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 블로그가 조금씩 품목들이 다양해진다 싶더니, 선크림도 리뷰 품목에 올랐길래 이렇게 적었댔다.

"남성들도 피부를 가꿔야 한다느니, 꽃남이 대세라느니 말은 많지만 일단 선크림부터 찍어바르는 게 시작이란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하얗게 들뜨거나 끈적거리는 느낌이 싫어 안바르고 있었는데, 액티브 썬크림은 어떨지 기대도 되고요, 마침 여름휴가철이니 본격적으로 사용할 기회도 많을 거 같아 신청합니다~!"

용케 당첨이 되었는데, 생각보다 여름 휴가가 많이 미뤄졌다. 해서 우선 집 밖에 나다닐 때 바르기로 하고 택배상자 개봉!
 
생각보다 커다란 상자에 에어쿠션이 잔뜩 들어있었고, 그 밑에서 사뿐히 자리잡고 있던 선크림과 보디워시, 로션까지.

이런 걸 그리고 임기응변에 강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좀 성의없어 보인다고 해야 하나, 박스 한쪽 뚜껑에 적힌

메시지와 하트 마침표. 조금만 더 신경썼으면 메시지의 진심이 훨씬 잘 와닿지 않았을까 아쉬웠던 대목.

본격적인 사용후기 #1. '프레쉬 바디워시 & 바디로션'

선크림보다 먼저 써본 건 받고 나서 바로 써본 바디워시와 바디로션이었는데, 좀 실망이었다. 향이 너무 달기만

하고 산뜻한 느낌이 없어서, 화장실 내의 공기가 온통 무겁게 축축 처지고 가라앉는 듯 했달까. 게다가 로션은

뭔가 처덕처덕 바른다는 식으로 점도가 높아서 피부에 마뜨하게 스민다기보다 발라놓고 말리는 느낌에 가까웠다.

뭐...사실 이 품목들은 보너스로 온 셈이니까 딱히 리뷰를 할 필요는 없을지 몰라도, 그래도 의견을 표해주면 좀더

좋은 제품이 나오리라는 기대를 하며 몇마디 꿍시렁꿍시렁.

본격적인 사용후기 #2. 'CS3 for Men'

사실 선크림을 잘 바르지 않아 대조군이 딱히 없다. 그나마 내가 선크림을 발랐던 기억이라면 이집트와

태국의 작열하는 태양아래 뿌옇고 텁텁한 선크림을 쓴 약삼키듯 억지로 발랐던 것, 그리고 어쩌다 한 번

바르곤 씻어낼 때 물 위에 기름이 동동 뜨며 잘 씻겨지지도 않던 그런 불쾌한 느낌? 그런데 좀 나은

느낌이 들었다. 그새 기술이 진보한 건지, 아님 내가 예전에 썼던 게 구렸던 건지 모르겠지만, 뭔가

피부에 스며들어 텁텁한 느낌이 훨씬 덜하고, 바르면서도 뭔가 군인들 위장크림 바른다는 그런

처덕처덕한 느낌이랑은 거리가 멀었다. 뭐랄까, 양말 신고 그 위에 두텁고 둔한 등산양말 신는 느낌?

그런 느낌에서 조금은 많이 멀어져 있었다.


이제 다음주에 태양이 가득한 나라로 뒤늦은 여름휴가를 떠나는데, 꼭 가져가야 할 아이템으로 메모해 두었다.

가서 씻고 나서 스킨/로션 다 바르고, 그 위에 썬 크림 바를 때 조금은 덜 찝찝한 기분으로 바를 수 있을 것 같다.



식후30분 혹은 출근직후 꼬박꼬박 복용중인 카라의 미스터.

저 엉덩이의 움직임을 뭐라면 좋을까. 아...잠깐 침좀 닦고.


저번주 금요일부터 문득 걸 그룹에 꽂혀버려서, 넋놓고 뮤비에 몰입중이다.

2NE1, 소녀시대, 브아걸에 티아라까지.


뮤비를 보면 다른 걸 할 수가 없어서 그다지 뮤직비디오를 즐기는 편은 아닌데,

그냥 멍하니 뮤비에 몰입하게 만드는 그녀들♡ (사실 노래만 들음 별루..)


맨날 유튜브 들르기도 귀찮고, 찾아서 보기도 귀찮아서 아예 업어와버렸다.

식후30분, 출근직후 매일복용 중. 어 그래그래 미스터 여기쩌용~~*

- MBC
 
 
- KBS
 

- SBS


- Mnet 


* 보다보니 느끼는 점 하나.

코디를 좀더 신경써서 해주지, 춤의 매력을 죽이는 코디라거나, 모양이 같고 색깔만 다른 옷이라거나

심지어 입힌 옷 또 입히는 건 뭐냐..




장면#1.

오랜만에 친구들과 놀러가기로 한 수영장, 이게 얼마만인가.

옛 기억을 더듬어 촌스런 무늬의 수영복과 수영모를 꺼내다 보니 옆에서 뒹굴대며 함께 나오는 수경과 튜브.

일단 수영장에 들고 가기는 했는데..막상 바람을 불어넣고 나니 그 앙증맞은 사이즈란.

예전 기억에는 마냥 거대하기만 했던 초등학교 교정이 어느새 손바닥만한 사이즈로 변했듯,

허리에서 훌라후프처럼 돌아가던 튜브가 허벅지에서 멈춰버렸다.


장면#2.

수영장에서 수영만 하고 노는 사람이 어디있나. 쌩돈내고 바가지쓰는 기분으로 사든 튜브.

근데 모양이..아까 그 '어린이용' 튜브와 다를 게 없다. 나는 어린 아이들보다 최소한 일만이천육백구십삼개의

(튜브와 함께 하는) 영법을 더 상상할 수 있는 어른이란 말이다.


장면#3.

여자친구와 함께 간 수영장.
 
가뜩이나 수영장이니만치(!) 한뼘의 빈틈도 허용치 않고 바싹 붙어있고 싶은 마음일 뿐이건만,

맘과는 달리 자꾸 멀어지는 둘의 거리. 도넛같이 두터운 튜브가 자꾸 쿵쿵 부딪혀서 서로를 밀어낸다는.

에라, 차라리 튜브 두개를 끈으로 묶어버릴까.



그에 대한 해답?!

아직 시험은 못 해봤지만...능히 이런 세가지 상황을 손쉽게 해소할 수 있는 그야말로 '정답'이 아닐까.


 

 
 
 
 
 
"5월18일부터 20일까지 국립극장 문화광장등 국립극장 곳곳에서 전시될 예정이며,
전시외에도 공연,체험등의 아랍관련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으니,
남산이 푸르른 요즘, 
시간이 가능하시다면, 발걸음 하셔서,
아랍문화의 향기를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전시는 4시부터 8시까지 오픈예정입니다.)"

라고, 아랍문화축전 담당자분이 이메일을 주셨다. 정작 내가 갈 수 있을까..싶은 타이밍의 날짜들이지만,

그래도 누군가 내 사진과 글이 전시된 곳을 다녀오지 않을까.ㅎㅎ

혹시 아랍문화에 관심있고 다른 여행사진들이나 캘리그래피, 헤나, 아랍음식 등에 관심있는 분이라면, 며칠전 올렸던

아랍문화축전 행사 관련 포스팅을 참조하시길.
([아랍문화축전]꾸스꾸스를 먹고 이라크영화를 본 후에 수단전통혼례에서 결혼하기.)




위드블로그에서 이런저런 리뷰 신청을 하다가, '화이트 벤토나이트'라는 것을 주성분으로 했다는 '케어닉

스킨닥터'의 리뷰 신청을 보고 냉큼 신청했었다. 비록 벤토나이트니 신비의 광물질이니 이런 단어들은 뜬금없게도

내게 슈퍼맨의 힘의 원천 클립토나이트를 떠올리게 만들었지만, 그리고 제조사도 '(주)발렌티노 씨엔씨'라나 전혀

들어 본 적 없는 곳이었지만(그렇다고 다른 뭔가 귀에 익은 제조사가 있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지만), 일단 그런건

되고 나서 생각하자고 다짜고짜 신청부터 했었다.


그리고 집에 배달된 케어닉 스킨닥터 제품들을 꼼꼼히 살펴보며 이걸 과연 써도 될지, 부터 심각하게 고민했던

것이 사실이다. '먹지 마세요, 피부에 양보하세요'라는 세상 아닌가. 책이나 음반류와는 달리 심각한 부작용이나

적어도 피부트러블의 위험을 자초한 게 아닌가 잠시 두근두근.


결론부터 말하자면 생각보다 훨씬 만족스러웠다. 마뜨하게 스며드는 느낌도 그렇고, 각종 미네랄이 풍부하다고

해서 그런지 피부톤도 좀 밝아지고 건강해진 듯한 느낌이다. 찡그린 표정에 칙칙한 톤의 사진을 비퍼(Before)라

칭하고, 활짝 웃는 낯에 뽀샤시한 톤의 사진을 애프터(After)라 하며 자사의 제품 효과를 광고하는 온갖 이미지들이

범람하는 가운데, 벤토나이트 케어닉 스킨닥터를 체험해 본 근 3주간의 내 생활을 하나하나 적시하며 효능이

있음을 증명키로 한다.


< 내부 요소 >

1. 수면 부족 : 주말에도 거의 매일 밤 2-3시에야 잠들어, 이른바 피부재생의 시간이라는 밤 10-12시 타임을 전부

수면이 아닌 다른 것에 할애했다. 기상시간 역시, 10시쯤 일어났던 주말을 제하고는 매일 7시이전..

2. 음주 : 한 주에 3일 정도는 술을 마셨던 듯 하다. 맥주, 소주, 소맥, 양주, 와인, 빼갈...

3. 흡연 : 마침 직간접 흡연이 절정에 달했던 기간. 담배를 몇년간 안 피다가 다시 피게 되었고, 하루에 많을 때는

한 갑씩도 태웠다.(최근 다시 끊었다.)

4. 스트레스 : 별다섯개, 그것도 왕별 다섯개짜리 스트레스가 쭉. ★★★★★


< 외부 요소 >

1. 황사 : 올해는 그나마 황사가 덜한 편이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황사는 '피부의 적'이다.

2. 건조함 : 비무장지대에서 잘도 번지고 있다는 대형 산불 탓도 있을 테고, 버석버석한 느낌의 계절..봄.

3. 컴퓨터 : 근자에 동영상 강의를 듣는 것도 있고 블로그에 좀 시간을 더 할애하는 듯 하니, 아무래도 컴퓨터의

전자파나 열기가 피부에 도움이 될리는 없고, 인체에 유해할 거다.



