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에서 즐기는 해외여행 3, 외국 분위기 물씬한 음식(윤성의)-


* 2016. 8. 18(목) KBS제1라디오 '라디오 전국일주' 방송분입니다.

* 아래글은 제 블로그의 글 (타협하지 않은 아프리카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를 중심으로 재구성한 원고입니다.

  


오늘 함께 돌아보고 싶은 한국의 이국적인 여행지는 서울 이태원 일대입니다. 서울 중에서도 특히 이태원은 외국인 관광객이나 한국에 체류중인 외국인이 많은 곳으로 익히 알려져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한국의 유일한 이슬람 모스크도 있고, 아랍이나 인도, 남미의 독특한 음식들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곳이라 이미 많은 분들이 이 곳의 이국적인 분위기를 나름대로 즐기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오늘 소개하고 싶은 건 이러한 이태원을 더욱 이국적으로 맛볼 수 있는 두가지 아이템, 아프리카 음식과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룻밤 머물러 보기입니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영어로 소개된 게스트하우스를 찾아나서는 것부터 왠지 해외여행을 준비하는 것 같은 설레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세면도구와 옷가지까지 구겨넣은 가방을 메고 이태원의 가파른 골목길을 헤매며 게스트하우스를 찾아 짐을 풀면 왠지 배낭여행객들의 성지라는 태국 방콕의 카오산로드에 막 도착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죠. 이야, 이제부터 여행이 시작되는구나, 라는 느낌입니다.

그렇게 짐을 풀고 찾아간 곳은, 늘 눈여겨보기만 하던 그곳이었습니다. 이태원에 갈 때마다 늘 지나치는 골목, 늘 들어갈까 말까 고민하던 아프리카 음식점. 아프리카 음식점이라니 대체 어떤 맛의 음식을 파는 걸까, 친절하게도 요리 하나하나 사진과 제목이 적혀 있는 메뉴판같은 커다란 간판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뭐 하나 가늠해 볼 수가 없어서 호기심을 잔뜩 자극하던 곳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아프리카 음식은 대중화되고 세계화된 다른 지역의 음식들에 비해 그 고유하고 독특한 맛을 타협하지 않고 지켜내고 있을 거 같아서 약간의 주저함도 있었구요.

오늘 하루는 여행객이니깐, 기세좋게 문을 열고 들어섰습니다. 안에는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들이 마치 동네 사랑방처럼 둘씩 셋씩 모여앉아 못 알아들을 언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한국인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쪽 벽면에 조그맣지만 단호하게 액자에 넣어져 걸려있던 사업자등록증이니 그런 서류들에서 보이는 낯익은 한글의 분위기 말고는 온통 낯선 이국의 분위기. 순간 나이지리아쯤 되는 아프리카 어딘가로 휙 순간이동해버린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아무리 봐도 알 수 없는 메뉴 중에서 더듬듯이 주문을 하고 나서야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물비누랑 핸드로션의 용도를 알 수 있었습니다. 주문한 음식들을 손으로 먹고 나서 함께 나온 분홍빛 양동이에 담긴 물에서 손을 씻으라는 의미. 사실 다른 아프리카인 손님들에겐 전부 기본으로 주어졌던 이 양동이 대신 우리 테이블엔 스푼과 포크가 제공됐지만, 괜히 특별대접받고 싶지 않아 손으로 먹겠다고 양동이를 달라 굳이 부탁했습니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생활을 다룬 다큐멘터리 같은 걸 보면 하얀 쌀가루나 나뭇가루 같은 걸 물에 개어서 떡처럼 해서 먹는 이란 음식이 있죠. 생각보다 풀기도 없고 미끈한 느낌, 그야말로 '무미'해서 아무런 맛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프랑스 사람들이 빵을 손으로 떼어 돌돌 말아서 먹듯이, 알아서 적당량을 떼어 손으로 매만지곤 스프에 찍어 먹는 게 재미있었습니다. 함께 주문했던 볶음밥 역시 향신료나 재료가 꽤나 독특한 느낌이었지만, 아무래도 이렇게 직접 손으로 떡처럼 만들어먹는 재미에 비할 바는 아니었습니다.

음식을 다 먹고 가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더니, 문득 낯선 느낌이 들었습니다. 왠지 아프리카에서 한국으로 훌쩍 돌아와버린 느낌, 약간의 아쉬움이나 섭섭함마저 느껴질 지경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아시다시피 이태원은 온갖 이국적인 음식점과 술집이 가득한 거리, 하룻밤을 머물기로 맘먹은 여행자에게는 또다른 도전과 모험이 기다리고 있는 곳입니다. 평소 벼르고만 있다가 미처 가보지 못했던 곳들이 있다면, 이렇게 하룻밤 여행자로 머물면서 시도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지금까지 낯설게만 볼 수 있다면 어디서든 여행이 시작된다고 믿는 윤성의였습니다.

- 한국에서 즐기는 해외여행 2, 외국 분위기 물씬한 바다(윤성의)-

 


* 2016. 8. 17(수) KBS제1라디오 '라디오 전국일주' 방송분입니다.

* 아래글은 제 블로그의 글 (울릉도 태하등대, 깊고 푸른 에메랄드빛 바다를 보고 싶다면.)를 중심으로 재구성한 원고입니다.

 



오늘 함께 돌아보고 싶은 한국의 이국적인 여행지는 울릉도, 중에서도 북서쪽 태하항 일대의 에메랄드빛 바다입니다. 해외로 떠날 때 흔히들 상상하게 되는 짙은 에메랄드빛 바다와 호젓한 분위기, 그리고 이국적인 먹거리를 그대로 국내에서 만끽할 수 있는 바다라고 소개하고 싶은 곳입니다.

물론 해외로 떠나지 않고도 동남아의 아름다운 에메랄드빛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이 몇군데 있기는 합니다. 제주도 김녕 성세기 해안이라거나 남해 비진도, 동해 촛대바위 앞바다들이 그런 곳들이죠. 그렇지만 적어도 제게는 한국에서 접했던 최고의 에메랄드빛 바다의 기억으로 남아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사진작가들도 이곳을 국내의 10대 비경 중 하나로 손꼽았다고도 하니까 그렇게 편향된 건 아닌 셈입니다.

울릉도는 뭍으로부터 접근하기 쉽지 않아 아직은 그 천혜의 비경과 오염되지 않은 자연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섬입니다. 사실 섬의 해안선 어디에서든 기암괴석이 즐비한 가운데 짙은 에메랄드빛 바다를 만끽할 수 있으니 굳이 그 중에서 어딜 손꼽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23일동안 걸어서 섬을 돌아다니던 중에 가장 극적으로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태하항 앞바다였습니다.

성인봉을 오르내린 후 나리분지를 지나 접어든 북쪽 해안산책로, 태하항에 도착하니 한적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의 해변마을이었습니다. 이미 울릉도 해안가의 여러 마을을 거쳐온 터였지만 그 고즈넉한 분위기가 미묘하게 달랐던 마을, 아마도 뜬금없던 모노레일 탑승장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민박집을 겸한 자그마한 슈퍼와 이발소와 음식점들, 그 옆으로는 태하 등대가 있는 향목전망대로 향하는 모노레일 탑승장이 동그마니 있었습니다.

여행객은커녕 동네 주민분도 보이지 않아 운행은 하려나 싶었는데, 그래도 시간표에 맞춰 운행중인 모노레일, 거의 거의 수직 급상승하는 느낌으로 가파르게 올라가는 눈높이를 따라 시퍼런 바닷물 수위가 모노레일 위로 넘실넘실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한 육분 정도, 순식간에 해안가에서 가파른 야산 위로 올라오고 나니, 향나무숲이 울창한 오솔길 끝에 보이는 태하등대 너머 탁트인 바다 풍경에 탄성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그야말로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동남아 어느 리조트 앞바다에서나 볼 법한 에메랄드빛 바다를 마주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어떻게 바닷물이 저런 빛을 띌 수 있는 건지 이쪽 끝으로 가서 내려다보다가, 또 다시 저쪽 끝으로 가서 하염없이 내려다보다가. 보고 또 보아도 질리지 않는 그 맑고 부드러운 색감이 너무 아름다워서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어떻게든 그 느낌을 그대로 담고 싶어서 수십장의 사진을 찍었지만, 시시각각 다른 빛깔을 내뿜으며 반짝거리는 푸른 파도의 질감이라거나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은 그저 눈과 가슴에 담길 뿐 사진에는 담기지가 않더라구요.

모노레일 안에 붙어있던 울릉도 순환버스 시간표, 버스회사 이름은 우산버스였습니다. 한때 우산국이라는 이름의 나라였던 자취가 이런 식으로나마 남아있었습니다. 성인봉을 찾는 단체등산객들이 많은 항구 주변 말고, 이렇게 북서쪽 깊숙히 들어온 곳에서 울릉도의 명물 따개비국수를 꼭 맛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색다른 음식을 맛보며 원시림 향기가 그윽하게 번져오는 섬그늘에서, 눈앞에 펼쳐진 에메랄드빛 바다에 정신없이 빠져들다 보면, 이 곳이 정말 한국이 맞는지 혼란스러워지실 겁니다. 지금까지 낯설게만 볼 수 있다면 어디서든 여행이 시작된다고 믿는 윤성의였습니다.

- 광복절을 맞이하여 독립운동의 자취를 따르는 여행 (윤성의)-



* 2016. 8. 15(월) KBS제1라디오 '라디오 전국일주' 방송분입니다.

