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짧고 강렬한 기억/Cambodia-2009
캄보디아#1. '3X3 EYES'의 나라 캄보디아 비자피는 대체 얼마?
ytzsche
2009. 9. 1.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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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캄보디아는 인접한 태국이나 베트남, 요새는 라오스까지 연계해서 일정을 짜는 것 같던데, 그냥 캄보디아만
일주일 돌아보기로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캄보디아라는 이 거대한 땅덩이가 아니라, 앙코르왓을 볼 수 있는
'씨엠립(SIem Reap)'과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Phnom Penh)', 그 두 점과 두 점의 사이를 잇는 부피감없는
그야말로 얄포름한 선 하나일 뿐이다. 어느 나라 다녀왔어, 라는 말이 때론 무지 허망하고 슬프게 들리는 이유다.
지금이나 매한가지, 그치만 '학(사경)고'의 위협보다 '밥줄끊김'의 위협이 더 크다는 게 캄보디아만 돌기로 한
이유 중의 하나였다. 국경을 넘고 장거리를 이동하는 것보다-설혹 비행기로 훅 한번에 간다해도 공항에서 지체할
그 시간들을 고려한다면-그냥 한 나라 내에서 동선을 최소화하며 많이 보는 게 낫겠다 싶었다.
놀랐던 건, 캄보디아 씨엠립과 프놈펜에 하루 한번씩,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취항하고 있단 사실이었다.
왠만한 외국항공사보다 싼 값에 미리 사두었던 할인항공권인지라, 아마도 여행으로 밖에 나가면서는 처음
국적기를 타 보는 것 같다.
원래 앙코르왓은 하루 차량을 대절하고 가이드까지 사서 도는 게 일반적이라고는 하던데, 그건 왠지 아니다. 모름지기
여행이라면 미리 공부해가고 또 가서 보면서 궁금한 건 찾아보고, 그렇게 스스로의 걸음걸이와 호흡에 맞춰 다니는거
아니던가. 덕분에 비행기에 내리기 전 머릿속에는 힌두교의 온갖 신들, 시바니 크리슈나니 파르바티니, 가네샤니
나가니 하는 이름들이 제법 익숙하게 자리잡았다. 실은 어릴적 탐닉하던 만화책 '3X3 EYES'의 공헌이 컸다.
3X3 EYES의 삼지안이 바로 힌두교에서 말하는 시바의 상징, 힌두교의 십자가와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출입국사무소로 들어가기 전 돌아보니 우리가 탔던 비행기가 마치 산소호흡기를 꼽은 위급한 환자처럼 무언가
주렁주렁 달고 있다. 제일 작은 사이즈의 보잉기지 아마 저게? 작은 만큼 소음도 크고 진동도 컸지만, 뭐 잘 왔다.
여행이니만치, 국내의 온갖 비루하고 저질스런 것들은 싹 잊기로 했다.
전부 마스크를 쓰고 분위기도 왠지 뒤숭숭하다. 신종 플루 때문에 여기도 난리구나, 싶기도 하고 혹시 열난다거나
재채기한다고 격리조치하거나 귀국조치시킨다 해도 거스를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이쁘게 그림처럼 꼬불꼬불하면서도 정연할 수 있을까?
웃기는 건 1달러를 더 내라던 직원의 이야기에서 비롯했다. 단체로 온 듯한 아주머니들, 21달러 내란 이야기에
발끈하셔서, 얘들 바가지 벌써부터 시작이네, 우리가 봉이야, 어이없네, 동남아가 그렇지, 못사는 나라가 원래
그래..운운.
이미 1달러가 왜 추가되냐고 묻고 그게 '심야시간대'에 붙는 할증의 일종이란 설명을 들을 수 있었던 나는 그녀들에게
그게 바가지가 아니라 나름 '심야시간 할증'이라는 명분이 있음을 알려주었고, 그러고 나니 한풀 꺽인 그녀들의
민감한 반응과 불만섞인 목소리. 가져갔던 사진 두장과 함께 비자피를 내고 한 오분 기다리니 비자가 나왔다.
마치 컨베이어벨트시스템처럼 누군가는 여권을 열고 넘겨받은 누군가는 비자스티커를 붙이고 누군가는 싸인을
해서 마지막으로 누군가가 여권의 이름을 호명하는 듯 했다.
들어가는 돈이 아닐까 싶었다. 이런 이야기는 어디에도 못 봤었는데, 뭘까. 굳이 정색하고 흥분할 일은 아니라 넘기기로
했다. 비자피가 22달러라고 생각하면 되는 거지 굳이 1-2달러 갖고 날카롭게 굴고 기분상할 필요는 없지 싶어서.
빗나갔다. 그냥 조용하게 서 있던 사람. 이집트에서 뭔가 바닥을 본 걸까, 이른바 제3세계라는 이곳의 웃음이나
말투가 너무 부드럽기만 하다. 평온한 느낌.
불만에서 비롯했을지 모른다. 우스워보이기도 하고, 왠지 영 권위가 안 선다고 해야 하나,
보송보송해서, 이게 밤이라 그런 건지 아님 운좋게도 좋은 날씨에 당도한 건지 잠시 가늠해보았다. 몇개의
단체관광객용 표지판을 지나, XX투어, XX여행사, 지나서, 제일 먼저 하얀 웃음을 보인 캄보디아인이 모는 뚝뚝
-이곳이나 태국에서 유명한 오토바이를 개조한 삼륜차-에 올라 공항을 빠져나왔다.
다섯시간 이십오분이나 비행기를 타고 도착해보면 밤 22시 반쯤밖에 안 되고 마는 시간과의 경쟁. 비행기안에서
시간은 대체 어떻게 흐르는 걸까. 출발시간과 도착시간은 알겠고, 둘 사이의 시차도 알겠는데, 그 사이에 흘러나간
시간은 어떻게 솔솔 빠져나가는 걸까. 1초에 1초만큼? 1분에 1분만큼?
가로등조차 변변치 않아 게으르게 문득문득 밝아질 뿐이던 어설픈 아스팔트 2차선 위를 꽤나 달려야 했다.
맹렬한 오토바이 배기음이 무색하게 영 속도가 안 붙는 그 움직임에 유쾌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