< 기타 요소 >

1. 닭튀김 : 후라이드 치킨을 몇 차례 맥주안주로 먹은 바, 특히 날개와 껍데기에 탐닉하여 콜라겐을 섭취하려

애썼으나 그 양이 소량인 고로 피부에는 미미한 효과를 미치는 데 지나지 않았으리라 사료됨.

2. 흑초 : 상무님이 드셔야 할 흑초를 1:3의 비율로 냉수와 희석하여 아침마다 장복한지 몇주 되어가는 듯 하며

배변생활에서의 명랑함을 기하고 있기는 하나, 아직 피부에까지 효험이 이르지는 못한 듯 하여 기각함.



..이런 와중에도 피부가 뒤집어지지 않고 최소한 Before와 After가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은 반대로 당시

체험중이던 '벤토나이트 케어닉 스킨닥터'의 탁월한 효과를 반증하는 건 아닐까. (이건 왠지 서프라이즈의

믿거나, 말거나 하는 나레이터 톤을 연상시키는 듯..)


용산참사 2개월이 지났음에도 도무지 지지부진한 채 '망각'되기만을 기다릴 뿐인 듯한 상황을 보다 못한 만평

그리시는 분들이 나섰다는 기사를 어디선가 보았었다. 그래서 내 다이어리에 남았던 짧막한 메모 한 줄.

"3.27-4.9. 용산gaja전. 이대 1번출구방향 공정무역카페 '티모르'".

메모를 따라 찾아간 '티모르'는 자칫 놓치기 쉬울만큼 조그마한 입구를 따라 오르면 2층에 있는 조그마한

공간이었다. 전시회를 까페에서 어떻게 한다는 걸까 궁금했었는데, 아주 단순했다. 벽면을 따라 빼곡히 만평들을

걸어놓았고, 까페에 오르는 계단 양옆에도 크게 프린트된 만평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자리를 잡기 전 그림들을

따라 한바퀴 까페를 돌았다.

이번 만평전은 용산, 그리고 가자지구의 참사를 주제로 하고 있었다. 용산 문제는 아무래도 이명박 대통령에게

화살이 귀결되기 마련인지라, 이명박을 직접 때리는 만평이 대다수였다. 입구에서 마주쳤던 이 사진작품은,

뚜비,나나, 뽀 버전 보라돌이 이명박..정도 되려나.

올해 2월 이스라엘이 하마스와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며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비판과 항의에도 불구하고

가자지구를 맹렬히 공격했을 때의 이야기를 담은 만평이다. 당시 이스라엘 집권당에서 코앞에 닥친 총선을 위해,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총풍'을 불어오기 위해 가자지구의 피바람을 일으켰다는 날카로운 지적. 역시..절묘하게

핵심을 짚은 그림은 살짝살짝 빗겨나가며 주절대는 몇백마디 말보다 강력하다.

사진 한 컷, 그림 한 장, 그리고 짧막한 촌철살인의 대사 몇 마디. 까페 안에 전시된 만평들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용산참사, 그리고 가자지구의 그칠날 없는 피바람의 이야기는 그렇게 정제되고 압축된 프레임 속에서

거의 유사한 지위의 집단으로 나타난다. 사회에서 배제된, 존재를 부정당하는, 약자. 

그 반대편에 선 것은, 탱크와 총칼과 콘테이너박스로 무장한..스스로 합법화한 폭력 집단.

단지 한 컷짜리 만평만 있는 건 아니었다. 내가 이미 한번쯤 본 기억이 있는 프레시안의, 경향의, 그리고

죄송스럽게도 이름조차 생경한 각종 지역신문의 네컷짜리, 혹은 그보다 긴 컷을 가진 만화들도 있었다.

마침 내가 갔을 때엔 까페 안에 사람들이 없어서 맘편히 돌아다니며 전부 구경할 수 있었다. 아마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차를 마시거나 공부를 하고 있었다면, 그 자리 윗켠에 붙은 만평들을 보는 건

아쉽지만 포기해야 했을 거다.

까페 '티모르'는 동티모르에서 공정무역 원칙에 입각해 재배한 커피를 판매하고 있다고 한다.

이대 근처에 이런 까페가 있다니, 주말에 혼자 커피 한잔 시키고 앉아서 책 한권 늘어지게 보기 좋은

곳인 듯 하다. 만평들을 보는 것 외에 예기치 못하게 얻은 또 하나의 소득.

원래 만평가분들이 구경온 사람들의 캐리커쳐도 무료로(!) 그려준다고 읽었어서, 카운터에 물어봤더니

그 분들은 어제그제 계시다가 오늘은 안 나오셨다고 한다. 자못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으니 일단 한구석의

테이블에 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자그마한 수첩이 낙서장, 혹은 메모장의 소임을 띄고 동그마니 놓여 있었다.

요런 게 바로 만평 아닌가. 조금만 더 시의성 있는 이슈를 공간 내에 넣었다면 완벽했을 텐데,

저 근육과 주름살이 꿈틀대는 이명박의 얼굴을 보라. 둘러멘 삽자루 하며. 어느 센스높으신 분의

작품인지 모르겠지만, 혼자 메모장을 첨부터 끝까지 구경하는 내내 킬킬거렸다.

테이블 위에 낙서장과 함께 놓여있던 필통..이랄까. 엉성하게 깍인 몽당연필 세자루가

차곡차곡 메모장에 더해지고 있겠지.

내가 자리잡은 테이블 위에 내려뜨려졌던 귀여운 새모양 장식. 토실토실하게 살이 오른 빨강새가

둔탁하니 길지도 않은 날개를 활짝 핀 채 테이블 위를 날고 있었다. 이슈가 이슈이니만치 때론 살벌하고

독하다 싶은 만평들 속에서 유난히 눈에 띌 수 밖에 없던 귀엽고 앙증맞은, 속 편한 빨강새.

이런 식인 게다. 용산을 밟아버린 용역, 견찰, 검찰, 그리고 그 위의 돈다발로 사자머리인양 치장/위장한

개발사업자(x데) 개 네마리가 서로 학학대며 붙어먹고 있는 그림. 더욱 가관인 건 그 개 네마리뒤에 붙은

검은 쥐 한마리가 '사랑했읍니다'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 그들의 단백질 팽팽하게 곤두선 넓적다리 아래에는

꼬물대다가 이리저리 밟히는 '벌레'들의 꽥꽥대는 소리. 빨강새의 핀트가 나가버리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정말 잔혹하달까, 그림이..그리고 세상이.

만평들로부터 눈을 돌려 창밖을 내려보니 꽉찬 3월의 햇살이 유유하다. 내 맞은편으로 아까운 줄도 모르고

떨어져내리는 햇볕이 빛과 어둠의 영역을 가르지만, 까페 안에는 온통 용산과 가자지구를 '망각'으로부터

구출해야 한다는 외침이 있을 뿐이다. 이렇게 햇살이 좋은, 여느 때와 별다를 바 없는 날에도 사람이 죽고,

기억에서 밀려 또다시 죽곤 하는 거다.

그냥, 가슴이 답답해져서 나왔다.

쉴새없이 쏟아지는 이슈들, 이제는 왠만한 건으로는 놀라거나 분노하지도 않을 만큼 굵어져버린 신경줄,

너무나도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세상이라 사람 몇 명 죽어나간 건 고작 한 달짜리 단기기억으로 족한 걸지도

모르겠지만. 이제는 어쩜 계속 이 문제를 잡고 시비거는 사람이 '쪼잔하고 순진해 빠진,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이라 여겨질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미안한 척이라도, 립서비스라도 해줄 생각않는 그 오만함과 막장스러움은

역시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 3. 27 ~ 4. 9 "용산 GAJA 전", @ 까페 '티모르'.



#1. 시크릿은 실컷 웃을 수 있는 연극이다.

공연 소개를 아무리 보아도 이게 대체 어떤 류의 이야기를 할 지는 감이 잘 안 왔다. 대충 사랑이야기이겠거니,

게다가 정신병원이 배경이고 니가 미쳤니 내가 미치고 있느니 사실은 미치지 않았느니 운운 이야기하는 걸로 보아

뭔가 '미쳤다'는 것이 갖는 의미를 보여주려는 연극은 아닐까 생각했었다.


한시간 반 정도의 공연 시간, 한시간 십분 정도는 계속 웃고 있었고, 그 중에서도 삼십분 정도는 빵 터졌으며, 또

그 중 이십분 정도는 박장대소를 했던 듯 하다. 정신병원이란 배경에서 능히 상상할 수 있을 또라이 연기를

천연덕스럽게 해내는 배우들도 훌륭했고, 이러니저러니 덧붙은 살들이 있긴 했지만 역시나 재미를 극대화하는데

주력한 티가 역력한 에피소드와 개별 씬들도 딴 생각없이 실컷 웃을 수 있을만큼 재미있었다.


#2. 시크릿은 관객과의 소통을 특히 유의한 연극이다.

어느 연극이 안 그렇냐만은 초반부터 무대와 관객석 간의 유리장벽이 통쾌하게 부숴진다. 쉼없이 관객을 호명하는

배우와 그에 응하며 맘껏 즐기는 관객들의 호흡이 역시 연극에 대한 만족도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이지 싶다.

내가 보았을 때는 특히 반응이 좋았던 관객 한 분이 계셨어서 더욱 큰 웃음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던 것 같지만,

시크릿이란 연극 자체가 관객에 크게 의지하고 있다.


다만 다소 '상식적인 수준'에서 쉼없이 이야기되는 정치나 시사에 대한 이야기들은, 에잇, 까놓고 말해 이명박에

대해 빈정대며 이리저리 비난/비판하는 대사들은, 오히려 너무 '대통령 까댐'이라는 시류에 편승한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진부하고 내용이 없어서 아쉬웠다. 차라리 좀더 생생하고 와닿는 이슈를 가지고 그런 이야기를 끄집어 내고

희롱했다면 좀더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 텐데.


#3. 바이올린 현이 파들파들 떨며 우는 소리는, 자칫 손발을 오그라들게 만드는 첩경이기 쉽다.

메시지나 교훈 따위 끄집어내지 않고 그냥 실컷 웃고 즐기면 되는 연극이라고 생각했는데, 불쑥 바이올린 현이

길게 울다간 파들파들 흐느끼는 소리를 내며 극의 분위기를 급냉각시키며 분위기를 잡으면 좀 당황스럽다. 이러한

경우 그런 감정의 오르내림을 함께 하며 몰입할 수 있다면 멋지겠지만 대부분 관객들이 그간의 몰입 상태에서

튕겨나오는 당혹감을 느끼기 때문에 다소 아쉽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불평하곤 하듯이, 웃겼다 울렸다 관객을

주무르려는 제작자의 의도에 대한 반감은 이러한 튕겨나옴에서 비롯하는 걸 거다.


