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진! 달래, 아리야!

“사람이 챙길 수 있는 최대한의 지인 수는 삼백 명 어간이라고 한다. 여태 내가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고양이들은 맥주, 달래, 아리와 삐노에 더해서 주변 친구들의 오월이, 미달이,
영달이, 똘망이, 찡코, 뭉치, 토리, 엔조, 토르 정도일까. 아무리 박박 긁어 모아 봐야 삼백
마리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 덕분에 사람들의 얼굴과 이름을 외우는 데에는 영 소질이 없는
내게 고양이 녀석들 한 마리 한 마리는 더욱 각별하고 기억에 뚜렷이 남아있는지
모르겠다.”


어느 결에 저자에게는 고양이와 여행 사이에 뗄레야 뗄 수 없는 연결고리가 생겨버렸다.
이제는 함께 살고 있는 고양이들을 보고 있으면 여행지에서 만났던 녀석들까지 덩달아
연상된다고 한다. 단숨에 여행의 조그마한 순간들까지 뻗어나가 생생한 추억으로
되살아나곤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글들은 고양이를 빨랫줄 삼아 여행의 순간들을
널어둔 셈이다. 여행하는 와중에 예기치 않게 고양이들을 만나기도 하고, 고양이들과 함께
살면서 문득 지금 자신이 여행 중이구나 느끼기도 했던 순간들 말이다. 그 순간들에 대한
기억은 시간이 지나 조금은 구김이 지거나 원래 모양새와는 달라졌을지 몰라도 엄연히
자신이 한때 온전히 살았던 것들이다. 내키면 언제고 다시 팔다리에 꿰어보거나 그저 다시
한 번 바라보면서 지금의 자신은 어떤 여행을 하는 중인지 가늠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한다. 이러니저러니 결국 고양이에 빠져들고 나서는 좀처럼 헤어나올 길이 없다고
고백한다.

고양이는? 여행은?

아침마다 해가 뜨고 새로운 날이 오는 게 그렇게도 신기하고 좋은지 우다다, 변함없이
신나고 열정적으로 하루를 맞이한다. 벌써 수백 번은 돌아봤을, 크지도 않은 집의
귀퉁이마다 낯설고 새로운 곳을 탐험하는 양 꼼꼼하고 조심스레 돌아본다. 코를 킁킁거리고
앞발로 톡톡 쳐보다가는 고개를 갸웃거리길 반복이다. 함께 사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매일 보는 얼굴이나 손길인데도 질릴 줄 모르고 빤히 바라보다가는 문득 새로이 큰
결심이라도 내린 것처럼 슬그머니 다가와서 찬찬히 살피고 코로 냄새를 맡는다. 마주하는
사람에게도 덩달아 어떤 설렘이나 새로움을 느끼게 하는 순간이다. 사랑이 막 시작되려 할
때처럼 마구 애정이 솟아난다. 그렇게 애정을 담되 낯설게 볼 줄 알고, 또 미련 없이
돌아설 줄도 안다. 쓰다듬거나 안아달라며 마구 보채다가도 충분하다 싶으면 훌쩍
내려서서는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떠난다. 가히 어딘가에도 매이지 않는 올곧은 여행자의
자세답다.


삐노의 짙은 파랑 눈빛과 대비된 새하얀 털빛은 인도의 타지마할을 떠올리게 하는가 하면,
달래의 초록빛이 일렁이는 눈빛은 요정들이 산다는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의 초록 물빛을
연상하게 한다. 그런가 하면 호안석처럼 묵직하고 몽환적인 아리의 노랑빛 눈은 이집트
시와에서 마주했던 장엄한 사하라사막의 기억으로 이어진다. 어디 하나 뭉툭하거나
날카롭지 않게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몸은 그 자체로 호주의 울룰루나 사하라사막의 듄에서
느꼈던 자연스럽고도 우아한 선을 닮았다. 게다가 녀석들이 우아하게 움직일 때 거죽
아래에서 불끈거리는 근육의 움직임이라니, 두브로브닉이나 울릉도 앞 먼바다의 두터운
파도가 미묘하게 움직이는 그 섬세함을 꼭 닮았다.