* 아래글은 제 블로그의 글들을 중심으로 재구성한 원고입니다. 




안녕하세요. 라디오 전국일주 청취자 여러분. 오늘은 1945815일 일본의 패망과 함께 맞이한 한국의 제71주년 광복절입니다. 해마다 빠짐없이 전국 각지에서 경축식과 기념행사가 치뤄지는 날, 어쩌면 70년도 훨씬 전의 일이라 그저 감사한 빨간 날 휴일 하루로 생각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나라를 되찾았다는 걸 광명을 되찾았다고 표현할 만큼, 그렇게 힘들게 우리 나라를 되찾아온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피와 땀 앞에 조금은 더 경건하고 숙연한 마음으로 보내야 할 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늘 같은 날은 그저 여느 휴일과 다름없이 보내기보다는 조금은 더 의미있는 곳을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서울에서 찾아볼 수 있는 독립운동의 자취를 따라보도록 하겠습니다.

독립운동 사적지들은 대체로 현재의 서울 종로구, 서대문구와 중구에 집중되어 있지만, 그 중 대부분은 비석 하나로만 그 흔적이 겨우 남아있거나, 새로 지어진 번듯한 기념관이나 박물관으로 남아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백년 가까운 과거의 역사를 고스란히 증언하고 있는 오랜 사적들을 찾아 서울 시내를 돌아보려 합니다. 우선 독립정신의 뿌리를 세운 독립문부터 시작해서, 덕수궁 내의 중명전, 서대문형무소와 탑골공원, 잠시 강남으로 내려가 도산공원을 거쳐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였던 경교장에 이르는 길을 따르다보면 일제 강점기의 역사를 간단하게나마 되짚어볼 수 있을 겁니다.

3호선 전철을 타고 독립문역에서 내리면 굉장히 이국적이면서도 오랜 세월의 향기가 느껴지는 건축물 하나를 보게 됩니다. 독립문이 바로 그것인데요, 조선시대 한양을 찾아오는 청나라의 사신을 영접하던 장소인 영은문과 모화관을 허물고 1897년 독립협회가 건립하였습니다. 독립을 염원하는 국민들의 기금으로 만들어진 15m 높이의 문은 프랑스 파리의 에투알개선문을 본뜬 모습이라고 하는데, 당대의 천재라고 불렸던 서재필이 스케치한 것을 근거로 설계했다고 하니 그 천재성에 놀라울 뿐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서재필과 이승만 등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독립협회는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토론회인 만민공동회를 개최하는 등 계급을 초월한 대중이 주체가 되는 근대사상을 도입하는데 큰 공헌을 하기도 했습니다.

다음으로 찾을 곳은 비극의 현장, 중명전입니다. 19051117일 밤,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대신들을 회유, 협박해 을사늑약을 체결한 곳이죠. 중명전은 잘 아시는 덕수궁 내, 덕수궁 미술관 뒤에 있는 근대식 건물입니다만, 잘 눈여겨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운 곳인 것 같습니다. 중명전은 우리나라 궁중에 지어진 최초의 서양식 건물 중 하나로서, 1904년 덕수궁이 대화재로 인해 전소된 이후 황제의 거처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광명이 계속 이어져 그치지 않는 전각'이라는 뜻과는 달리, 안타깝게도 이듬해인 1905년 이곳에서 을사늑약이 강제 체결되었고 이후 고종이 헤이그에 특사를 파견하는 등 시련의 근대사를 간직한 현장이라는 점에서 한번 찾아볼 만한 곳입니다.

이렇게 국권을 상실한 대한민국을 위해 제한몸 아까워하지 않고 독립운동에 투신한 분들이 계셨죠. 그분들을 탄압했던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건물 중 하나가 바로 서대문형무소일 겁니다. 독립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서대문형무소는, 1908년 일제의 침략이 가속화되면서 이에 항거하는 의병전쟁과 애국계몽운동 등 국권운동이 전국에서 거세게 일어나자, 이러한 저항을 종식시키고자 대규모의 근대식 감옥을 지었던 것이 그 시초라고 합니다. 1910년 강제병합과 1919 3·1독립만세운동 이후 수감자가 급격히 증가하자, 일제는 서대문감옥 기존 건물을 대대적으로 신축하여 수용인원 3,000여 명 규모의 대규모 감옥으로 운용하기에 이릅니다. 3.1운동 당시 시위관련자 1,600여명이 수감된 것을 비롯해 의병장 허위와 유관순 열사, 강우규 의사 등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순국한, 가히 민족수난의 현장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191931일 오후 2, 그날의 역사는 종로 탑골공원에 생생하게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수천 명의 학생과 시민이 운집한 가운데 학생대표가 공원 팔각정에 올라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소리높여 외쳤을 겁니다. 학생들은 태극기를 꺼내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공원 밖으로 나섰고 수많은 군중들이 시위 대열에 합류하면서 만세시위는 대대적인 독립운동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3·1운동의 발화지로 역사에 큰 자취를 남긴 탑골공원 안에서는 천안의 독립기념관에 소장되어 있는 기미독립선언서를 네배 확대한 모사본을 볼 수 있고,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을 대표했던 의암 손병희 선생의 동상도 모셔져 있습니다. 탑골공원에 대한 재미있는 사실 하나, 본래 탑골공원은 종로 한가운데 지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도심내 근대식 공원으로 대한제국 황실의 음악 연주장소로 지어졌으나, 백성들이 음악을 듣기 위해 모여들면서 1913년부터 백성들도 이용할 수 있게 허락되었다고 합니다. 또 최근까지도 불탑사원을 의미하는 파고다 공원이라 불렸으나 탑이 있던 곳이라 하여 탑골이라 불리던 옛지명을 따 1991년부터 공식적인 명칭으로 탑골공원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하네요.

이쯤에서 잠시 옛 서울의 중심가를 벗어나 번화한 강남으로 내려와봅니다. 도산대로 옆 도산공원, 바로 도산 안창호기념관이 있는 곳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도산 안창호 선생은 한말의 독립운동가이자 사상가로, 독립협회, 신민회, 흥사단 등을 이끌며 활발하게 독립운동 활동을 하였던 분입니다. 민족 산업 육성과 민족의 지도자 양성에 힘쓰는 등 다방면의 활동을 전개해나갔던 민족의 지도자이자 실천가의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민주주의적 민족국가 수립을 위해 헌신한 그의 정신과 사상을 확인할 수 있는 안창호기념관에서는 안창호 선생의 생애와 독립운동 활동, 그의 글과 서한, 연설물, 심지어 선생이 작사한 노래까지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도산공원은 1971년 기공되었고, 1973년 선생의 탄신 95주기를 맞아 망우리 공동묘지의 선생 유해와 미국의 이혜련 여사의 유해를 도산공원으로 이장, 합장한 것이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하니, 평소 아무생각없이 지나쳤던 도산공원의 이름부터 새삼스럽습니다.

마지막으로 둘러볼 곳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백범 김구선생의 숙소이자 환국 후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였던 경교장입니다. 백범 김구선생이 서거할 때까지 3 7개월 동안 이곳에 머물며 임시정부 요인들을 모아 국무회의를 개최하고 반탁운동과 남북협상을 주도하는 등 감격스러운 해방 후 닥친 혼란 정국을 수습하려 노력했던, 그야말로 격동하는 현대사의 현장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1949 6 26일 김구선생이 2층 집무실에서 안두희의 흉탄에 의해 서거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이 곳에는 당시 김구선생이 집무를 보던 공간은 물론, 당시 김구선생이 입고 있어서 총탄이 꿰뚫고 지나간 자국과 선혈이 낭자한 옷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다소 충격을 받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대문역 옆 정동사거리에 위치한 경교장은 1930년대 금광으로 돈을 번 갑부가 지은 건물로, 1930년대의 건축술을 잘 보여주고 있는 아름다운 건물이기도 합니다. 8.15 광복 이후 그가 김구 선생의 거처로 제공하였는데, 최근 원형대로 복원하여 2013년부터 전시관으로 개관해 일반인들을 맞이하고 있으니 꼭 한번 찾아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지금까지 제71주년 광복절을 맞이해 여전히 역사의 상처를 깊게 간직하고 있는 오랜 사적지들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 가는 대도시 서울의 풍경 속에서도 용케도 사라지거나 잊혀지지 않고 곳곳에서 굳건히 버티고 있는 이런 역사적인 공간들, 우리에게 역사를 잊지 말라고,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도 없다고 외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지금까지 낯설게만 볼 수 있다면 어디서든 여행이 시작된다고 믿는 윤성의였습니다.


 

- 한국에서 즐기는 해외여행 1, 외국 분위기 물씬한 정원(윤성의)-

 


* 2016. 8. 16(화) KBS제1라디오 '라디오 전국일주' 방송분입니다.

* 아래글은 제 로그의 글 (엘레강스한 주인의 손길이 구석구석, 한려수도의 꽃 외도..)를 중심으로 재구성한 원고입니다.





안녕하세요. 라디오 전국일주 청취자 여러분. 한창 휴가철인 이맘때면 새로운 풍경과 경험을 찾아 해외로 나가는 여행객들로 공항이 연일 북새통이라는 기사를 많이 보실 텐데요, 저는 이번 한주동안 청취자 여러분께 해외에 나가지 않고도 즐길 수 있는 이국적인 풍경들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이번 한 주 저와 함께 국내 곳곳에 숨어있는 외국 분위기 물씬한 여행지들을 돌아보시면서, 진부하다거나 잘 안다고 생각했던 곳에 숨어있었던 낯섦 한조각, 설레임 한조각을 찾아보시면 어떨까요.