설득력이 약하거나 다소 급작스럽다 싶은 감정의 과잉 분출, 변환이 역시 시크릿에서도 나타난다. 뭔가 인생에

대해, 사람에 대해, 사랑에 대해 한 마디 해주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는지 정신병원의 노인은 광소를 터뜨리며

뭔가 아포리즘이 담긴 문단을 읊고는, 기적처럼 스르르 제혼자 열린 문으로 퇴장하는 거다. 좀더 작은 목소리로,

좀더 담백하게, 그리고 좀더 간접적으로 담을 수도 있는 이야기였을 텐데 너무 전면에 불쑥 내세워버린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굳이 그전까지의 유쾌한 분위기를 확 가라앉힐 필요가 있었는지 싶기도 하고.


#4. 비록 손발은 잠시 오그라들었지만.

전체적으로 무척이나 재미있었던 연극이었다. 그리고 연극계 최초로 관객들을 대상으로 '다단계식' 홍보를 한다는

당찬 선언에 맞게 대박났으면 좋겠다. 갠적으론 홀로 감정몰입해 흐느끼는 바이올린 선율은 왠만하면 쓰지 않았음

좋겠다. 이미 배우의 연기만으로도 충분한데, 거기에 바이올린 소리까지 더하는 건 오바 아닐까 싶다. 그리고도 넘

진부한 연출 아닐까.


아...이런 게 아니다.

이런 싸구려 색감이 아니었는데. 그리고 그림의 그 크기 자체에서 풍겨나오는 느낌도 전혀 다르다.

아무리 인터넷을 디비고 구글신님께 빌어보아도..애초 내가 보았던 그 '무지개'가 안 떠오른다.


Larc'n CIel. 라크엔시엘이 불어로 무지개란 뜻이었구나..

샤갈이 죽을 때까지 지니고 있었다는 작품. 시립미술관의 퐁피두 전에서 보았던 작품 중 가장 눈에 들어왔던

작품이었다. 에펠탑과 노틀담사원, 달빛 아래 거리, (아마도 그녀의) 여인...그가 평생 품고 있었던 기억의

편린들을 펼쳐놓은 것만 같다. 그리고 특별히 하얗고 빨갛게 만곡한 곡선들은 모자 쓴 한 남성으로부터 그

모든 것들로 너울너울 펼쳐지고 있다. 그 남성은 왠지 마그리트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그' 같기도 하고.


한마리 거대한 새가 몸을 유연히 비트는 그 각도 그대로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굴절되는 기억들,

그 풍요로운 기억들 자체가 바로 샤갈의 무지개였나보다.


근데 아무리 찾아도 애초 원화가 가졌던 그 마력적인 다홍빛 배경과 주제의 색감을 그나마 전해주는 파일이 없다. 

아......복제화라도 사야겠다.






한국 힙합 뮤지션은, 글쎄..그다지 장르를 가려듣는 편은 아니지만 힙합은 딱히 땡기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아마도 '거리의 시인들' 정도가 내가 최근까지 굳이 앨범을 사가면서 들었던 한국 힙합 뮤지션이던가 싶을 정도.

그만큼 힙합이란 장르는 내겐 꽤나 낯선 것이다. 


견문이 천박해서겠지만, 왠지 힙합은 다소 겉멋에 치우쳐 수입되고 소비되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있었다.

특히 팝송도 제대로 이해 못하는 판에 알아듣지 못할 영어 라임으로 꽉찬 힙합 음악을 듣는다는 건 뭐랄까, 정작

중요한 부분을 놓친 채 나머지만을, 심하게 말하자면 겉멋만을 취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더군다나 그들의

노래는 대부분 분노한, 상처받은 목소리로 뱉듯이 읊어지고 있었기에 더욱 그 가사가 중요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런 데다가, 락을 좋아하던 시절에 락 스피리츠 어쩌구 했던 것처럼, 힙합의 소울이란 게 있다고는 하지만, 과연

한국의 힙합이라는 게 '비주류와 저항의 음악'이라고 자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회에 대한 살벌하고 나름

거침없는 비판을 던지던 '거리의 시인들', 그 중 한 멤버인 노현태가 이명박의 대선 캠프에서 홍보송을 부른 것도

모자라 대운하 찬양송까지 불렀다는, 최근에야 뒤늦게 알게 된 뉴스는 한국에서 소비되는 힙합이란 건, (본토에선

어떤지 잘 모르겠으되) 이미지가 중요한 일개 상품일 수 밖에 없다는 확신을 더욱 굳혀 놓았었다.


그런데 화나, 그의 첫 정규앨범이라는 이 앨범은 그 두가지 면에서 모두 살짝 내 흥미를 간지럽힌다.

그는 '라임폭격기'라거나 '라임몬스터'라는 별칭으로 불리나 보다. 그의 라임은 어쨌든 몇번을 들으면 귀에 익어

뜻이 전달될 수 있는 한국어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어쨌든 난 네이티브 한국인이니까-, 중간중간 폭발하는 듯

내달리는 라임들이 여전히 의미불명이긴 하지만 대개 메세지를 이해하며 듣고 있다. 그리고, 그의 음색. 불만에

차서 분노를 터뜨리는 듯, 때론 냉소하듯, 또 때로는 잔뜩 칼날이 쑤셔박혀 상처입은 듯 아파하는 목소리까지

왠지 뭔가 중독성있게 귓가를 맴돈다. 그의 이름이 왜 화나, 일까..화난 목소리가 매력적이어서? 따위 말도 안되는

상상까지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예전에는 곡 하나하나를 뜯어서 듣는 스타일이었는데, 요샌 갈수록 노래를

BGM으로 쓰고 있어서 딱히 몇 번 트랙 무슨 노래에 어떤 메시지가 담겨 있더라, 라고 기억해내지는 못하겠지만..


이번주 시사인 잡지에 실린 조국 교수의 에세이에 보면 최인훈의 '서유기' 중 한 대목을 인용하고 있다.

"당대가 이른 가장 높은 문명 감각의 정상에 서서 당대가 이른 가장 높은 현실 정치에 대해서조차 비판하는 것,

이것이 진보가 살 길이다."

약간 바꿀 수 있을 것 같다. 굳이 거창한 역사의 진보라느니, 의식적인 지향이 아니더라도, 어떤 음악은

"현재 이곳에서 이뤄진 가장 현대적인 감각의 정상에 서서 현재 이곳에서 이뤄진 가장 당연해 보이는 기득권에

대해서조차 비판하는 것"이 가능하고, 또 필요하지 않을까.

물론 힙합 자체를 순치되고 상업화된 형태로 소비하는 것 자체도 부정하거나 비판할 생각은 없다.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래도 '비주류와 저항의 음악'으로서 힙합을 자처하고자 하는 뮤지션들은 계속해서

나올 거라고 생각하고, 또 개인적으로는 나왔으면 한다. 누군가는 문화와 음악이 태생에서부터 비주류와

저항의 몸짓을 담고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마도 화나도 그런 묵직한 힙합을 계속 할 수 있지 않을까.



운좋게도 위드블로그에 베타테스터로 선정되어 활동을 시작한 지 한달도 채 안된 기간에 적벽대전2, 레저베이션

로드, 더 레슬러 같은 영화도 볼 수 있었고, 고병권의 추방과 탈주 같은 책도 읽을 기회도 잡는 등 솔찮이 재미났던

게 사실이다.


물론 그때마다 리뷰를 남겨야 하는 건 다소 부담이 없잖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런 엄연한 외력을 빌어

자발성을 빙자한 리뷰를 써제끼면서 혼자 즐거웠으니 됐지 싶다. 내가 무슨 IT 첨단제품에 대해 조예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얼리어답터도 아니어서 별로 신제품에 관심도 없고. 걍 클래식하게 영화나 책 같은 거나 보고

끼적대는 게 딱이다 싶었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문득 오즈에서 체조위젯을 리뷰해달라면서 신청자를 받고 있다는 걸 보고 냉큼 신청해

버렸으니. 나도 몰랐지만 아마 사무실에서 온종일 엉덩이만 키우며 앉아있는 게 꽤나 무료했나 보다.


이제 보니 저런 식으로 신청을 해놨었다. 아닌 게 아니라 나름 사무실에서도 찌뿌드드한 몸을 펼 수 있는 몇 가지

쓸만한 동작들이 있어서 몇개씩 따라해 보다가 내게 가장 잘 맞는 운동을 찾아냈다.

바로 이민기의 졸음예방체조.


점심먹고 돌아와 앉으면 쏟아지는 졸음과 무기력증, 뻣뻣해지는 근육들의 아우성을 입막음하기 위한 나름의 비책.

구분동작으로 알아보고 실생활에 응용키로 한다.

이민기가 활짝 웃고 있는 첫 화면.
에헤이~ 남은 바빠죽겠는데 또 조신다~ (니가 뭘 안다고 에헤이~냐?ㅡㅡ+)
자, 따라해 보세요~ (너 이자식 계속 짝눈 뜨고 이러고 있다)
하나~
둘~
하나~ (반대편으로)
둘~
에헤이~ 왼쪽 어깨 따라가면 안돼요~ (나랑 대화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려는 꼼수 따위..통할지도.)
그렇지, 그렇게요! (친한 척 하는 건 맘에 안 들지만, 칭찬받으니 왠지 기쁘다는..)
상체는 세우시고요, (두 팔을 깍지껴 뒤로 젖히고는 아래로~)
(또 위로~)
어때요? 잠이 확 깨시죠? (이러면서 얼굴이 커졌다 작아졌다, 열심히 들이대는 민기)



www.idoser07.blogspot.com


"19일 이 인터넷 사이트는 항불안성, 항우울성, 마약성, 진정제, 성적흥분 등 모두 10개 부문으로 나눠 73개의 아이도저 MP3 파일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마약성 부문에서는 코카인, 헤로인, 마리화나 등 모두 28가지의 마약을 느낄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이 파일을 들으면 해당 마약을 흡입한 것과 같은 환각 증상을 준다는 것."(09.02.19. 헤럴드경제)


사이버 마약이라고 해서 궁금했다. 대체 뭘까 싶어서, 우연찮게 알게 된 싸이트에 접속해 들어갔더니 수십개의

트랙이 무료로 다운로드가 가능하단다. 다소 시간을 잡아먹는 광고를 기다려 다운을 몇 개 받아서 들어보았더니

이게 뭔가 싶다. 중학교 다닐 때던가, 옆친구가 쓰던 엠씨제곱을 잠깐 빌려 들어본 느낌이랄까.