녀석들을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도 여행의 매력과 닮았다. 다른 종의 생물이니
당연한 일 같기도 하지만, 정말이지 워낙 다른 게 많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습관이나
패턴이 있는 건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아무리 많은 고양이를 접하고 길러봐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자기들끼리도 장난치다가 엉뚱한 짓으로 튀어버리는 걸 보면
고양이들끼리도 말이 통하기는 하려나 의심스럽기도 하다. 대충 눈빛이나 꼬리의 움직임,
분위기로 어림짐작이나 할 뿐 끝내 낯설기만 할 테니, 사람과 고양이의 만남이란 생판 처음
접하는 나라의 외국인 아니 외계인과의 조우에 비길 만큼 엄청난 일 아닐까. 그런 데다가
녀석들이 바라보는 세상이란 걸 따져보자면 사람들의 그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거다. 고양이
눈이란 사람 발목쯤에나 달려 있는 셈이니 눈높이가 다르고, 대체로 시각에 기대는
사람과는 달리 후각에 기대어 세상을 감각하고 있을 텐데 그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
인간으로서는 도무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다.


책 속으로


정말이지 고양이의 앞발은 대단한 물건이다. 내게 ‘어느 손가락이게' 놀이를 시전할 만큼
섬세하고 정교한 건 말할 것도 없고, 고양이의 기분을 나타내는 바로미터라는 꼬리
못지않게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가능하다. (21쪽)

그러고 보니 이스탄불 곳곳에서 길냥이들을 많이도 만났다. 원래 이스탄불이 대륙간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고 중요한 항구 거점이다 보니 계속 새로운 종류의 고양이들이 유입됐다고
한다. 머나먼 이국에서부터 항해해온 배들은 으레 쥐를 잡기 위해 고양이를 한두 마리씩
싣고 있기 마련이었고, 그 녀석들이 지금 이스탄불의 이 다채로운 고양이들의 조상이 된
거라고. (31쪽)


처음 취직 준비를 할 때 자기 소개서에 줄창 그 표현을 써먹었다. ‘고양강아지’라고. 틀에
박힌 자기소개서 항목 중 하나인 ‘본인의 성격을 묘사하고 장단점을 말하시오’였던가, 그
비슷한 항목에 항상 욱여넣었던 단어였다. 고양이처럼 야무지고 자존감이 강하면서도,
강아지처럼 성실하고 충성심도 높다, 뭐 이런 이미지를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56쪽)


제 멋대로이고 혼자 세상사는 표정이지만, 사실은 애교도 많고 살가운 동물, 고양이에 딱
맞는 표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개성에서 만났던 공장 직원들, 음식점
접대원들도 모두 그 표현에 맞춤해 보였다. 그네들을 칭하기에 가장 적당한 단어가 아닐까
싶었다. 심지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내 카메라에 찍힌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샅샅이
검열하던 북한 군인까지도 무표정한 ‘츤츤함’ 가운데 왠지 ‘데레데레함’이 느껴졌다면
나만의 착각이었을런지. (69쪽)


고양이 알러지가 심하다는 걸 처음 알게 된 건 2009년이었다. 새해 벽두부터 ‘용산
참사’라는 야만적인 사건이 있었던 해이기도 하고, 그 김에 고양이 카페를 처음 가보기도
했던 터라 기억이 선명하다. (72쪽)


고양이들이야말로 영역 동물이다. 자기의 ‘나와바리'를 지키며 그곳 안에서 독립적으로 먹고
자다 보니, 그곳을 떠나면 다른 고양이의 공격에 직면하거나 생존이 위협받게 되는 거다.
사람에 비할 바가 아니다. 재개발이나 재건축이 시작되면 하루아침에 집을 잃게 되는
셈이라 선진국에서는 이런 대단위 철거가 진행될 때면 길고양이들의 이주와 구조 작업을
병행한다고 하는데 아직 한국은 아쉽게도 그렇게 체계적이지는 않은 듯하다. (88쪽)