오늘 먼저 소개시켜 드리고 싶은 곳은 외도 보타니아 해상공원입니다. 외도는 깨끗하고 푸른 남해 바다와 경관이 수려하기로 이름난 한려해상국립공원 안에 위치하고 있는 해상공원입니다. 동양의 하와이라는 별칭도 있다고 할 만큼 온난한 기후에 물이 풍부해 여러 이국적인 아열대 식물들이 가득한 작은 자연 공간에, 지중해의 어느 해안도시처럼 유럽 스타일로 공들여 꾸며진 건물과 조경들이 무척이나 인상적인 곳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이전부터 섬에 대한 로망이 있었습니다. 한쪽 끝에 서면 다른 쪽 끝이 보이는 그런 조그마한 섬. 외도는 그 정도로 작지는 않아도, 불쑥 올라선 섬의 중앙부에선 섬의 가장자리가 닿을 듯 가깝게 보일만한 크기인지라 정원으로 꾸며진 섬 전체가 한눈에 보입니다. 그 너머 섬들이 가득한 남해바다가 희끄무레한 바다안개를 덮은 채 버티고 있었구요.

그렇다 보니 대략 한시간의 산책로는 그대로 섬의 외곽을 따라 한바퀴 도는 길입니다. 판판한 평지에 조성된 정원이 아니라 제법 오르내림이 있는 조그마한 언덕 같은 섬에 조성되어 있으니, 산책로를 걷는 재미도 더 큰 거 같았습니다. 더러는 잘 다듬어진 높은 야자수들로 울타리쳐진 길을 오르기도 하고, 아니면 야트막한 정원수들이 양쪽에 열지어 있는 길을 조심조심 내려오며 전체 섬을 내려보기도 하구요.

프랑스 식으로 네모반듯하게 잘 다듬어진 비너스 가든과 벤베누토 정원은 외도의 한복판, 그야말로 외도 정원의 노른자위라고 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중간중간에 놓인 이국적인 느낌의 벤치나 조각상들 역시 바닷바람에 씻기고 적당히 헐어보여서 오히려 더 맘에 들었습니다. 괜히 유럽이나 그리스식의 분위기를 흉내내느라 억지로 힘줬다는 느낌이 아니라, 이제 외도 보타니아만의 고유한 분위기를 자아내기에 이르렀달까요.

한바퀴 설렁설렁 돌아보고 선착장에 내려서기 직전, 외도의 마지막 포스트인 '외도 갤러리'에선 특히나 그곳에서 바라보는 바다쪽 풍경이 참 좋았습니다. 천장이 높아 바람이 숭숭 자유로이 드나드는 커다란 정자 같은 곳에 삼삼오오 앉아서는 바닷바람도 맞고, 멀찍이 바다에 시선을 던져둔 채 가만히 앉아있는 것. 바다랑 섬들이랑 사이좋게 어깨겯고선 남해의 풍경 덕분에 마음이 따뜻하게 차오르는 느낌이었습니다.

외도는 국내 유일의 해상농원으로, 놀랍게도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섬이라고 합니다. 부부가 1969년부터 수십년간 지극정성으로 가꿔온 섬, 곳곳에서 묻어나는 그분들의 개인적인 취향과 안목을 살펴보는 재미도 각별하지만 그분들의 자연에 대한 애정과 오랜 세월 쏟아오신 노력도 잊지 말아야 할 부분입니다. 자연에 거스르지 않으면서 이런 독특하고 고유한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도, 흔히 우리가 빠지기 쉬운 개발이냐 보존이냐, 라는 양극단 이외의 길이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해주니까요. 지금까지 낯설게만 볼 수 있다면 어디서든 여행이 시작된다고 믿는 윤성의였습니다.


베를린 시내 스카이라인의 트레이드마크인 텔레비전 송신탑, 삐쭉한 안테나처럼 생긴 그것을 따라 걷게 되면 나타나는 광장이 알렉산더플라츠.


밤마실 삼아 설렁설렁 걷던 길에 슈프레 강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연 같은 것도 잠시 앉아 즐겨주고.


주먹만한 대리석들로 박아둔 유럽 느낌 그득한 포석을 달각달각 밟으며.


그래피티가 몇겹씩 덧씌워져 있는 교각 아래도 지나고.


도착한 너른 광장이 알렉산더플라츠. 우리로 치면 명동쯤 되려나, 백화점이나 각종 샵들이 모여있는 곳. 그리고 텔레비전 송신탑이 비로소 우뚝 서서 굽어보고 있는 곳.


한쪽에서는 베를린 시내 곳곳을 연결하는 트램이 출발.


그리고 이미 셔터를 내린 어느 건물 외벽에는 베를린, 러브, 두 글자만 눈이 부시게 반짝거리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 어느 오랜 성당 앞에서는 삼삼오오 모여앉은 사람들의 말소리와 시원한 분수 소리가 뒤엉켜 있었다.


베를린 시내 곳곳에서 보이는 (아마도) 수도 파이프. 왠지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센터를 떠올리게 만드는 현대적인 느낌 물씬.


조그마한 개천을 건너는데 시꺼먼 개천 위로 불빛이 둥둥. 굉장히 고즈넉한 동네, 무섭다기보단 마냥 평화로운 느낌.


그렇게 설렁설렁 밤마실 삼아 산책을 다녀온 덕에, 극악의 시차를 극복하고 꿀잠을 잘 수 있었다나 뭐라나..




베를린을 가로지르는 작지 않은 강, 슈프레(Spree) 강변으로는 과거 독일 분단시기의 유물이 그대로 남아있다. 

독일이 동서로 나뉘고, 동독 내에 소재하던 수도 베를린 역시 동서로 나뉘었던 그 시절, 체제 경쟁이 심화하면서 동독은 서베를린의 구획을 온통 장벽으로 둘러싸버리기로 한 것. 그게 베를린 장벽의 초기 모습이었다. 물론 '클래시 오브 클랜'같은 게임을 보면 알 수 있듯 장벽이 점차 업그레이드되면서 내구성도 단단해지고 강화되는 것처럼, 이 장벽도 점점 최신의 기술적 진보를 더해 걷잡을 수 없이 삼엄해졌고.

20여 킬로미터에 이르던 그 장벽이 일부 구간, 약 2킬로미터 정도로 남아있는 곳이 바로 이곳 East Side Gallery다. 말그대로 거리의 갤러리, 장벽을 미술관 전시품처럼 보전해 놓은 곳. 


이른 아침에 도착해서 한번 따라가보기로 했는데, 상상보다 충격적이었다. 장벽 자체는 이렇게 얇고 허름했구나 싶어서.


보전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한 듯, 여기 보이는 그래피티들은 전부다 최근의 것들. 그러니까 '훼손'이랄 수 있겠다.


1961년 이래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된 1989년까지 장벽을 넘으려다 숨진 사람들의 공식적인 숫자는 163명이라고 한다. 그 숫자만큼 해당 년도에 표기해 둔 이 작품은, 그렇지만 공식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탈주 시도자와 은폐된 죽음들을 놓치고 있을 거다.


누군가 가져다둔 화환. 아마도 여전히 그 상흔을 생생히 갖고 있는 누군가겠지.


이렇게 장벽에 자그마한 구멍을 뚫어둔 것처럼 묘사해둔 그림도 인상적이었다. 작은 구멍 하나로부터 장벽이 무너지리라는 기대 혹은 다짐.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가 끝나는 지점에 '장벽 박물관(The Wall Museum)'이 있다는 표지가 곳곳의 아스팔트 바닥에.


그렇지만, 동방의 여전한 분단국가에서 온 이가 새삼 감회에 젖기엔 이미 독일 통일은 역사가 되고 말았다. 이제 통일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이 마구 그려댄 그래피티로 장벽은 훼손되고, 그 코앞 전봇대나 가로등에는 온통 난삽한 광고 뿐이다. 이미 27년전이라니, 믿기지 않지만 이미 시간이 그렇게 지났다.


장벽이 던졌던 문제의식, 혹은 장벽을 남기며 사람들이 남기고 싶었을 자유라느니 정의라느니, 그런 가치들은 이제 얼마나 싱싱하게 남아있을까. 아니면 이들은 이미 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젖히고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느라 과거를 돌아볼 여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부러운 일이다.


장벽 너머 보이는 슈프레강, 이 작은 강은 대체로 동독의 영역에 속한 채 군사 대치중이었기 때문에 강에 아이가 빠졌을 때 모두가 손을 놓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자칫 상대편의 총격을 입을까 두려웠기 때문인데, 이후 인도적인 조치를 취할 때에는 협조하도록 원칙을 세웠다고.


자꾸 한반도의 상황과 오버랩되는 건 어쩔 수 없다. 5차 핵실험이 벌어지고, 남북한 양측의 '최고존엄'이 전쟁을 부추기는 언어를 주고 받는 상황이다.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사진, 동독과 구소련 정치지도자 간의 유착관계를 비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 버전으로 치면, 글쎄, 두 명은 누구여야 하려나.


The Wall Museum 내부, 생각보다 전시물도 많고, 장벽이 생긴 이래 철거되기까지의 역사에 대한 시청각 자료가 엄청 많아서 둘러보는 데 시간이 꽤나 걸렸다. 사진은 처음 장벽을 쌓아올릴 때 쓰였던 허름하고 기초적인 장비들.