"사이버 마약은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알파 파장(7~13Hz)과 지각과 꿈의 경계상태로 불리는 세타파(4~8Hz), 긴장, 흥분 등의 효과를 내는 베타파(14~30Hz) 등 각 주파수의 특성을 이용해 사실상 환각 상태에 빠져들게 하는 것으로 일명 ‘아 이도저(I-Doser)’로 불린다." (09.02.19, 헤럴드경제)


계속해서 삐이이이이~ 하는 소리가 약간의 파동을 치며, 빨라졌다가 느려졌다가 쉼없이 들려온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살짝 꾸룩꾸룩거리면서 전혀 다른 파동과 빠르기로 옮겨가기도 하고. 이런 소리를 들으면서 어찌 마약을

느낄 수 있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미 우리는 뇌파에 자극을 주어 집중력을 강화하거나 긴장을 풀어주거나

할 수 있다고 공인된 기계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지 않나. 뭔가 효과가 있겠거니, 참고 계속 들어봤다.

10분짜리 음악..이랄까 소리..랄까 다 끝나갈 때쯤 소리가 귓전을 쨍-하고 울리며 점점 고조되어 갈 때엔 뭔가 되는

듯한 느낌이 들긴 했는데, 만약 이게 맞다면 정말 약한 것 같다.

기껏해야 빈 속에 말보로 레드를 두 대쯤 연달아 피웠던 느낌 정도? 아님 PVC파이프를 갈아 만든 듯한 중국산

담배를 소주와 함께 피우는 정도? 스트롱버전도 있다니 나중에 한번 해볼까 싶기도 하고.


뭐랄까, 어렸을 적 '전생여행'이라는 책을 사며 부록으로 전생으로의 퇴행이 가능하다는 정신과의사의 최면테입을

열심히 들어 보던 때가 자꾸 기억이 났다. 누워서 릴랙스하며 발끝부터, 손끝부터 긴장을 빼고 심연으로 가라앉는

느낌을 가지려 애쓰다 보면, 어느 순간 숙면을 취하고 말았었다.


그러고 보면 그때도 나름 부작용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신문에선가, 신문에서 봤다는 친구의 입을 통해선가,

혹은 그 친구에게 들었다는 친구의 입을 통해선가, 어느 학교 학생들은 그걸 시도하다가 최면이 깨질 않아 병원에

실려 갔다느니, 심각한 정신적 충격이 있었다느니..모든 것들은 부작용을 수반한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제쳐

놓더라도, 이렇게 뇌파를 직접 자극해서 감각을 상상시키는 시대가 오다니. 여기에 약간의 3D 입체영상만

구비된다면 마치 공각기동대에서 나올 법한 한 장면 아닌가 싶다. 가상이 실제를 조금씩 잠식해 들어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우려거니와, 살짝 머리가 아픈 거 같다. 하갸 실제 마약류도 두통이 수반된다고

들었지만.



뭐, 어쨌든 한번은 되었다 싶을 때까지 들어볼 생각이다.

생각있는 분들은 한번 시도해 보시길. 누굴 해하는 것도 아니고, 방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요 머.


요런 것도 있는데, 글쎄..궁금하신 분은 시도해 보시길. 정말 그 표정부터 공각기동대의 한 장면 같지 않은가.





관련기사 : '사이버 마약' 아이도저 급속 확산중 (http://www.heraldbiz.com/SITE/data/html_dir/2009/02/19/200902190199.asp)




빈 마음 속의 동요(Riot in empty heart), 고상우라는 작가의 작품이다. 구불구불 잘 말린 머리칼과 비대칭의

앞머리. 그리고 새침하게 내려뜨린 기인 속눈썹 밑에는 어떤 눈빛을 숨기고 있을까. 뺨에 선명한 손바닥

자국은, 그녀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었음을 은유하는 걸까. 한참동안 바라보았지만 좀체 그녀의 속내를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2층에는 좀더 그럴 듯한 공간이 있었다. 아마 서울역사박물관으로 쓰이던 공간이었는지 중간중간 흔적이 남아

있기도 했다. 그 너른 공간을 채운 커다란 사진작품들은 그 몽환적이고 묘한 느낌의 색감으로 뭐랄까, 공간 자체를

익숙한 것으로부터 스멀스멀 밀어내는 느낌이 들었다. 색이 뒤집어진 사진들과 죽어버린 듯한 색감의 역사만으론

도무지 안 되겠다 싶어서, 일부러 "피가 흐르고 심장이 뛰는"(와타나베 曰) 사람 두 명을 집어넣다.

몇 개씩 천장에 달려있는 샹젤리제들하며 높은 천장, 아마 1, 2층 통틀어서 이공간이 가장 야심차게 뭔가를 해볼

수 있는 곳이 아닐까. 그래서 그런지 전시된 작품들도 대형작품이나 연작이 많았다. 이 전시회 관련 기사에 함께

뜨는 사진들이 모두 이 곳에서 찍힌 것들임을 와보니 알겠다.

이 곳이 한때 "한국철도공사"가 운영하는 서울역사의 일부였음을, 그리고 또 서울역사박물관으로 쓰였던 곳임을

증거하는 흔적들. 그니까 여긴 '교양실'이자 '제1전시실'이었던 건가. 아님 '교양실'이었는데 '제1전시실'로 바뀐

걸까. 어느 쪽이던 이상하다. 저 눈에 잘 띄지도 않을 만큼 소심하게 문짝 위에 올라붙은 명패는 대체.

사진들이 보통 잔뜩 헐벗고 남루해진 벽들을 가리듯이 걸려있던 다른 방들과는 달리, 이방은 그래도 멀끔한

나무장식들도 살아있다.

정확한 이름은 여전히 모르겠지만, 라디에이터라 그러나. 흔히 보는 것과는 다른, 조금은 고색창연해보이는 모습의

라디에이터가 수줍게 벽면 안쪽으로 숨어있었다. 저건 혹시 일제시대때 설치된 건..아니겠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왠지 생김새나 때깔이 그때까지 거슬러가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한 켠에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이런 벽난로도 있고, 여기 그러고 보니까 댄스홀 정도로 써도 별 손색이 없겠는걸

하고 생각했다. 터키의 톱카프 궁전이나 파리근교의 베르사유 궁전, 머 이러저러한 궁전들에서 보았던 천장높고

화려하게 치장된 방들에야 못 미친다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준수하지 싶다. 다소 키치스럽긴 하지만 유럽의

고풍스런 건물들을 상상하게 만드는 왼갖 장식들. 아님 이 방에 들어서기 전 내가 지나온 곳들이 워낙 눈높이나

기대치를 낮췄던 탓일까.

그 방을 빠져나오니 다시 시작된 버려진 건물 순례. 깻잎처럼 붙어있는 낡고 닳은 벽지조각과, 온통 터져버린

페인트칠, 그리고 배관설비와 전깃줄이 몽창 드러난 헐벗은 곳에 드문드문 이빨빠진 샹젤리제의 불빛이

붕붕 떠있다.

이게 그 깻잎사이즈로 벽에 남은 벽지의 추억..이랄까.

고색창연한 문짝에 달린 놋쇠장식들. 둘러보다 문득 들었던 생각은, 조선시대의 기와집이나 궁궐만이 아니라

그 이후의 어정쩡한 근대 따라잡기 시대에 지어졌던 이런 건축물들도 우리가 지켜야 할 (전통)문화가 아닐까

싶었다. 그게 비록 서구 문화의 껍질만을 흉내낸 거라거나 어색하고 어설픈 미성숙의 것이라 할지라도. 이런

시기를 거치면서 비로소 지금까지 흘러온 걸 테니까 말이다.

창문에 저렇게 흰색 천을 늘어뜨리고 빛을 가려놓았다. 영화 '디 아더스'같은 데 나왔을 법한 주인없는 집에서

가구들이 모두 흰색천을 뒤집어쓰고 창문에도 흰색천을 가려놓는 장면이 떠올랐다.

2층 어디메쯤에서 내다 본 옛 서울역사의 머리꼭대기. 분명 새파랗게 맑을 하늘이 지저분한 유리창에 겹쳐서는

누덕누덕해졌다. 어디쯤에선가 방에 들어서면 새로 지어진 서울역사에서 KTX가 출발함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고스란히 들리기도 하고, 또 기차가 덜컹거리는 소음과 진동이 몸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같은 장소를 찍는데 카메라 렌즈가 빛을 얼마나 받아들이고 머금느냐에 따라서 사진의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사진전을 보면서 카메라를 찰칵대려다 보니 왠지 주눅이 드는 것 같기도 하고 좀더 잘 찍어야 되지 않겠냐는

안타까움이 들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저런 각도, 저런 느낌의 사진은 따라 찍어봐야겠다 싶어 눈여겨보게 된다.

예컨대 요런 사진도, I'm lost without you. 작가가 적당한 느낌의 벽에 저렇게 낙서를 해놓고 사진을 찍은 건지

아니면 우연찮게 저런 낙서를 발견하고 찍은 건지야 알 도리가 없지만, 중구난방 쓰레기통같이 감정들이 소용돌이

치는 맘속에서도 뚜렷이 형체를 갖추고 한가운데서 소곤거리고 있는 저 문장. 저 마음.

세상에 막 출현한 아이. 아직은 삶이란 더러운 것임을 기억하고 있는 지라 인상이 바가지다. 금세 잊고 찡얼대며

젖을 찾고선 배시시 웃겠지만.

나도 파리를 갔었고, 그 중 며칠은 비가 내렸으며, 에펠탑은 지나는 길에 몇번이나 발에 채였음에도, 더구나 노란

색이 아닌 파란 색 에펠탑이었거늘. 사랑은 ㅁ다. 사진도 ㅁ다. ㅁ은 타이밍. 그치만 사진은 ㅁ+ㅁ'랄까.

ㅁ'는 역시나, 영감 혹은 스킬. 꽤 다른 것들인데 하나로 묶고 만다.

내가 에펠탑이 보이는 저 샤요궁전 발코니에서 꼭 해보고 싶었던 게 바로 저런 포즈..

Reflection. 올해 계획 중 하나는 데세랄을 기어코 사는 거다.

뉴욕에 있을 때 그래피티들에 열광했었다. 그렇게 화려하고 멋지진 않지만, 자연스레 박살난 합판 벽재와 뻘건

글씨의 낙서들은 이미 뭔가 자체의 생명력을 얻은 듯 했다.

고대의 벽화를 보는 것도 아닌데, 고작 백년은 커녕 수십년밖에 안 되었을 사람의 더께가 조각조각 부서져내리는

광경이라니. 저런 식으로 계속 벗겨지고 벗겨지면 차라리 엄청나게 깔끔하고 깨끗한 뭔가가 드러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마치 여름철 뙤약볕에 잔뜩 탄 살결에서 보풀이 벗겨지는 것 같다.

