고 간질간질, 간지르듯 간만 보고 있었다.
건가. 커다란 구리 종색깔같은 처마 위 하늘 색깔이 제일 맘에 드는 구석이다.
뭔가 먹을 것이 있으리라 여겨지는 앞으로만 계속 내달리고 싶어하는데, 손이랑 눈이 브레이크를 잡는다.
참..별 것도 아닌 사진 찍겠답시고 계속 멈춰서서 이리저리 배회하는 모습이라니. 배고파 죽는 줄 알았다.
카메라로 내가 다시 찍어서 내가 다시 간직하고 다시 이렇게 블로그에 올려야 할 이유는 뭘까. 뭐, 모르겠지만
일단은 재미있으니까, 정도의 답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데세랄 지른지 아직 한 달도 안 된 터에 이런 회의와
시니컬한 구렁텅이 따위 빠져들 시간이나 여유는 없는 게다.)
벌어진 등불들과 달리 외부 세상의 불빛은 사방을 향한 사방으로부터의 불빛이다. 잊을만하면 툭툭 떨어지는
산만한 물방울들만큼이나 무질서하고 정신없는 세상이다.
비원이라 불리는 곳이 여기라던가-을 한번 가봐야겠다고 맘은 먹는데, 아직 한번도 못 가봤다. 배병우 작가가
'생산'해낸 작품 중 소나무를 소재로 한 것은 SNM, 비원을 소재로 한 것은 BWN이란 약자로 시작하는 작품
번호를 가졌다던가.
* 이제부터는 오로지 카메라 자랑을 위한 사진들.
입구는 극장 입구스러워서일 게다. (대체 어디가? 라고 물어도 별로 대답할 말은 없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