그리고 최초의 기초적인 망루. 슈프레강 넘어 보이는 건 서베를린.


다리 중간도 이렇게 엉성하고 속이 빈 벽돌블럭으로 담을 쌓고.


그러다가 1989년, 외부 세력의 개입을 적절히 차단해 가면서, 또 적절히 활용해 가면서 서독과 동독은 결국 장벽을 무너뜨리고 통일을 맞이한다. 박물관 내 영상 자료들을 따라가다보면 그 생생함이 그대로 전해질 지경이다.


부럽기도 하고, 천운이었다 싶기도 하고, 또 한국과는 굉장히 상황이 달랐다 싶기도 하고. 일단 베를린이 엄청 어색하게 동독 한복판에 박혀 있었던 데다가 동독과 서독간에 전쟁 같은 대규모 유혈사태도 없었으니. 한국은, 그리고 북한은 독일과 같이 분단 체제를 역사로 되돌릴 수 있을까.





#히틀러의비밀서재 #히틀러 #서재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어떤 책을 읽어왔고 어떤 책을 소장하고 있는지, 그런 것들은 사람을 판단하는 근거가 될 수 있을까. 근거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큰 근거가 될까. 적어도 1만6천권의 장서를 개인소장했고, 그의 사상과 행동이 역사를 뒤흔든 사람이라면 그의 독서이력과 서재는 큰 힌트가 된다는데 이견은 없겠다. 사실 나는 그보다 자취가 작은 일반인, 한국같은 작은 나라의 대통령이라거나 평범한 갑남을녀에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지만.

그는 애서가를 자처했고 늦은 밤까지 하루 한권의 책을 읽어내는 것을 자랑했다고 한다. 그의 제3제국을 사상적으로 뒷받침한 철학자로 니체나 쇼펜하우어를 들먹인 것도 주효했을 거다. 지독한 인종주의와 민족주의가 뒤범벅된 그의 이른바 민족사회주의는 그래서 더욱 파악하기 어려워보이는 결과물인지도 모른다. 대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를 어떻게 엮어내겠단 건지, 거기서 파생되는 논리적 귀결들이 서로 절그럭거리는 건 어떻게 해소하겠단 건지. 유대인은 왜 이렇게 늘 인류의 적이 되어 왔으며, 아리아인종이란 건 대체 어디서부터 순수하고 어디서부터 '오염'된 건지도. 등등, 끝이 없다.

그렇지만 과연 그가 그만큼의 소화력을 갖고 있었는가 하면, 아니었단 게 이 책의 일관된 메시지다. 그는 체계적인 독서를 한 적이 없고, 그의 사고는 독서와 함께 부딪히고 발전하고 변화한 게 아니었단 이야기다. 문제는 그의 독서법. 그는 자신의 근거없는 신념과 망상을 뒷받침하기 위해 여기저기서 조각들을 찾는 방식의 독서를 했고, 개별 철학이 진지하게 구축하려 한 세계와 의미에 대해 제대로 음미하지도 못했다.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그런 아전인수식의 발췌독은 현란한 수사와 웅변에 필요한 벽돌은 제공할지언정 본인의 사고와 사상을 위한 자양분은 뽑아내지 못한단 이야기렸다.

이 대목을 아전인수식으로 다시 인용해보자면, 글쎄. 양보다 질이다. 몇권을 봤는지가 아니라, 개개의 책들이 어떤 맥락과 통찰력을 갖추고 본인에게 도전해왔는지가 중요하단 말이다. 교양을 진열하기 위한 지대넓얕식의 지식 소비가 갖는 위험성은, 혹은 장학퀴즈/일대백식의 퀴즈쇼에 특화된 암기지식이 갖는 위험성은 전혀 본인을 흔들지 못하는 그 무독한 지식에 있다. 백번을 흔들리고, 아프고 또 아파야 하는 건 청춘이 아니라 우리 모두, 개개인이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지식이라면 결국 애서가이자 웅변가 '히틀러'가 되는 게 고작일 테다.

이 책의 또다른 장점, 독서 경험과 서재의 구비를 통해 히틀러의 뼈대가 될 신조와 인생을 짚어준다는 것. 사실 지금까지 과문한 바 히틀러의 삶과 그의 신념에 대해 제대로 짚어본 적이 없었다. '나의 투쟁'을 읽어보는 건 고사하고 그가 외계인도 남장여자도 사이코패스도 아닌데 대체 왜 그런 반인류적인 짓을 했는지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조각 하나 찾지 못했으니깐. 그렇지만 그의 사고퍼즐을 담당한 책들이 직조되면서, 그 역시 평범한, 혹은 다소 지적으로 부족하거나 성찰력이 부족한, 그래서 결단력만 가득한 멍청이였지 않을까 상상하고 이해해보게 만든다.


#세계최초의증권거래소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주식 #투자 #증권

격물치지라는 사자성어를 좋아한다. '사물의 원리를 디립다 파헤쳐서  자기의 지식을 확실하게 넓혀나간다' 정도의 뜻이려나. 특히나 생활에 필요한 만물을 직접 하나씩 고안하고 구비해나가던 과거와는 달리, 점점 복잡해지는 생산과 창조의 말단으로 밀려나기만 하는 처지로서는 뭐하나 이해하기 쉬운 사물이 없다. 자동차는 어케 굴러가는지, 인터넷 검색은 어케 가능한 건지, 하다못해 냉장고와 에어콘은 어케 기능하는 건지.

주식회사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주식시장은 어떻게 생겨났을까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는 책이다. 그저 현재의 효용이란 관점에서 주식투자방식을 연구한다거나 주식시장의 작동원리라거나 인간의 탐욕 운운하는 게 아니라, 이 독특하고 복잡한 시스템이 어떤 목적과 경로로 시작되었는지 말이다. 수많은 주주로부터 장기간동안 거대한 규모의 자본을 확보하여 사업을 가능케 해주는 주식회사, 한편 그 주식 지분을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도록 해주는 주식시장과 그 플레이어들.

물론, 책에서 주목하는 17세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이 전세계 주식시장의 원형이자 실질적인 발원지인지는 잠시 유보해 두어야 할지도 모른다. 각 국가마다의 필요성과 특수성이 있었을 테고, 어쩌면 제각기 중구난방식으로 비슷한 아이디어를 현실화한 건지도 모르니까. 그렇지만 분명한 건 17세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의 설립과 더불어 보여지는 모습들이 지금과 너무도 유사하단 사실이다. 선물, 옵션, 파생상품, 그리고 투기로 인한 버블과 위기 상황까지. 덕분에 우린 좀더 심플하고 간명한 그림으로 본질을 이해할 수 있게 된 듯 하다.

#나는단순하게살기로했다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미니멀리즘 #대지진 #일본

저자가 말하는 단순한 삶을 설명하는 글과 논리는 전혀 단순하지 않다. 게다가 도무지 사기만 하고 버리지는 않는, 청소나 정리 따위 하지 않고 쟁여두기만 하는 창고형 인간이라니, 이런 인간형이 흔할까 싶어서 공감도 떨어진다. 선이니 미니멀리즘같은 단어로 그럴듯하게 치장하고 잡스와 마더테레사와 간디를 운운하고 인간 정신과 역사를 들어 정신사납게 쓰고 있는데, 결국 '미니멀하게 말하자면' 내가 파악한 키워드는 두 가지다. 디지탈로의 이동(digitalization), 그리고 우선순위 정하기(prioritization).

일본만화 드래곤볼에 등장했던 기똥찬 발명품, 호이포이캡슐. 집이던 차던 수십톤의 물이던 전부 조그마한 캡슐 안에 집어넣었다가 꺼냈다가 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그 자체로 매혹적이었더랬다. 아마 그걸 가장 가깝게 구현할 수 있는 게 디지털로의 이동 아닐까. 무게도 부피도 없어 현실세계에 존재하지 않지만 언제든 꺼내어 보고 들을 수 있는 디지털 컨텐츠의 물성. 저자가 말하는 지독히 단순화된 '물건구매-만족-익숙해짐-싫증'의 무한루프가 실제로 존재하며 동시에 벗어나야 한다는 점에 모든 사람이 동의한다 하더라도, 그가 제안하는 미니멀한 삶에서조차 이 루프는 사실 끊어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대체 그가 마지막까지 버릴 수 없어 남겼다며 예찬해 마지않는 애플의 고성능 컴퓨터/스마트폰 속 데이터는 얼마나 빠르게 소비되고 쌓이고 있을까. 현실세계의 물건들을 처분하고 사진파일로 옮겨둔 그 디지털 세계, 씨디와 책 대신 인터넷 속 온갖 컨텐츠와 정보로 갈음하는 그 세계 속에서 그는 미니멀리즘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그의 시도가 부질없다거나 기만적이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주변정리의 차원에서, 무한욕구의 궤도에서 탈출해 보다 자족적인 삶을 추구한다는 차원에서도 그는 나름 의미있는 제안을 하고 있는 게 사실이니깐. 우선순위를 정하고 핵심이 아닌 것들을 지워내보자는, 너무도 담백하고 당연한 이야기라서 김이 좀 빠지긴 하지만 말이다. 저자같이 극단적인, '지저분한 방 출신의' 인간 말고 좀더 평균적인 인간을 들어 말해보자면, 평소 하듯 오래되었거나 낡았거나 안 쓰는 물건은 버리던 팔던 하자는 거다. 그렇게 물건들이 들고나는 과정에서도 살아남은 것들, 그런 것들은 꼭 필요한 것들이니 잘 챙기고, 나머지는 그보다 덜 중요한 것들이니 과감하게 덜어내어 버리던 혹은 마음만 덜어내던 그러자는 거다. 뻔하다고? 어디 이런 류의 책이 하늘 아래 새로운 이야기 하던가.