걱정스럽던 건 여기 정말 불이라도 나면 비상구 표시등은 제대로 켜지기나 할까, 스프링쿨러 따윈 언감생심일테고.

그래서였을지는 모르지만, 문들을 활짝 열고서 고정시키는 데에는 어김없이 통통하고 짜리몽땅한 빨간 소화기가.

소화기들을 엊그제쯤 일제점검하며 한번 걸레질이라도 했는지 다들 유난히도 반짝거려서 조그만 위화감도 일었다.

무슨 영화 세트장같은 느낌이었다. 침침한 조명 아래 한켠엔 사진액자가 열맞춰 늘어서 있고, 다른 쪽엔 오래전에

쓰였을 뿐 더이상 쓰이지 않는 물건들이 늘어서있고. 창틀에 걸려 부서진 햇살은 복도끝에 정좌한 액자에 무심히

내려앉는 중이다. 차분히 아래를 굽어보는 있으나마나한 샹젤리제까지.

깨진 유리창 이론이 어쩌면 이 곳의 전시 스타일을 설명할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잔뜩 낡고 부서져내리는 공간에

사진을 전시하려다 보니 빨간 테이프로 대충 창문틈도 바르고, 화살표도 바닥에 대충 찍찍 만들어 붙이고, 조명

틀 역시 각목으로 대충 뚝딱해서 훤히 드러나게 세팅하고. 또 그래야 공간과 전시가 어우러질 테고. 실제로 깨져

있던 창문이 하나 눈에 띄었지만, 그렇다고 저걸 보고 사람들이 나머지 유리창도 발로 차거나 돌을 던져 깨뜨릴 것

같지는 않다.

그 허술하고 긴장감없는 전시 기획을 한 눈에 보여주는 간이 의자..랄까, 이거 제대로 버틸까 겁나서 앉을 엄두도

못 냈다. 널빤지 몇개로 뚝딱거리고는 자주빛 벨벳같은 걸 살짝 얹어선 스테이플러로 고정시킨 거 같은데 전시장

전체에 적지않게 살포해 놓았더랬다. 하기야 이곳에서 가죽이 매끈한 푹신 의자를 바라지도 않는다.

날 상당히 감동시켰던 문구들. 촬영자(작가..라는 거창한 말 말고라도)의 인문학적 배경과 감성적 섬세함, 결국엔

촬영자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한장의 사진. 애매모호하고 사적으로 보일지라도, 작가 그자체를 바로 느끼게 하는

매력이 있다는 얘기. 언어나 문자에 비해 직관적으로 성큼 다가설 수 있는 가능성이 크긴 한 것 같다.

물론 어느 정도의 성취를 이룬 사람들에 한한 이야기일 테지만, 사진을 좀 본격적으로 다뤄보고 싶은 욕망이 불끈.

드디어 세시간여 관람을 끝내고는 출구를 찾아 다시 입구로. 사진전에 왔으니 사진들을 보는 거야 당연하다지만,

옛 서울역사를 이렇게 구석구석 구경하고 다닐 수 있던 것도 무지 기억에 오래 남을만한 경험이었던 것 같다. 그게

고작 세시간 돌아보고는 관련 포스팅을 세개나 하며 사진을 덕지덕지 올리면서 주절주절대는 이유기도 하다.


어제는 연휴 마지막날이자 내생일이었어서, 뭘 할까 생각하다가 며칠전부터 맘에 담아두었던 사진전을 보러가기로

했다. 혼자 유유히 전시회 보러다니는 걸 함께 보러다니는 것 만큼이나 좋아함에도 한동안 혼자 뭘 보러 갔던 적이

없었단 걸 문득 깨닫고,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처럼 서울역사로 향했다.
번듯한 서울역사의 높다란 계단위에서 바라본 옛 서울역사는 커다랗고 밋밋한 건물들 사이에서 위축되어 보였다.

낡고 닳아보이는 담갈색의 벽과 청회색의 지붕에서 풍기는 고즈넉하고 부드러운 느낌은 차갑고 깍쟁이같아 보이는

유리와 철의 배합인 서울역사에 비기자면, 못나고 수더분한 시골아지매같다. 서울역사에 갓 상경한 할머니같은.

서울역에서 지하철을 내려 거리로 올라설 때면 늘 뭔가 당혹스러움과 낯섬이 포함된, 묘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한쪽에선 으레 종교를 선전하는 악다구니가 들리고, 이공간의 분위기에 녹아들지 않는 타인들이 돋을새김처럼

눈을 어지럽히며, 겨울임에도 코를 찡하게 파고드는 노숙자들의 노골적인 냄새. 게다가 대개 이곳에선 성난

사람들이 파도처럼 넘실대며 사기를 북돋우는 장면을 마주하길 기대했었고, 나 역시 그런 열기를 품고 오곤 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적 284호. 옛 서울역사는 사적 284호였다. 둘레를 온통 칭칭 감고 있는 저 출입금지의 팻말이 어디서 끊겨있을까.

아마 그곳이 이 안에서 열리고 있는 서울국제사진페스티벌에 입장하기 위한 입구일 테다.

마치 폴리스라인처럼 둘러쳐진 출입금지선 너머엔 비둘기들만 유유히 주인인 양 뽐내며 걷고 있다. 그 위에서부터

운치있게 나려드는 아치형의 기둥, 달랑 내려뜨려진 조명등이 작동은 할까, 문득 궁금했다.

옛 서울역사의 야트막한 2층 건물은 꽤나 넓은 양지바른 공간을 노숙자들에게 許하고 있었다.

건물이 높아지면 그늘도 길고 짙어진다. 바랜 갈색잎을 잔뜩 달고 섰는 나무를 살짝 굽어보는 퇴락한 역사.

빙 둘러쳐져 있는 출입금지 폴리스라인에 난 균열을 발견했다. 2008 서울국제사진페스티벌. 언뜻 보면 잘 알아채기

어렵겠다 싶은 게, 바로 앞에 있는 화단의 앙상한 나무가지들이 수북히 시야를 가리고 있다. 옆으로 틀어서 잘

보이게 사진 한장.

들어섰다. 팔천원짜리 대인 표를 끊고 썰렁한 전시장으로 들어섰더니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건 천장. 가뜩이나

관람객이 드문 점심때쯤의 휑함과 누추함을 더 강렬하게 하는 천장의 터져나간 페인트와 장식무늬. 단정하고

심심한 네모무늬 창문에서 쳐들어오는 햇살도 천장에는 가닿지 않는다.

태극무늬가 바로 세워지게 딱 각맞춰 한번 찍어본다. 태극무늬를 품고 있는 봉황 네마리가 박제처럼 뻣뻣해 보이는

감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예전엔 좀더 금빛으로 번쩍대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1층 홀 한가운데에서는 "Black Dogs"라는 이름이었던가,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의 뒷모습을 찍은 작가의 특별전이

전시되어 있었다. 사람들의 뒷모습만으로도 저런 느낌을 낼 수 있구나, 라는 내 감탄은 어쩌면 그 옆에 나란히

전시되었던 그들의 고백과도 같은 짧은 수기로부터 온 것인지도 모른다. 사진과 글, 두가지 텍스트가 조합되면

그중 하나만 쓰이는 것보다 훨씬 더 깨끗하고 깊이있게 자신의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것 같다.


이 사진과 이 텍스트는 사실 제 짝은 아니었는데, 머 사실 이렇게 저렇게 얽어놓으면 다 그럴듯해 보이는지도

모르겠다고 비로소 생각해본다. 어쨌든 텍스트는 "나는"이라고 말을 시작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순간 낯설게

만들어주었던 일종의 화두랄까. 그리고 꽃덤불이 땅속에서부터 피어오르듯 단단히 땅위에 피워올려진 저 사람.

아마 엉덩이 밑으로는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깊고 넓은 뿌리가 뻗어나가 있을 거 같다.

서울역사 안에 있는 커다란 시계는 여전히 안녕했다. 제 시간에 맞춰 잘 돌아가고 있었는데, 혹시 알고 있으려나.

2009년에는 1초가 늘어난다지 아마. 누군가 챙겨줘야 할 텐데. 음..파리의 오르세미술관에 있는 화려하고 반짝이는

시계와 비교하기는 많이 담백하달까.

뭐랄까, 롯데월드 어드벤처같은 놀이공원에 가면 돌처럼 위장한 속이 텅텅 빈 플라스틱 껍데기들로 포장된 공간이

많이 보인다. 대리석 대신 시멘트 위 처덕처덕 발라진 하얀색 페인트를 조명빨로 숨기고 있기도 하고. 그런 느낌.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 세워진 대리석기둥들과 요모조모 장식이 곁들여진 천장과 사면의 벽들을 보고 있으면 뭔가

어색한 키치의 냄새가 난다. 그런 위화감과 조악함이 한국이 근대를 수입해온 시대의 어쩔 수 없는 트렌드랄까

지배적인 심상이였을지도 모르겠다.

허옇게 분칠된 고등학생의 어설픈 화장술이 자꾸 연상되던 대리석 기둥들.

한 옆에는 사람들의 참여로 이루어진 게시판이 있었다. 각자 찍은 사진을 들고 오면 한명이 무료입장 가능하댔나.

그리고 관람객들이 맘에 드는 사진에 스티커를 붙여 가장 많이 받은 사진 출품자에게 상품을 준다는 식이다.

꼭 저렇게, 엉덩이 한가운데 붙이고 양 볼에 연지곤지를 붙여넣는 사람들이 있다.(내 취향이다..랄까.)

역사에 있는 방들, 복도들을 모두 전시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제각기 특징을 가진 문들을 지나 다른 공간으로

넘어서면서 마주하게 되는 독특한 방의 인테리어, 그리고 새로운 느낌의 사진들. 비록 문을 지탱하고 있는 것들이

소화기였다는 사실이 계속 걸리적거렸음에도 꽤나 매력적이었다.

전선이 빨랫줄마냥 늘어져 있고, 온통 헐벗은 벽면에 뼈대가 드러난 채 설치된 조명시설들. 사진보다는 그 전시

공간 자체에 한동안 눈이 먼저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한귀퉁이가 깨진 천장에는 그래도 예전엔 꽤 발랄한 선홍색으로 발색했을 이국적인 문양들도 보이고, 드문드문

이빠진 채이긴 하지만 불을 밝힌 샹젤리제도 있고. 이곳이 역사로 활용되던 시절 이곳은 무슨 공간이었을까.