고양이는 사람에게 말을 걸기 위해 소리를 내는 거라 한다. 고양이를 키우고 나서야 알게
된 의외의 사실이다. 자기들끼리는 아마 기분이 안 좋을 때 으르렁대거나 하악질하는 정도
혹은 짝짓기를 위해 짝을 찾을 때 애기 울음소리 내는 정도로 의사소통하는 게 아닌가
싶다. (104쪽)


볼 때마다 짜릿하고 늘 새롭다. 역시 귀여운 게 최고인 건가. 이런 일상의 작은 순간마다
행복한 정도가 정점을 찍는다. 진부하지만 우리가 모두 같은 시간을 살고 있다면 그냥 저
녀석들과 보내는 시간을 소중하게 보듬고 기억하는 것밖에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
렇다고 이런 뻔한 마무리가 여전히 오빠와 형 사이에서 버퍼링을 면치 못하고 있는 자신에
게 은근슬쩍 면죄부를 주겠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앞으로는 좀 더 신경 써야겠다고 반성하
고 있다. 형아가 밥 주러 간다, 기다려라 삐노야. (134쪽)

그렇지만 살짝 억지를 부려 보자면, 고양이들이 정말 이런 것들을 장점이라고 여기며
중성화 수술을 기꺼이 받겠다 할까. 고양이가 잔병을 미리 예방할 수 있게 됐다고 좋아할지
알 수 없다. 당장 아픈 곳 없이 건강한 상황에서 생살을 찢고 잘라내는 확실한 고통과
발생할지 않을지도 확실치 않은 질병으로 인한 장래의 고통, 그 두 가지 선택지 중에서
어떤 것을 고르는 게 맞을지는 사실 사람에게도 쉽지 않은 문제다. 녀석들이 바라는 행복한
삶에 그런 식으로 당장의 고통을 참고 견디는 것도 포함되어 있을지 알 수 없다.
(156~157쪽)


지은이 소개

자신의 평소 모습과 다른 새로운 면모를 내세우는 ‘부캐’라는 단어가 유명해지고 나니
어떻게 살고 싶은 건지 이야기하기가 한결 쉬워졌다. 한 가지 캐릭터에 갇히지 않고,
그러니까 몸과 시간을 팔아 돈을 버는 밥벌이 캐릭터에 갇히지 않고서, 가능한 다방면으로
부캐를 키워내고 싶다. 그중 오래된 하나는 글을 쓰고 인세를 받아 은퇴까지 노리는 야심
찬 녀석이었지만, 아무래도 그건 안 되겠다 싶어서 다른 영역들도 열심히 키우려는 중이다.
고양이 집사로서의 정체성은 최근 두드러지게 약진 중이지만, 사실은 어렸을 적부터 꾸준히
길러온 병아리와 열대어, 십자매와 다람쥐, 그리고 구워 먹으면 초콜릿 맛이 난다는
타란툴라 브리더로서의 면모를 이어받은 셈이다. 그 외에도 늘 새로운 것, 재미있는 것을
찾아 벌려놓고 있는 와중에 자칫 산만할 수 있는 여러 관심사를 묶어주는 역할을 해주는 게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다행히도 여행을 매개로 부캐들끼리의 시너지가 실제로 일어나기도
하여, 여행과 사진과 온갖 잡글이 합쳐져서 2009년부터 6년 연속 여행 분야 우수 블로거에
선정되기도 했고, 여행 에세이 『삼거리에서 만나요』를 쓰기도 했다.