결론적으로 미니멀리즘이라는 단어를 온전히 짊어지기엔, 저자가 펼치는 철학은 그다지 근본적이거나 철저하지 못하며 차라리 극단적인 버전의 집정리 스킬에 가깝다. 그런데 외려 내 흥미를 끈 건 이 부분이었다. 아날로그 물건들의 디지털로의 피난, 그건 저자가 의식한 것 이상으로 2011년 동일본대지진의 후과인지도 모른다. 대지진이 터지고 방사능이 만연해도 아날로그 세상 그 어디로도 도망치지 못한다는 걸 깨달은 이들이 준비하는 신천지 디지털로의 노마드행.



#군자를버린논어 #논어 #공자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공자를 위시한 유가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유가철학이라고 하면 왠지 공자왈맹자왈, 옛 한문을 글자 그대로 암송해야 할 듯한 고루함에 더해 군주-백성의 관계를 다룬 그것이 오늘날 어떤 의미가 있을지에 대한 회의감 때문이지 않으려나. 그래서 어쩌다 그저 한두구절만 떼어 볼지언정 논어를 통으로 읽을 생각은 해보지도 않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꽤나 획기적이고 도발적이기까지한 논어 읽기를 시도한다. 말그대로 '군자'란 표현을 버리고, 대신 지식인/지성인/지도자 등의 현대적인 표현으로 대체한다. 수레를 모는 대신 차를 운전하는 건 애교 수준. 공자가 애정한 안연, 자로 등 제자들의 재미있는 캐릭터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건 그들의 대화가 오늘날의 말글처럼 재연되었기 때문일 거다.

내용면에서는, 역자가 여러모로 공자와 논어에 대한 현대적인 해석을 시도한다. 시사적인 이슈와 문제의식을 접목해서 공자라면 어떻게 말했을까, 공자의 시대와 지금의 시대가 어떻게 달라지고 여전히 같을까, 등등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거다. 글쎄, 다소 인상비평에 그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최소한, 공자가 여전히 현재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고 이야기할 거리가 있다는 시작점으로는 충분해 보인다.

#돼지의왕 #연상호 #부산행 #창 #영화스타그램 그림체는 낯설고 동작은 엉성하다. 움푹 패인 눈매와 불쑥 솟은 광대를 강조한 인물들은 만화의 미덕인 '뽀샤시'의 덕을 전혀 누리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런 영화를 보고 몇번이나 전율이 돋고 말았다.

학원폭력에 대한 이야기지만, 그보다는 어떤 사회적인 관계에서던 약자의 위치에 선 사람들에 대한 집요하고 사정없는 묘사라고 말하는 게 낫겠다. 약자라고, 피해자라고 선하거나 순할 것만 같은가. 그네들의 어둠은 오히려 가해자들의 일방적인 것보다 더욱 깊고 독하지 않을까.

표출되지 못한 분노와 폭력성은 어디로 가는 걸까. 그것들이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된다면, 그래. 이렇게 어둡고 음침하고 일그러진 세상에 사람들일 수 밖에 없는 거다.

p.s.그러고 보니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이었다. 아..이 사람 뭐지.




#우리는어떻게괴물이되어가는가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신자유주의인격의탄생

왜 이렇게 '또라이'가 많아진 걸까. 터무니없이 공격적이거나 패배적이고, 온갖 심리장애 증상들은 날로 늘어만 간다고 정신분석학자인 저자는 진단한다. 직장이나 학교의 왕따 문제는 글로벌해진지 오래고, 묻지마범죄에 특정집단에 대한 혐오범죄 등은 일상이 되어버렸다.

전반적인 사회 풍조,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나 '상식'화된 신념들이 문제인 건 아닐까. 그것들이 사회 안의 인간들에게 정체성을 부여하고 윤리체계를 설정해준다면, 지금 우리 사회가 뭔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이상한 방식으로 기능하는 건 아닐까. 저자가 책의 절반을 할애해 꽤나 설득력있게 그 연관성을 논하고 있듯이.

그 기반에서 신자유주의라는 포괄적인 이데올로기를 호명하며 저자가 문제삼고자 하는 건 경제 능력주의와 교육 능력주의의 결합이다. 호봉이나 직급이 아닌 능력에 따른 평가를 강조하는 시스템이 초기엔 효율적인 듯 보이나, 이내 숫자로 환산가능한 지표와 결과에만 매몰된다는 점에서 능력주의 체제의 중기 이후를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렇게 시스템 효율화를 위한 능력주의는 기존의 노동윤리와 공동체윤리를 해체하고, 아무것도 그자리를 대체하지 않는다. 공동체가 깨어진 지점에서 남는 건 적자생존을 강조하는, 모두가 모두에게 늑대일 뿐인(Homo homini lupus est) 계약 이전의 정글상태. 그게 현재 사람들이 병든 이유이며, 신자유주의가 주조하는 인간형이라는 결론이다.

길게 써봤지만 뒤로 갈수록 힘이 빠진다. 책이 그렇다. 사회가 정체성과 윤리 체계를 형성한다는 부분에 대한 원론적인 설명은 꽤나 매혹적인데, 이를 신자유주의에 대입하는 과정에서 헛점들이랄까 말해지지 않은 부분들이 보이기 때문일 거다.

우선 신자유주의가 최악인 시스템이란 것에 대한 분석이나 합의가 부재하다. 모든 사회는 나름의 지배사조와 그로부터 주형된 정체성과 윤리체계가 있을 텐데, 신자유주의 하에서 유독 정체성과 윤리체계가 파괴되었다는 진단이 과해보이는 거다. 그래서 또라이가 양산된 현상이 현대 사회에 고유하거나 유별나다는 것에 대해 납득시키지 못했다.

둘째로는, 서유럽에 기반한 분석이 과연 기타 지역, 한국에도 유효한지에 대한 의문이다. 예컨대 한국의 전통적인 노동윤리와 공동체윤리는 서유럽의 그것과 같았던가. 능력주의의 부작용은 공통될 수 있으나 그것이 타파한 과거의 온정주의적 평가는 한국과 서유럽이 같았을까. 등등.

마지막으로, 서유럽의 실업률이 높은 것에 대한 원인을 능력주의와 성공에 대한 환상으로 인한 미스매치로 치부하는 것, 젊은 세대에 대한 능력주의식 교육의 산물로 치부하는 것은 올바른 분석일까. 오히려 신자유주의가 교육(과 자기계발열풍)에 미친 영향에 한정하여 이야기를 집중하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젊은이는 자신을 미니 기업으로 보아야 하며, 경제적 의미 차원에서 지식과 능력이 처음이자 마지막 심급이다."같이 잘 정제된, 까기 좋은 언명을 모처럼 잘 골라놓았는데 말이다.



#예술과경제를움직이는다섯가지힘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비추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한다. 자라와 솥뚜껑이 닮았다는 관찰은 제법 참신하고 재기넘쳐보일 수 있지만, 본질이나 근본적인 면에서 전혀 다르기 때문에 이런 비웃음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란 의미로 새길 수도 있을 거다. 예술과 경제를 함께 얽어내는 이런 책이 인문학을 살짝 얹은 천박한 교양서나 잡서가 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대체 예술과 경제를 비교하기 위한 잣대가 뭔지부터 살펴보자. 머릿말에서 저자는 그걸 '명쾌하게' 다섯가지로 집약한다. 투시력, 재정의력, 원형력, 생명력, 중력-반중력. 각각에 대한 자의적인 설명은 그렇다치고라도, 그 다섯가지가 왜 근본적인 기준이 되어야 하는지 납득이 안 간다. 게다가 정의상 서로 충돌하거나 중첩되는 것들까지.

다소 참신하고 풍부한 시각으로 예술의 표피로부터 경제에 대한 메타포를 끌어낼 뿐인 책이다. 경제에 대한 자신의 시각과 의견을 표출하기 위해 이리저리 썰어내고 구부러뜨린 예술에 대한 이야기들. 다시금, 이런 류의 '통섭'이나 '지적 네트워킹'을 말하는 자들에 대해 실망하고 말았다.


아무래도 신경쓰여 다시 도색한 뒷카울..똥망. 새로 이 부품만 살 수 없을까, 사포로 다 밀어버리고 다시 칠해볼까 별 생각을 다하다가 그냥 포기.

도색에 대해 얻은 교훈은 1) 적당한 거리를 두고 (스프레이 아끼지 말고) 고르게 뿌려주기, 2) 습도가 높은 날, 비가 미친듯이 내리는 날엔 도색을 피하기..

#tamiya #ducati #desmosedici #plamodel #타미야 #바이크 #프라모델 이제 남은 건 데칼지옥..도닦는 기분으로 한땀한땀 이어붙이는 자동차 휠 데칼.

계속되는 고민. 이렇게 이쁘게 드러난 기계부를 매끈한 판넬로 덮어버리다니.

심지어 브레이크패드에도 들어가는 조그마한 데칼..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제자리에 착 붙였을 때의 쾌감 때문에 한다 정말.