철창살이 끼워진 유리창 너머 보이는 출입금지의 표지. 정말 철창살 너머, 저런 폴리스라인같은 경계선을
 
바라보자니 어딘가 사건 현장 한가운데 들어와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마치 이 건물과 이 공간이 보이지도 않는

양 바삐 걸음을 재촉하는 외부의 사람들. 하기야 밖에서 보면 딱 철거되기만을 기다리는 노쇠한 건물이다.

건물 안으로 새어들어오는 찬송가 소리, 그리고 확성기를 통해 울려퍼지는 선전선동 소리.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바닥에 엉성하게 화살표를 만들어 붙여놓는 데에도, 출입금지 구역을 막아놓을

때에도, 그리고 벽면에 동선을 그려넣거나 들어가면 안 되는 문에 엑스자 표시를 할 때에도, 게다가 하다못해

'관계자 외 출입금지' 딱지를 붙여두는 데에도 모두 빨간색 테이프를 활용했으니..가히 만능 테이프라 할만하다.

건설현장에서 노가다할 때 느꼈던 콘크리트 건물 날것의 싸한 냉기와 살짝 두렵기까지 한 낯선 느낌. 이 공간에

사람들이 가득 차있고 손때를 탔다면 훨씬 인간적이고 따스한 공간이었을 텐데, 여긴 더이상 쓰이지 않고 버려진

곳. 사람의 온기를 잃고 뭔가 괴물같고 초현실스런 느낌이 뭉실뭉실 커나가서는 순식간에 공간이 황막해졌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역시 역사를 개조해서 만든 파리의 오르세미술관을 상상하면서 왔었지만, 막상 와보니까 이건

어디까지나 철거를 기다리는 건물을 잠시 재활용하는 정도인 듯 하다. 나름의 운치도 있고 외려 그런 막나가는

인테리어가 내 맘에야 꼭 들지만, 어쨌든 이상태를 보면 계속 전시공간이나 문화공간으로 활용할 생각은 아닌것

같다. 파이프가 이렇게 구불구불 벽과 천장을 타고 구불거리는 걸 보면 외려 퐁피두미술관하고 비슷하다.

커다란 사진작품들이 걸려이씨고, 그 옆에 그 사진보다 작은 조그마한 문이 나있다. 왠지 사물의 비율이나 크기에

대한 감각이랄까 현실감각이 시험에 든 느낌이 들었다. 원더랜드에 와서 하얀토끼를 쫓는 앨리스같은. 그치만

이 원더랜드는 많이 헐었군. 파이프가 얼기설기 벽을 기어다니고, 하얀색 백열등은 할짝대며 사진을 탐한다.

그리고 어둠이 들이찼던 공간은 사람이 연다.

이런 풍경. 사진 자체가 이미 '익명성'이란 제목의 초점잃은 누드사진이었으니..내 시선이 가닿았던 곳은 사진들이

아니라 역시 오래되어 자갈처럼 쌓여있는 벽돌들이었다. 뭐든 세월이 지나면 자연스러워진다. 반듯반듯 모서리의

까칠함까지 살아서 잔뜩 긴장한 채 열맞춰 쌓여있었을 벽돌들이, 비록 그 모서리의 까끌함이야 여전하다 할지라도

훨씬 긴장이 풀린 채 처억 척 늘어서 있다. 저대로 수천년쯤 지나면 피라밋이 마치 자연적인 산처럼 느껴지듯

그런 무위'자연'의 경지에 들지도 모른다. 가만히 냅둔다면.

문득 들어서니 이방의 테마는 뭐야, 거울의 방정도로 잡은 건가. 사진작품이 내걸려있는 벽면이 온통 맞은편을

반사시키고 있었다. 덕분에 엉거주춤한 상태로 사진 한 장. 혼자 다니는 데 치명적인 약점 하나는, 자신의 사진을

남기기가 쉽지 않다는 것. 행인지 불행인지.

문득 눈앞에 나타난 문을 통과하려다 눈에 띄었다. 저 스테인드글라스. 원래 있던 거였겠지? 뭔가 조잡하다 싶은데

살짝 유쾌해지려고 했다. 그 쌩뚱맞음도 그렇거니와, 대체 이 공간은 어떻게 쓰였던 거지 상상하면서 말이다.

제법 운치있고 잘 보존되어 있는 방이었다. 천장에 붙은 장식들도 그랬지만, 벽지 가운데쯤 둘린 띠도 그렇고,

가지런히 내려앉은 커튼도. 노란색 불빛이 따스하다.

방마다 심심치 않게 보이는 저 벽난로들. 실제로 쓰였던 건지는 모르겠다. 애초 쓰였는데 벽돌로 막아둔 것 같기도
 
하고, 애초 장식용으로 설치된 것은 아닌지 싶기도 하고. 저런 벽난로가 있는 방, 화톳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면

참 볼 만 했을 텐데 아쉬웠다.

어떤 전시실은 이전의 허름한, 그치만 나름 자부심을 가졌을 명찰을 채 떼지도 않고 있었다. "귀빈실". 일종의

VIP대기실이란 얘긴데, 역시 이곳저곳 망가지고 해어진 것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한쪽 천장이 온통 무너져내려있었다. 참 심하다 싶으면서도, 저 상태 그대로 안전사고의 위험없이 보존될 수 있다

하면 그 또한 살짝 파격적인 전시 공간으로 충분히 가치가 있을 것 같다. 아니라면 뭐, 리모델링을 싹 하던가 해서

조금은 더 깔끔하게 꾸며도 좋을 거 같고. 1층을 이리저리 종횡하면서 옛 서울역사가 어떻게 무너지고 망가지고

있는지도 많이 보았지만, 건물 자체가 나름 매력적이란 느낌이 들었다.

잔뜩 허름해보이지만, 과거에 이곳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들고 나면서 서울로 올라와 출세를 꿈꾸고, 누군가는

시골(지방)으로 되돌아가서 남겨둔 사람들을 그리기도 하고. 그렇게 버글버글했을 그림을 맘속에 그려보면

금방 또 이미지가 퍼올려진다. 그리고 그런 그림들은 서울역사에서 내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떠나고, 누군가를 배웅했던 기억들과 함께 이 삭아가는 건물에 온기를 불어넣어주고 있다.




옛 서울역사 1층을 휘휘 둘러보고 2층으로 오르는 길. 뭔가 꼬불꼬불한 장식들이 허리춤에 잔뜩 매여진 계단

난간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올라섰다.

1과 1/2층에서 돌아본 전시장 풍경. 빨간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서 화살표가 되고 출입금지선도 되어 다소

살풍경해 보이기도 하지만, 저너머에 따뜻해 보이는 연한 주홍불빛과 커다랗게 프린트된 사진작품들이 덕분에

더욱 화사해 보이는 것 같다.

계단을 올라가다가 문득 바라본 천장에 붙은 벽면. 페인트가 온통 쩍쩍 갈라져서는 터져 나갔다. 참 오래되기도

했지만, 사람 손이 안 닿는 건물이란 게 참 금세 황폐해지는구나.

정확히 1과 1/2층 벽면에 있는 그림. 저 움푹 들어간 곳은 뭔가 전시를 해놓거나 화분을 두려고 했던 장소일까.

아님 정확히 저 공간에 꽉 끼어들어갈 만한 수조라도 채워넣던 걸까. 그 밑에 있는 앙상한 필치의 그림이 그려진

타일들은 좀 뜬금없지 싶기도 하고 이뿌지도 않고 그렇다.

화장실. 포스팅을 하면서도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건지 싶기도 하지만, 화장실 표시가 장소마다, 나라마다 얼마나

다를 수 있고 또 재미있을 수 있을 텐데 유감스럽게도 여긴 좀 아닌 듯. 전혀 특징도 없고 주변 배색을 고려치도

않았으며, 전혀 기차역 화장실이라는 느낌을 던지고 있지 않달까. 그 '기차역 화장실'스러움이 뭐냐면 당장 할

말은 없어도, 그래도 뭔가 쌈빡한 게 있을 텐데.

이곳은 어쨌거나 '갑작스러운 수도공사'로 인해 단수가 될 수도 있는 철거 직전의 낡고 닳은 건물인 게다.

그런 건물에서 사진전을 벌이겠다는 아이디어는 참, 처음 이런 전시가 열리고 있다는 기사를 봤을때부터

깜찍발랄한 느낌이 팍팍 들었었다.

화장실 안 창문에서 내다본 바깥세상. 겨울날 같잖게 따스한 햇볕이 나려앉은 1월의 서울역앞 광장. 때와 먼지가

구질구질하게 달라붙은 유리창에 그려지는 창살 그림자가 선명하다.

1과 1/2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중턱에서 바라본 2층 복도. 약간 노리끼리하면서 바랜듯한 색감도 그렇고, 진회색

타일과 달걀색 도료도 그렇고, 분위기가 있다는 표현이 좀 어울리지 않나 싶다. 


부록. 옛 서울역사 1층에 있는 화장실. 서울국제사진페스티벌 매표소와 카페를 겸하고 있는 공간 옆에 붙어있는

이 공사판 날림형 화장실같은 곳은 더이상 벽지나 타일로 말끔했을 분장조차 지워져 버렸다.

세줄요약)

1. 난 굳이 전철에 시사인을 놓고 내린다.

2. 시사인을 보니 구 서울역사에서 서울국제사진페스티벌을 한다더라.

3. 오르세 미술관보다 매력적인 공간이 생겨난 게 아닐까. 가보련다.



조금 안 좋은 습관인지 모르겠지만, 출퇴근길 오며가며 시사주간지를 읽고 나서는 꼭 머리 위 짐칸에 그 잡지를

얌전히 놓고 내리곤 한다. 이왕이면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될 수 있고, 5호선처럼 종점에서 차고에 들어갔다가

한번 싹 쓰레기를 치우고 다시 나오는 데 말고 2호선처럼 뱅글뱅글 돌면서 (만약 운이 좋다면) 최대한 수거하시는

분들 눈에 안 띌 수 있는 데로 나름 신경도 쓰고 있다.


조금은 사람들이 내가 보는 잡지를 함께 봐줬으면 하고, 그로부터 조금은 더 색다른 시각과 생각을 얻을 수 있다면

좋겠어서 굳이 그러고 있다. 그래서 내가 잡지를 위에 올려놓자마자 누군가 덥썩 집어갈 때 참 기분이 좋다.