차례


프롤로그 - 여행보다 강한 마력, 고양이


1부 - 고양이로의 여행
이집트 다합, 처음으로 고양이를 품던 순간
프랑스 파리, 플리마켓에서 만난 고양이 인형
터키 이스탄불, 고등어케밥이 불러낸 똥고양이들
보스니아 모스타르, 하드보일드 버전 <캣츠>의 세상
네팔 히말라야, 인간과 고양이의 거리 두기
싱가포르, 이 정도면 29금 스킨십을 즐기는 고양이
베트남 하노이, 전설의 고양강아지 등장하다
일본 아키하바라, 코스프레 구경 대신 고양이 까페
북한 개성, ‘츤데레’ 고양이 왕국에 다녀오다
용산 남일당, 고양이의 위로라도 도움이 된다면
서해 승봉도, 하얀 고양이와 무아지경 플라워댄스
서울 둔촌동, 고향 잃은 고양이들과 내 영역


2부 - 고양이와의 여행
내 첫 고양이는 맥주가 되었다
고양이와 AI 로봇의 무쓸모 대결
고양이 울음소리를 가장 많이 내는 사람
천재 고양이, 전쟁을 개시하다
세상은 놀이터요, 만물은 놀거리라
셋째 고양이 이름을 뭐라고 지을까
난 너 같은 자식 둔 적 없다
아기 고양이에 대한 이상과 현실
약쟁이 고양이들의 먹는 재미 지켜주기
비상사태에 대비하는 집사의 자세
고양이에게 피임약과 섹스 토이를!
맥주를 떠나보내던 날


에필로그 - 맥주와 달래와 아리와 내가 아는 고양이들에 대하여


#장수고양이의비밀 #무라카미하루키 #캣스타그램 #책스타그램 #하루키에세이클럽

책읽는 것도 좋고 고양이도 좋다. 고양이에 대한 책을 읽는 건 더 좋다. 게다가 하루키. 그가 빚어내는 픽션이 유리오르골같은 섬세함과 정제된 아름다움이 있다면, 그가 전면에 나선 에세이는 방망이깎는 장인의 거친 손을 더듬어 잡는 듯한 생생함과 고집스러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에 대한 약간의 애정만 있다면 다소 '빈티지'스러운 말장난이나 특유의 위트는 역시 하루키스러운 부분이라며 너그러워진다.

이번에도 그의 에세이는 가볍고 재미있다. 그리고 계속 읽힌다. 소설보다 에세이가 낫다고 느낄 때도 있다. 그의 에세이를 읽을 때마다 그랬던 것 같은데, 언제나 경이로운 사실이다. 전라로 집안일하는 주부라느니 모텔이름 고찰이라느니 고객불만 편지를 쓰는 법이라느니 살짝 외설적이거나 시답잖은 이야기만 늘어놓는 데다가, 왠지 자신없는 말투지만 근성있게 웅얼웅얼, 누구도 캐묻지 않은 것에 대한 소심한 변명이나 설명을 덧붙이는 궁시렁쟁이가 있을 뿐인데 말이다.

그 비밀은 아마도 드물게 그가 정색하며 쓰는 문장, 혹은 역시 쓰려다 말고 눙치되 감정을 흘려둔 문장들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남녀관계나 나이먹음에 대해 말하다 말고 문득, 역시 일반론은 그만두어야겠다고 슬쩍 넘어갈 때. 백화점의 장애인 안내문구를 놓고 그 이면의 비정함과 둔감함에 (그로서는 매우 드물게도) 분노를 표할 때. 전집 간행문제로 자신과 불화한 당사자가 마음고생으로 자살했다는 사실을 굳이 밝히면서도 역시나 자신은 똑같이 행동할 것이라 명토박을 때. 그가 굳이 말하지 않고 에세이에 숨겨둔 것들은 그런 것들이다.

그의 문장을 조금 고쳐 말하자면, 아무리 작가라 해도 모두가 웃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는 불가능하고, 그 책임은 본인이 오롯이 짊어지고 살 일이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겠다, 식으로 늘 조심스럽게 열어두는 방식의 태도를 견지하는 그가 이럴 때 보여주는 진지함과 날카로움은 서늘할 정도다. 그럼에도 말하자면 출산하는 고양이와 한밤중에 몇시간씩 마주하고 있던 때의 완전한 느낌, 그처럼 아름답고 성실한 묘사로 한순간이나마 그에 공감할 수 있게 해준 건 역시나 하루키여서 가능한 마법이었다.

@ytzsche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