#ducati #tamiya #desmosedici  #plamodel #타미야 #두카티 #프라모델 드디어 완성샷. 뻥기계에 넣어서 12배로 부풀리면 딱 좋겠다.

똥망이 된 뒷카울은 데칼로 대충 덮어놓고 나니 그럭저럭 수습이 된 거 같다. 다행..

이렇게 첫 바이크 프라모델 조립과 도색 완료. 아무래도 조만간 곧 두번째 모델 조립을 시도하게 될 듯 싶다.

#tamiya #ducati #desmosedici #plamodel #bike #타미야 #두카티 #프라모델 오토바이를 타거나 살 수 없으니 이렇게라도 대리만족~

건담 생각하고 덥썩 조립을 시작했다가, 접착제가 필여하단 걸 깨닫고 좌절. 기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만들자 해서 도색까지 하기로 하고 스프레이까지 질러버렸다.

앞바퀴의 디테일. 매끈하게 도색된 휠과 바큇살, 공기주입구의 모양까지 정교하다.

#tamiya #ducati #desmosedici #bike #plamodel #프라모델 #바이크 1.2x2.5mm짜리 나사 돌리다가 손꾸락 관절 돌아갈 듯. 가스부는 느낌이 살짝 나서 핑 도는 것도..

어차피 부품들이 쌓이고 덮여서 지워지거나 잘 안 보일 수 있는 것들이지만, 그런 부분까지 세심하게 신경을 써야 전체적으로 봐도 정교하단 느낌을 자아낼 수 있다.

#tamiya #ducati #desmosedici #plamodel #프라모델 #바이크 #타미야 #두카티 #도색 이면에 검정색을 깔아둔 부품들에게서 도무지 동일한 톤이 나오질 않는다..수십시간 기다려 가마에서 나온 도자기들을 깨부수는 도공의 심정을 알 것 같은..;

빨간 두카티의 외관이 얼마나 이쁜지는 아무래도 겉면의 판넬들이 좌우할 터. 엄청 공들여 도색을 하고 나니 반짝반짝 매끈매끈.

실제 바이크의 동력 전달방식이라거나 시스템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을 만큼 실제의 부품과 모듈 조립을 따르는 것도 매력적이다. 뒷바퀴와 체인부를 조립하고 본체와 연결하기 전.

연결 완료. 앞바퀴 카울에만 우선 붙여본 데칼을 빼면 순정순정한 새빨강 두카티.

아무래도 거슬리는 뒷카울의 도색 상태. 마르기 전 지문을 묻혀버렸고 재차 삼차 덕지덕지 칠하다 보니 상태가 완전 메롱이 되어 버렸다.

계기판의 디테일. 실제 두카티에 올라타면 이런 전방뷰가 보이겠지.

네이키드 상태로 이렇게 남겨둬도 괜찮겠다 싶을 정도의 완성도높은 동력부의 디테일. 그렇지만 역시 빨간색 외부 판넬들을 연결해야 데칼들도 붙일 수 있을 거고 두카티스럽겠다 싶어서 조금 쉬고 완성하기로.

- 걷고 싶은 아름다운 산책길 5,

동해 해파랑길 & 부산 갈맷길(윤성의)-

 

* 2016. 7. 15(금) KBS제1라디오 '라디오 전국일주' 방송분입니다.

* 아래글은 제 블로그의 글 (동해와 남해의 분기점, 부산 오륙도를 가다.)를 중심으로 재구성한 원고입니다.

 




오늘 함께 걷고 싶은 길은 동해안 해파랑길과 부산 갈맷길입니다. 해파랑길은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동해안을 따라 올라가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이르는 해변길이구요. 갈맷길은 부산에서 조성한 산책로입니다. 이렇게 두개의 서로 다른 산책로가 겹치는 구간인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부터 해운대 미포까지 같이 걸어가 보겠습니다.

부산 해운대나 광안리해수욕장 앞바다를 보면서 여기가 동해인지 남해인지 혹사 궁금했던 적은 없으신지요. 어차피 사람들이 붙인 자의적인 구분이긴 하지만, 구분점은 바로 오륙도입니다. 오륙도는 동해와 남해를 구분하는 분기점이 되는 셈인데요. 그러니까 엄밀하게 말하면 오륙도 동쪽의 해운대와 광안리 앞은 동해바다인 셈입니다.

오늘 함께 걸어볼 길은 동해가 시작되는 오륙도에서부터 해운대 끝의 미포까지 동해를 따라 걷는 길로, 해파랑길 1코스이자 부산의 갈맷길 2코스이기도 합니다. 굽이굽이의 이기대 해안산책로를 지나 광안대교를 따라 광안해수욕장을 걷고 동백섬을 휘감아 한바퀴 돌아본 후에 해운대 해수욕장을 따라 달맞이고개까지, 대략 14km 정도의 코스입니다.

광안대교와 해운대 신시가지를 한눈에 바라볼 있는 멋진 뷰포인트가 있는 곳은 오륙도 해맞이 공원에 있는 해안산책로입니다. 해안산책로를 따라 계속 이어지는 해안선의 거칠고 투박한 분위기도 맘에 들었구요. 제법 시가지와 떨어져 호젓하게 흙길을 밟는 느낌도 좋고, 마치 제주도 올레길을 걷는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설렁설렁 걷다보면 길고 웅장한 광안대교를 배경으로 바다를 내달리는 요트와 마주치기도 하고, 민락동 수변공원에 회를 떠와 파도소리를 안주삼아 술한잔 하고 계신 아저씨들의 걸쭉한 부산사투리가 들리기도 합니다. 해운대 신시가지 쪽에서는 꼼짝도 않은 수면위의 찌만 바라보고 계신 어느 강태공 아저씨도 만날 있구요. 해운대해수욕장에서 두어 블럭만 뒤로 들어가면 나타나는 해운대 재래시장도 빼놓을 없는 샛길입니다. 툭툭 불친절하게 끊기곤 하는 짧고 엉성한 골목길을 다니다보면 재미있는 풍경들을 여럿 만날 있습니다.

다만 수출입항이 있는 항구도시답게 커다란 컨테이너 화물차들이 거침없이 내달리며 지르는 소음과 진동이 그대로 전해지는 구간에서는 다소 소란스럽거나 정신이 사나울 수도 있습니다. 그럴 그냥 내키는 대로 옆길로 새거나 어느 횟집이나 카페에 들어가 먹고 마시며 쉬어도 좋겠습니다.

오늘까지 걷고 싶은 아름다운 산책길을 소개해드렸는데요. 어떠셨나요. 어떤 길이라도 좋습니다. 자동차도 자전거도 아닌 온전히 나의 발의 힘으로 걸어서 만나는 풍경은 여러분의 마음 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입니다지금까지 낯설게만 볼 수 있다면 어디서든 여행이 시작될 수 있다고 믿는 윤성의였습니다.






수백년 묵은 나무들이 뿜어내는 정기와 신비롭기까지한 분위기란 건 직접 맞닥뜨려야 실감할 수 있는 법이다. 그런 나무들이 한두 그루도 아니고 즐비하게 늘어서 아름답고 작은 성당 하나를 둘러싸고 있는 곳, 아산 공세리 성당이다.







- 걷고 싶은 아름다운 산책길 4, 경주 황남동 대릉원 지구(윤성의)-

 


* 2016. 7. 14(목) KBS제1라디오 '라디오 전국일주' 방송분입니다.

* 아래글은 제 블로그의 글 (시간이 보듬어준 경주의 듄, 대릉원의 곡선들.)를 중심으로 재구성한 원고입니다.

 

오늘 함께 걷고 싶은 길은 경북 경주 황남동 일대의 대릉원 지구입니다. 황남동은 황남빵으로도 익숙한 지명이죠. 대릉원은 신라시대 왕과 왕비, 귀족 등의 무덤 23기가 모여 있는 곳입니다. 중에는 천마총, 오릉, 미추왕릉 익숙한 관광지 외에도 박해일 신민아 주연의 영화 경주 배경이었던 경주 노서리 고분군, 노동리 고분군 등도 있습니다.

대릉원은 경주 고속버스 터미널 가까운 곳에 있기 때문에 고속버스를 타고 경주에 내리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유적지이기도 합니다. 대릉원은 제법 커다란 공원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데요. 이곳을 둘러싼 담백하고 야트막한 기와 담벼락, 그리고 너머 민가들의 수수한 기와지붕들이 잠시 시간감각을 혼란스럽게 합니다.

야트막한 언덕 같기만 무덤 하나 하나에는 각각 주인이 있고 어쩌면 무덤 안에는 여전히 찾지 못한 보물들이 숨어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눈에는 그런 귀한 유물들보다 무덤의 옆구리 곡선이 탐나게 느껴졌습니다.

사하라 사막에 갔을 반해버렸던, 바람이 만들어낸 모래언덕과 닮은 곡선이었습니다. 바람이 모래를 하릴없이 헤치고 깎고 부어내며 만들어내던 자연스럽고 우아하던 곡선, 아마 대릉원의 곡선들 역시 조금 시간이 걸렸을 , 자연의 손길은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사방이 온통 둥그스름하고 풍만한 언덕으로 둘러싸인 안온한 공간, 사이를 구비구비 휘감아 돌아가는 산책로의 모양새도 좋습니다. 딱히 어디를 찝어서 여기를 봐야겠어, 라거나 바퀴를 전부 걸어봐야겠어, 라는 욕심 부리지 않아도 그저 눈앞에 펼쳐진 곡선의 풍경들과 곡선의 길들을 따라 걷는 것만으로 행복해지는 공간입니다.