저번주 시사인 69호(09. 1. 5일 발행)에 나왔던 기사 중에, 구 서울역사에서 열리고 있는 "서울국제사진페스티벌"에

대한 내용을 읽고선 꼭 가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관련기사 : 옛기차역에 걸린 인간이 만든 풍경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580)



벽지가 너덜거리고 파이프 배선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으면서도, 세월의 더께가 입혀져서 뭔가 미묘한 느낌과

함께 따뜻한 운치가 느껴지는 서울역사 건물은 굳이 뭔가 더 손대고 이뿌게 꾸밀 필요 없이 독특한 미술관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옛 역사가 미술관으로 변신한 사례는 이미 파리에서 오르세미술관을

둘러봤기 때문에 별로 낯설거나 생뚱맞지는 않았다. 외려 무지 반갑기도 하고, 우리나라에도 저런 시도가

가능하다니 놀랍기도 하고, 그래서 꼭 가보고 싶어졌다.


오르세미술관처럼 구 서울역사도 이전에 특징적이던 전면의 커다란 시계를 여전히 작동시키고 있을까. 그리고

오르세미술관처럼 그곳의 높은 천장을 그대로 살린 채 정말 탁 트인 느낌으로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을까. 어쩌면

금빛으로 번쩍거리며 화려하고 웅장한 느낌의 오르세미술관 보다는, 약간 쇠락한 듯 하면서도 온기가 여전한,

서울역사의 때묻고 살짝 꾸질하기까지한 외관이 더욱 매력적일지도 모르겠다.

([파리여행] '오흐세미술관'이라고 읽어야 파리지앵?(http://ytzsche.tistory.com/174)




새롭게 메탈과 유리로 치장한 초현대식 서울역사가 생겨나기 전까지, 드문드문 기차를 타던 기억이나 설레고 기쁜

마음으로 누군가를 마중갔던 기억, 그리고 그 역사 앞에서부터 깃발든 단체들이 모이기 시작해 집회를 하고는

소공동 쪽이나 종로쪽으로 거리 행진을 함께 했던 기억들. 공식사이트에 들어갔더니 원래 1월 15일까지 하기로

했던 "서울국제사진페스티벌"을 2월 1일까지 연장하기로 했단다. 아마 생각보다 찾는 사람들이 많았나 보다. 그건

사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진 탓일 수도 있고, 또 이런저런 기억이 서려있을 서울역사에서 새로운 기억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설렘과 기대 탓일지도 모른다.


다만..계속 쓰면서 불편한 건데, 구 서울역사 구 서울역사 라고 되뇌이는 거 좀 바보같다. 뭔가 이뿌고 그럴듯한

이름이 있으면 좋겠고, 그전에 그 공간이 계속 예술과 문화를 위한 공간으로 남아있었으면 좋겠다.

동대문운동장이나 서울시청 별관(..이던가)처럼 오래고 낡았다고 기억에서 지워버리는 것이 능사는 아닐 테니까.


꼭 가야겠다.


국립현대미술관에 백남준전시관을 보러 갔다가, 우연찮게 도슨트의 도움을 받아 몇개의 작품들을 둘러보았다.

그 중 참신하기도 하고, 주변에서 자주 보았던 것 같은 기시감이 들던 작품 한 점이 있었으니 에릭 올(Eric Orr)의

"물조각"이라는 작품. 멀찌감치서 보면 무슨 날씬하게 빠진 비석같다는 느낌도 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검은 색 대리석이 장중하게 서있고, 작은 모터를 이용했는지 어쨌는지 그 꼭대기에서부터 물이 흘러내린다.

자세히 보면 대리석에는 마치 세밀한 빨래판처럼 가로로 홈이 차근차근 파여져 있어서 물이 아래로 곧장

흐른다기보다는 군데군데서 물결을 만들면서, 번져가는 느낌을 준다.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니 물이 조그맣게

야트막한 개울가 소리까지 내면서 그 둔덕들을 움찔움찔 타넘어가고 있었다. 한쪽 다리 먼저 넘기고, 끙차,

기합과 함께 다른 다리를 마저 넘기는 듯한 물의 조심스런 흐름.


도슨트의 말로는 작품값도 상당한 이 작품을 정기적으로 청소해줘야 한댄다. 물때가 쉼없이 앉기 때문에

곰팡이도 끼고 그런다고. 그렇다고 거칠고 우왁스런 철수세미같은 걸 써서 청소하면 홈이 다 닳아버릴테고,

그렇다면 이 작품의 생명은 끝장나는 셈이기 때문에 최대한 부드러운 치솔같은 것을 쓴다고 했다. 살살살.


사실 이러한 원리, 이러한 디자인을 가진 작품은 우리 주위에서 금방 찾아볼 수 있다.

그랜드컨티넨탈호텔, 조선호텔같은 럭셔리한 공간의 로비뿐 아니라, 인천공항 입국심사장에도 유사한 컨셉의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그러한 작품이 아니라 '상품'으로서도 참 많이 마주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가장 정통적인 형태로 에릭 올의 작품을 따른 가정용 분수대는 사실 홈쇼핑이나 인터넷쇼핑몰에서 팔린 지

꽤 오래되었을 거다. 다만 그 원전의 형태가 에릭 올의 작품이라는 걸 알고 파는지, 알고 사는지는 차치하고서

말이다. 이미 이런 유사한 컨셉의 가정용 분수대는 다양한 변용을 통해 그 사이즈 면에서나, 디자인 면에서

애초의 형태를 많이 탈각했다. 만약 그러한 변용된 형태의 것을 먼저 보았다면, 그로부터 에릭 올의 작품을

떠올리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필요할 거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주요 공공장소에 설치되어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온 에릭 올(Eric Orr)의 물조각, 이렇듯 실생활에서 예술작품의

아이디어가 살아있을 수 있다는 건 그 작품이 갖는 심플하면서도 실용적인 의미를 잡아낸 덕분일까.

어쩌면 에릭 올이 자신의 예술을 창작하면서 전하고자 했던 물흐름의 안온함과 평화로움이 이런 식으로

전파되어 나가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상품화된 '분수대'의 비싼 가격대라거나, 한갓 찰나적인 트렌드에 힘입은

것 뿐이라는 등 삐뚤게 보면야 꼬집을 게 더러 나오겠지만서도, 최소한 편안히 앉아 쉬면서 조용한 방안

한구석에서 들려오는 물흐르는 소리..정도의 쾌감 그 자체에는 한표를 주고 싶다.


그렇지만 뭐니뭐니해도 지금 내가 사무실 내 자리 옆에 가장 놔두고 싶은 분수대는..바로 토토로 분수대.
사용자 삽입 이미지

8월 말부터 9월 초까지, 앞뒤 토일껴서 9일동안 여름휴가다.

행선지는 파리. 사실 서유럽을 포함한 '제1세계' 국가들을 가보는 건 좀더 나이가 든 이후로 미뤄두고, 당분간은

네팔, 캄보디아나 탄자니아..이런 곳에서 거지처럼 여행다니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유학중인 친구 신세 좀 지고 다녀오기로 했다.


막상 파리 가기로 했다는 얘기를 하니, 부럽다는 반응들이다. 내가 히말라야나 킬리만자로 트래킹하러 네팔이나

탄자니아 갈까 한다고 했을 때와는 영 딴판인 반응, 왠지 '파리'라는 명칭과 장소가 갖는 특별한 아우라가 있긴

한가 본데..나도 그런 걸 좀 갖고 가야 할 거 같아서, 이런저런 이미지와 스토리를 미리 챙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보게 된 게 "파리의 연인".

총 20부작에 파리를 무대로 한 건 고작 3화 중간까지. 그마저도 세느강변을 거닐던 씬은 한강에서 찍은 거였다는

누군가의 제보. 사실은 군제대하고 바로 터키,이집트로 떠나느라 이 드라마를 끝까지 못 봤던 게 못내 아쉬웠던

거 뿐이었던 거다.


핏줄의 비밀, 기억상실증, 왕자와 신데렐라, 착해빠진 주인공, 삼각관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이경우엔 기주

삼촌-형에 대한 수혁의 박탈감이 되겠지만), 재벌 혹은 대기업 총수일가...하나씩 깨서 보면 그렇게도 통속적이고

뻔한 이야기들인데, 재미있었다.

뻔한 시작과 끝에 뻔한 갈등들이지만, 대사들이, 울음이, 웃음이 너무 이뻤달까나.


마지막 회에서 불쑥 '액자 밖으로 튀어나와 버리는' 시나리오작가 김정은(태영이가 아니라)과 뭐하고 사는지

모르지만 여전히 잘사는 박신양(기주가 아니라)과의 조우 in Seoul. 그녀의 시나리오처럼 가정부도 겸하고 있는

김정은은..모종의 아우라로 치장된 '파리'도 아닌데, 그리고 시나리오 속의 '태영이'도 아닌데, 이야기 속 정제된

대사들을 현실에서 풀어놓으며 주고받는다. 척박하고 치사한 서울에서, 쌔끈하게 빠진 기승전결로 향해 달리기도

힘든 리얼 삶속에서.


동화속의 사랑이 현실에서도 가능하다는 따스한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랄까, 아님 그런 사랑이 현실에서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라는 우호적이고 긍정적인 물음표랄까. 더러 황당하고 어이없었다고 했던 마지막이었지만,

내겐 그랬다.

그래, 지금까지 니가 본 건 드라마야. 궁상맞고 청승스럽지만 스포트라이트받는 주인공이 결국엔 해피해피해지는

드라마. 그치만 현실에서도 그런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구, 니가 주인공이라고 믿기 어려운 팍팍한 삶에

해피엔딩을 믿기 힘든 세상이지만 그래도, 사랑이란 걸 한번 믿어봐, 라는 식의 마지막.

드라마를 많이 보지 않지만, 2004년 여름까지 그런 식의 한걸음을 내딛었던 한국드라마는 드물었던 듯 하다.


*
수영할 줄 알아요? 난 수영 못하거든요.
거짓말했어요. 나 수영잘해요.
근데 그쪽도 거짓말 한 것 같아서요.
내가 옆에 있는게 싫다 그랬죠? 그게 거짓말 같아서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이해안되는 건 나도 마찬가지에요.
내가 니스에 갔던 건 돈때문이 아니었으니깐. 내 마음이 원한 거라구요.
그런 내마음값으로 도대체 얼마를 준다는 거에요?
(자존심이 문제를 해결해주진 않아.)
모든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는 것보다는 나아요.

*
우리 애기 놀랜 거 안보여요?
우리 애기 안놀랬니?
오빠가 알아서 할께.

애기야, 가자~

*
자기를 좋아하는 누군가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건 당연히 상대방을 좋아해주는 거잖아.
그런데 만약에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라면 아주 작은 희망도 주지 않아야 하는 거래.
왜냐면 그 작은 희망도 상대방에게는 큰 고문이 될 수가 있으니까.
그래서 희망고문이래.