노서리 고분군도 추천하고 싶은 곳인데요, 천년을 버텼던 왕국의 무덤에서는 어느새 세월을 먹고 자라난 나무들이 자리를 잡은 풍경을 있습니다. 누가 감히 왕들의 안식처에 올라가 나무들을 심고 키우고 손봐줬을 리는 없고, 그저 자연스레 바람이 옮겨다준 씨앗을 자그마한 언덕이 품고서 물과 양분을 주며 이만큼 키워냈을 거라고 상상하면, 오랜 세월을 조금이나마 실감하게 됩니다.

대릉원에서부터 첨성대나 안압지, 계림숲이나 경주박물관까지도 설렁설렁 걸어서 닿을 있는 거리에 있구요. 오릉을 지나 포석정을 거쳐 경주 남산 아래턱을 가볍게 돌아볼 수도 있습니다. 고분의 둥실한 실루엣과 너머 야트막한 산들의 실루엣이 겹쳐 보이는 풍경, 안에서 천년의 세월을 느끼며 걸어보시기를 권해드리고 싶습니다지금까지 낯설게만 볼 수 있다면 어디서든 여행이 시작될 수 있다고 믿는 윤성의였습니다.





한남동 디뮤지엄의 새전시, 헤더윅 스튜디오전은 thinking, making, storytelling의 세부분으로 나뉘어있다. 디자인의 프로세스를 간명하게 정리한  이 세가지 열쇳말 중에서도 근간이 되는 thinking. 그에 대한 헤더윅의 문제의식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설명.

공공영역의 미술이 얼마나 창의적이고 아름다울 수 있는지. 냉각장치의 통풍구를 저렇게도 만들 수 있고, 저런 작품을 거리에 가진 도시가 실제로 있다니.

대부분의 전시물은 실제 런던이나 중국에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이 돌돌 말리는 보행교 역시 런던 패딩턴에서 있단다.

곡물창고의 미술관으로의 대변신. 커다란 원통형 저장고를 저렇게 썰어버릴 생각을 했다.

3,40년만에 새로운 디자인, 런던버스.

아부다비 사막에 지어지는 공원도 헤더윅이 고안하면 이렇게나 다르다. 땅이 갈라지고 그아래 오아시스나 지하도시가 드러난 듯한 파격적인, 그렇지만 곰곰 생각하면 실용적이고 설득력있는 디자인.

츄러스를 잡아뽑듯 스테인레스를 잡아뽑아 벤치를 만든다. 전혀 레디메이드되지 않은, 복제되지 않는 유일무이한 형태의 작품들.

그들의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데서 멈추는 건 아니다. 이 작품 같은 경우는 구슬을 일일이 위치에 맞추어 꿰고 거는데 24시간 3교대로 4개월여의 시간이 걸렸다고 하니까, 역시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

그들의 디자인 영역은 산업디자인이나 제품에 그치지 않는다. 건물과 공원, 나아가 아예 도시를 조성하려는 야심찬 프로젝트까지 진행중이라고.

이건 2010년 상해 엑스포때 본적이 있는 건물이다 싶더니, 민들레라는 애칭으로 인기를 끌었던 영국 국가관이다. (이것도 헤더윅의 작품이었다니..)

끄트머리에 씨앗을 수십만개 품은 플라스틱 봉이 건물 안과 밖을 관통한 채 빛을 머금었다.

중국의 도시 건설 프로젝트. 이런 공상과학영화의 한장면같은 공간을 실제로 구현하고 있다니.

봄베이 사파이어 증류소와 방문자 센터. 실제 건물 밖으로 저런 고풍스런 느낌의 온실을 빼내어서 술 안에 들어가는 약초들을 기르고 있다고.

헤더윅 스튜디오의 포트폴리오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굉장히 충실하고 자세하게 그들의 작품과 아이디어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왜 굳이 여기를 이만큼 공들여 소개하나 싶은 삐뚤어진 생각은 금세 사라지고, 그 방대한 작업 분야와 참신한 상상력, 구현 능력에 감탄하고 말았다.

디뮤지엄은 점점 안정감있게 발전해나가는 중, 이쁜 까페와 비스트로들도 건물 내에 많아졌고. 다만 컨셉이 많이 겹쳐보일 만큼 차별성을 못 느끼겠는 게 함정.


- 걷고 싶은 아름다운 산책길 3, 지리산 둘레길(윤성의)-



* 2016. 7. 13(수) KBS제1라디오 '라디오 전국일주' 방송분입니다.

* 아래글은 제 블로그의 글 (지리산 둘레길 2코스(운봉-인월, 9.9km))를 중심으로 재구성한 원고입니다.

  

오늘 함께 걷고 싶은 길은 지리산 둘레길입니다. 길은 지리산 둘레의 전북, 전남, 경남을 아우르며 120여개 마을을 잇는 285km 장거리 도보길로 현재 22코스까지 조성되어 있습니다.

얼마 예능 프로그램에 그중 3코스가 소개되고 많은 분들이 다녀가시긴 했지만, 굳건하게 버틴 지리산 자락 아래 많은 마을길과 샛길들이 여전히 보석처럼 숨어있는 곳입니다. 저는 틈이 때마다 조금씩 아껴먹듯 둘레길을 걷고 있는데요, 오늘은 1코스와 2코스를 중심으로 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리산 둘레길 1코스 중간에 있는 행정마을에서 맞는 아침. 예보대로 종일 비가 모양인지 꽤나 꾸물꾸물한 날씨였습니다. 멀찍이 병풍처럼 자리잡은 지리산은 온통 희뿌연 연무에 휘감겼습니다. 마을의 포장도로를 금세 벗어나 밟기 시작한 흙길, 제법 빽빽한 소나무숲길 사이로 오솔길을 따라 걷다보니 온몸이 흠뻑 부슬비에 젖었습니다.

검고 부드러운 흙바닥에 두방울 내리기 시작한 비로 인해 피어오르는 냄새, 흙냄새가 어찌나 좋던지요. 어쩌면 함께 걷고 있는 친구들 덕분에 좋았을지도 모릅니다. 황금연휴를 맞아서 불쑥 잡은 지리산행에 흔쾌히 함께 군대 친구들, 어느덧 십수년의 세월을 함께 타박타박 쌓아오며 용케 잘도 뭉쳐 다녔던 같습니다.

유려하게 구부러지는 마을길이 산모퉁이로 사라지고, 숲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풍경은 고즈넉했습니다. 그러다가 길이 민가로 접어들면 사람 사는 풍경이 소소하게 펼쳐집니다. 골목길에 버티고 나무도 싱싱하고 마을 앞으로 흐르는 개천의 발랄한 물소리와, 그쪽으로 기울인 나무들의 휘영청한 모습도 좋았습니다.

게다가 선명하거나 고집스럽지 않게 한풀 꺾여 수그러든 낡은 파스텔톤의 슬레이트 지붕이나 시멘트 벽돌담을 따라 걷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읍내 곳곳의 조금 낡았지만 정겨운 풍경들도 골목골목 들어가며 찾아보았습니다. 색이 바랜 오래된 간판과 자전거들도 카메라에 담아봅니다.

애초부터 둘레길 코스에 딱딱 맞춰서 주파해 나간다거나 정복한다는 생각은 내려놓고 가는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천리행군이나 국토대장정도 아니구요. 그보다 중요한 , 어느 장소를 제대로 느끼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일 겁니다. 눈을 크게 뜨고, 오감을 온통 활짝 열어둔 , 발바닥에 밟히는 흙과 나뭇가지들을 온전히 느끼는 , 바로 그게 산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요 지금까지 낯설게만 볼 수 있다면 어디서든 여행이 시작될 수 있다고 믿는 윤성의였습니다.




 

#자동차 #정기검사 #처음 내새끼가 훌륭한 성적표를 받아오는 느낌이 이러려나. 아주 좋은 상태의 우리 빠방이ㅋ

- 걷고 싶은 아름다운 산책길 2, 괴산 산막이옛길(윤성의)-


* 2016. 7. 12(화) KBS제1라디오 '라디오 전국일주' 방송분입니다.

* 아래글은 제 블로그의 글 (구불구불한 산막이옛길에 풀향기가 가득.)를 중심으로 재구성한 원고입니다.

 



오늘 함께 걷고 싶은 길은 충북 괴산에 위치한 산막이옛길입니다. 산막이옛길은 충북 괴산군 칠성면 외사리 사오랑마을에서 산막이마을을 이어주던 10리길, 그러니까 4km 옛길을 이르는 말인데요.

산으로 깜깜하게 막혀있던 산막이마을 주민들이 채취한 산나물이나 약초들을 강건너 읍내 장에 내다팔거나 옆마을로 넘나들 이용하던 길이었지만, 점차 마을이 작아지면서 잊혀져 가던 길이라고 합니다.

옛길 초입부터 여행자를 구불구불 따라오는 괴강입니다. 1950년대 괴산수력발전소가 들어선 이후에는 괴산호라 불리는 곳이죠. 바람 때문인지 괴산호 수면에는 잔물결이 꼼꼼히 새겨져 있었습니다. 길을 따라 걸으면 굽어진 강물, 강물 따라 또한 잔뜩 굽어진 산등성이, 이런 산등성이를 따라 새겨진 초록빛이 가득한 풍경이 활짝 펼쳐집니다.

길이 적당한 강약으로 오르내리는데다가, 적절한 보폭의 나무데크로 이어져 있어 아이들과 함께 걷기에도 좋습니다. 드문드문 나무에 묶인 그네에선 아이들이 꺅꺅 소리를 질러대며 아래쪽으로 발을 구르고 있습니다. 저러다 휘잉~ 하고 그대로 호수까지 날아갈 같은데 아이들은 겁이 나지도 않는지 마냥 즐거운 웃음소리를 던집니다.

아이들의 발랄함이 가시기도 전에 이어지는 출렁다리입니다. 이거 재미있겠다 싶어서 우다다 걷다가 일부러 흔들어 보기도 하고, 그러다가 뒤에 따라오는 꼬맹이가 완전히 겁먹은 보고 미안해졌지만 이내 걸음 가지 못해 다시 출렁출렁해보고 싶은 마음. 어린 시절 느낌 그대로, 어른들한테도 꽤나 길고 재미있던 코스였습니다.

출렁다리에서 내려와 햇살이 따뜻하게 내리 쬐이는 단단한 흙길을 밟으니 기분이 상쾌해졌습니다. 산뜻한 초록색을 뽐내며 옛길을 터널처럼 감싼 나무들, 그리고 제법 울창해진 틈새를 비집고 기어이 불어오는 시원한 산바람과 이따금씩 뚝뚝 떨어지는 햇살 조각들. 어디선가 풍기는 나무냄새, 꽃냄새까지 더해지니 정말, 한없이 걸어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약수터의 펑펑 흘러나오던 물맛도 무척이나 좋았고요. 예전에는 논이었지만 지금은 연꽃이 피는 연화담도 지나고, 60년대까지 호랑이가 살았다는 동굴도 놓칠 없는 포인트입니다. 무엇보다 지상 40m 높이에 설치된 고공전망대는 바닥이 유리로 되어있었지만, 아래 보이는 온통 초록빛 풍경과 아름다운 강물에 아이들도 겁먹지 않고 펄쩍펄쩍 뛰어 다니는 곳이었습니다.

산막이옛길의 끝은 산막이마을입니다. 끝에서 돌아오는 방법은 가지가 있습니다. 시간반 정도 걸려 꼼꼼하게 걸었던 길을 되짚어 걸어 수도 있고요, 출발지로 돌아오는 소형배를 타면 다른 각도와 높이에서 다른 풍경을 발견하면서 15 만에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혹은 본격적인 등산로를 따라 걸어 나오는 것도 방법이겠죠. 여러분은 어떤 길을 택하시겠어요지금까지 낯설게만 볼 수 있다면 어디서든 여행이 시작될 수 있다고 믿는 윤성의였습니다.


















































#플레이팅 #저녁 #접시 #내방 아무데고 '우리'란 단어를 덧붙이는 게 한국의 언어습관이라고는 들었지만, 가끔 내가 혼자 사는 곳을 '우리집'이라고 하는 건 스스로 웃긴다.

본가에서 방학맞은 학생처럼 뒹굴대며 며칠을 쉬다 오랜만에 다시 내방. (내집이란 표현은 좀 휑하고 터무니없이 큰 느낌이라 피해야겠다.) 텃밭에서 따온 가지와 떡갈비를 구워서 이쁜 접시 위에 놓고 저녁식사.




- 걷고 싶은 아름다운 산책길 1, 강화도 나들길(윤성의)-

 

* 2016. 7. 11(월) KBS제1라디오 '라디오 전국일주' 방송분입니다.

* 아래글은 제 블로그의 글 (걷는 이의 눈높이에서 재발견한 강화, 강화나들길 제1코스.)를 중심으로 재구성한 원고입니다.



안녕하세요. 라디오 전국일주 청취자 여러분. 여러분은 혹시 산책 좋아하시나요? 저는 이번 한주동안 청취자 여러분께 전국의 아름다운 산책로를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이번 저와 함께 걸어보시면, 시속 3km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꼭꼭 밟으며 음미하는 풍경은, 단지 눈에만 담기는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까지 차분하게 스며든다는 것을 느낄 있을 겁니다.

오늘 함께 걷고 싶은 길은 강화도 나들길입니다. 강화도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마니산 참성단, 진달래 밭으로 유명한 고려산, 갈매기와 새우과자가 떠오르는 석모도, 그리고 곳곳에 산재해 있는 선사시대 고인돌까지 하나씩 차근차근 이어나가 있는 곳입니다.

강화 나들길은 산책로와 옛길을 포함하는 20 코스로 이루어져 이런 지점들을 빠짐없이 아우르고 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중에서 1코스, 심도역사문화길이란 이름이 붙은, 강화도의 가장 번화한 시내에서부터 동쪽 해안가의 갑곶돈대까지 18킬로미터의 길을 걸어볼까요?

강화버스터미널에서 차를 내려 소박한 슬레이트 지붕이 이어진 골목길을 지나면 동문을 만날 있습니다. 동문은 몽고가 침입했을 고려 왕조가 강화도로 옮겨와서 항전하며 쌓은 성문입니다. 야트막한 가옥들과 눈높이를 맞춘 소박한 성문을 골목 끝에 갖고 있는 동네에서 살면 꽤나 운치 있을 같아 이곳 주민들이 살짝 부럽기도 했습니다.

동문을 지나고 만나게 되는 600 묵었다는 회나무, 그늘 아래서 자동차들도 쉬어가는 그런 거대한 나무를 보면 왠지 옷깃을 여미게 된달까요. 생명력과 연륜 앞에서, 그리고 단단히 수백 동안 뿌리박은 위엄과 경이로움에 조금 압도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걷다보니 어느새 고려궁지에 이르렀습니다. 제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한창 뜨거운 오후 2시쯤. 이곳 그늘에 앉아 아이스크림 하나 먹으며 땀도 식히고 바람도 쐬어 봅니다. 이곳은 고려 시대 몽골군의 침입으로 왕조가 강화로 옮겨 왔을 , 고려 왕조의 왕궁이 있던 곳입니다.

1코스의 끄트머리쯤에서 만날 있는 연미정은 강화 10경의 하나로, 아래로 굽어보이는 물길 흐르는 모양이 제비꼬리와 같다는 데서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풍경이나 정자가 품고 있는 시원한 바람이 예사롭지 않아 강화나들길 1코스 중에서 가장 맘에 들었던 곳입니다. 정말 경관이 굉장히 아름답고 500 느티나무도 그루나 있어 시원한 바람과 그늘을 품고 있는 곳이었지만, 이런 아름다움에 비하면 별로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 안타까웠습니다.

꽤나 한적한 나들길을 따라 걷는 정말 기분 좋은 일입니다. 나고 드는 자유롭다는 뜻의 '나들길'. 강화도에 왔다면 어디서부터든, '강화나들길' 표지를 따라 강화의 풍경을 즐겨보시는 어떨까요. 모범답안처럼 코스를 따르지 않더라도 내키는 대로 형편 닿는 대로 걸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지금까지 낯설게만 볼 수 있다면 어디서든 여행이 시작될 수 있다고 믿는 윤성의였습니다.



문득, 블로그 방명록에 이런 글이 남았다. 원체 요새 블로그 관리를 잘 안했던 터라 늦게 보긴 했지만 혹시나 하고 메일을 드렸더니...!

두둥..! KBS본관의 라디오 녹음실에 앉아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그전에 다섯 편 분량의 원고를 쓰고 방송용으로 수정하고, 다시 읽기 자연스럽도록 손을 좀 보고 '안녕하세요'만 백번 연습하는 등 마냥 순식간에 일어난 일은 아니었다. 어디서 끊어 읽는 게 좋을지도 여러번 더듬거리며 찾아보고, 대체 얼마나 발랄하거나 차분해야 할지 고민만 깊고 정작 답은 찾지 못한 채 대패닉 상태에 빠져 방송국으로.

#kbs #radio #라디오 #녹음 내가 듣는 내 목소리는 왜 이렇게 낯설고 어설픈지. 그래도 일주일 분량을 녹음하는데 한시간 만에 세이프!

2016. 7. 11~15, KBS1라디오(FM97.3) '라디오 전국일주' 2부 첫머리-대강 3시 어간-에서 뵙겠습니다.ㅋ

#코엑스 #일러스트레이션 #일러스트페어 #일러스트 #Griff 일러스트레이션페어에 참가한 친구를 볼 겸 작품들도 볼 겸 찾은 코엑스.

참가한 일러스트레이터도 많았고, 작품량도 많아서 꼼꼼히 돌아보는데 반나절쯤 걸린 듯. 대체로 고양이가 대세였고 고래가 급부상하는 형국, 손으로 그린 일러스트는 엄청 귀해졌고 그나마 글씨와 그림을 조합한 캘리그래피가 손맛을 남겨둔 듯.

그나저나 고양이는 이제 너무 대세가 되어 버린 느낌에, 고만고만한 느낌의 형상화가 진부한 감마저 주었다. 아래는 그냥 재미있다 싶었던 작품들 사진. (촬영이 허락된.)

#일러스트페어 #득템 #세계지도 #고양이 #묘한교감 수국수국한 고양이, 모히또고양이 그리고 달그대 고양이ㅋ 몇 점 집어와서 내 방을 꾸민 모습. 이쁜 색감과 아이콘들의 세계지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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