내가 강태영한테 배운게 두가지 있다.
하나는 사랑하는 법.
또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법.
근데 나는 머리가 나빠서 사랑하는 법 밖에 모르겠다.
만약에 나중에 너를 다시 만나도 사랑하는 법만 배울꺼다.
다른 누구가 아니라 강태영하고 사랑하는 법.


이제부터 당신에게도 좋은 추억이 많이 생길꺼예요.
그 안에 있는 난 항상 웃는 모습이었으면 좋겠어요.
내 추억 안에 있는 당신도 항상 웃고 있을테니까요.


이것보세요 한기주씨.
미안할때는요 그냥 미안하다고 하구요.
고마울때는요 그냥 고맙다고 하는거에요.
그런말 서툴다고 억지로 뻐팅기지 말구요.
고치세요. 그럼. 자존심세우면서 사과하는 방법은 없어요.


그거 알아요?
저기, 여자들은요.. 그런 상상 가끔 하거든요..
화려한 사람들 틈에 나 혼자만 시든 꽃처럼 앉아있는데
어디선가 백마탄 왕자가 나타나서 내 이름 불러주고,
내 어깨 감싸안아주고, 흩어진 머리카락 가만히 쓸어주는 상상...
거기다 대문앞까지 바래다주면 그건 너무 완벽하잖아요.
.. 갈께요.


니 눈에 난 안보이니? 나 안보여?
난 어땠을 것 같은데?
사랑하는 여자가 내 앞에서 우는데
내 힘으론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어서
다른 남자에게 부탁해야 하는 내 기분은 어땠을것 같은데?
내가 지금 무슨 말 하는지 몰라?
이안에 너있다.
니 맘속에 누가 있는지 모르지만, 내 맘속에 너 있어.

*
다행이죠?
(뭐가? 다시 못보게 된게?)
나쁘게 헤어지지 않아서요..
정말 고마웠어요. 파리의 일까지 포함해서 내가 평생 할 수 없는 일들을 하게 해줬어요. 좋았어요, 나.

*
나 죽어도?
너 나 죽어도 이럴 거야?!
이까짓 일로 죽을 사람이었으면 헤어지기 더더욱 잘했네요.
그리고 헤어진 뒤에 죽고사는 것 나 관심없어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연애?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같이 밥먹고 바래다 주고?
원하지 않아도 도와주려 그러고?
큰 상처 안주려고 작은 상처 주려고 애쓰면 그게 연앤가?
그러면 하는 거 같고.


잭 니콜라우스가 얘기했던가?
내 기술은 의심해도 내 클럽은 의심하지 않는다.
플레이어가 자기 자신외에 어떤 것도 비난하면 안되잖아. 비겁하잖아.
공을 치는건 클럽이지만 그 클럽을 휘두르는 건 나지.

사실 나는 기억이 차곡차곡 쟁여지고, 그러한 기억들이 계속해서 누적되면서 '나'를 이루는 걸 거라고

생각했었다. 비록 가끔은 손실되기도 하고, 적당한 모습으로 재구성되기도 하겠지만, 대체로 내가 문득 의식을

감지한 유년의 어느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기억들, 살면서 쌓아온 느낌, 경험, 그런 것들이 무한히 축적될 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그러한 내가 가진 기억들과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가진 기억들이 '나' 자신을 구성하는 거라면,

그렇게 쌓여가는 경험치를 통해서 조금씩 맘에 드는 모습으로 다듬어갈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수도 없고 쉽지도

않겠지만 '발전'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었다. 이놈들을 끌어안고 나아가면 성숙할 수 있을 거라고.



그런데 아니다. 사람이란 게, 한없이 넓어지고 깊어질 수 있는, 끝없이 무언가를 쟁여넣고 손실을 최소화하며

보관할 수 있는 지퍼달린 크린백이 아니었다. 우연찮게 소거되거나 무의식적으로 재구성되는 기억의 소실만이

아니라, 어느 시점...문득 본격적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기억들, 자신의 살점들,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내가 나 자신이라고 믿고 있던 이미지들, 관념들, 기억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던 경험들, 아니면 관계들..조금씩

밀려나고 후퇴하고 있다고 설핏 느끼고 있던 오래된 살점들이 먼지가 되고 어느 순간 콸콸 소리를 내며 내 몸을

투과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시간이 흘러가고 기억이 더해지고, 더이상 빈 공간을 찾을 수 없으니 이전의

것들을, 지금의 내게서 멀어져버린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거다. 상실해야 한다는 거다.



물론, 그 자리에는 새로운 기억들과 새로운 관계들, 그리고 새로운 감정들이 다시 채워진다. 예전에 알고 있던

나와는 약간 다른 모습, 그리고 약간 다른 체취를 가지고, 자신을 구성하는 새로운 요소들로 '나'를 소개하기

시작한다. 이제 된 건가. 나비가 허물을 벗듯 몸에 안맞고 시간에 지체되었던 기왕의 자신을 변화시켰으니

된건가.



아니. 문제는, 이제 알아버렸단 거다. 사람은 (적어도 나는) 버린단 행위에 절대 익숙치가 않고 버려야 할 거라는

생각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전의 껍데기와 사고들, 나 자신을 구성하던 온갖 층위의 관계와 기억들은 마치

초딩 때의 일기장처럼 어딘가에 계속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단 사실이 깨어져 나갔다. 게다가, 그

당혹스러운 '상실의 의무'에 더하여, 처음 몸을 찢고 기억이 버려질 때 생긴 상처는 아물때쯤 해서 다시금

몇번이고 다시 파열되고 마는 마법같은 행사가 된다는 거다. 이제 평생 계속해서 리싸이클링될 '나'란 존재의

쓰레기 배출구가 되어..일정량 이상의 시간이 모이고 그사이 침잠해버린 이전의 나 자신을 버리고 감정과 관계를

버리고, 더이상 내가 아니게 된다. 상실은 예외가 아니라 일상이 되어버린다. 그걸 알아버렸다.



그렇다면, 목까지 음식을 채워넣은 듯한 불편함 속에서 생각한다.

허무하다. 대체 난 뭐란 말이냐. 비록 지금 이런저런 것들로 '나'를 감지하고, 내살점이라 느끼고, 이게 나다..라고

느끼고 있지만. 어느 순간 고름처럼 시간이 고이고, 시간과 더불어 계속해서 알게 모르게 씻겨나가고 있음을 불쑥

의식하게 된다. 페이지가 정해져 있는 일기장은 연필로 써야 한다.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내고 지우개똥이

수북해지면 다시 쓰고, 지우고 다시 쓰고. 사실 볼펜 따위도 주어지지 않았다. 튼튼한 동아줄이 내려와

죽을 때까지 쥐고 싶은 마음으로 영원한 것, 기댐직한 것을 찾지만, 고작해야 눌러 쓴 연필의 자국이 남을 뿐이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 공항의 기내 방송에서 문득 '노르웨이의 숲'정도를 듣게 되면 가슴이 아파온다. 그뿐이다.



산다는 게 상실해가는 거란 사실을 몰랐었던 것, 상실이란 게 존재의 의미..소위 '레종 데트르'라는 아이러니를

받아들일 준비도, 의지도 없었다는 것, 그리고 대략 스물에서 서른, 광석이형같으면 서른셋, 기억이 꽉 차오르고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시점이 지난후 그 안쓰러운 감각에 좀처럼 익숙해질 수 없었다는 것. 새롭게 대체되는

자신의 기억, 자신의 살점, 자기 자신을 바라보며 미리 그 상실을 예견한 채 압도당해 버리는 것. 그게 시간을

중간에 끊어버리고 자신의 소모를 막아버리곤 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상실감의 원천인 거 같다. 견딜 수 없어져

버린 게다. 비어져 가고, 잊혀져 간다는 그 느낌을.



사실 그러한 상실감을 껴안고 살아가려면 세가지 정도, 선택지가 있다. 무언가 영원한 존재를 찾아 몸을 의탁하고

정신을 맡기는 것. 신이 되었건 구도가 되었건..인간으로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을 영원성이라는 개념을 빌려오는

것. 아니면 상실감에 익숙해지고 그러려니...무뎌져 버리는 것. 원래 그런 거야, 시간이 약인거야..라는 말이 바로

그런 거다. 살아남기위한 전략으로서의 상실. 상실의 의무에 충실한 삶을 살아라 아버지는 말씀하셨지, 그런거.

그것도 아니라면, 글쎄...피칠갑을 한 영혼으로 꿋꿋이 살아가는 거다. 아프고, 절그럭거리고, 공허하고, 옆구리

어귀에서 콸콸대며 무언가 쏟아져나가버리는 느낌을 선연히 간직한 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막되먹은

깡다구로 살아보는 거다. 적어도...잎새 하나 띄운 물잔 건넬 사람은 만날 수 있을 게다. 내가 잊었어도

날 기억시켜 줄 친구는 있을 게다. 날 나이게 하는 것들..조금은 더 지탱시켜 줄 안정감과 안온함으로 위로삼을 수

있을지 모른다.



비록 일상적인 상실이 주는 피폐함과 무의미함을 이길 수야 없을지언정.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데야..

그랬던 거 같다. '재미없다'는 말을 연발하는 친구녀석이나..뭔가 지쳐 보이는 사람들, 힘들고 우울하고 불안정해

보이는..나 역시. 의식했건 못했건, 환상이나 동화처럼 느껴지는 어릴 적과는 달라진 무언가가 있음을, 감지해

버린 거 같다. 한번 변하면, 다시 돌아갈 수는 없는 거다. 돌이킬 수 없는.



서른 즈음에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연기처럼
작기만한 내 기억속에 무얼 채워 살고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수 없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 보낸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있구나

어제 산 김광석 인생이야기 씨디.

사실 광석이형 노래는 전부 엠피쓰리로만 있었어서 그가 라이브 공연서 청중에게 조곤조곤 들려주던 이야기는

여즉 못 들어봤댔다.


그는..환갑 때 번개불에 맞은 듯한 느낌으로 사랑을 시작해보고 싶다고 했고, 로망스의 'ㄹ'만 들어도 가슴이

뛴다고 했다. 마흔 살에는 몸에 체인좀 감고 할리데이비슨을 사서, 세계여행을 가고 싶다고도 했다. 여행이란 거

...살아가는 거랑 똑같다면서.


남들이 이상하게 볼만한 나이에도, 버스칸에 앉아 문득 들리는 노래소리에 눈물이 고이기도 하고-그리곤

다시 부른 노래가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라고 했다-노래 녹음을 하면서도 문득 목이 메여와 결국 술을

마신 채 녹음을 진행하기도 하고. 청중에게 말을 건넬 때, 그는 호흡의 묘미를 알고 있었다.

적절한 타이밍의 적절한 크기를 가진 쉼표, 감정의 교통을 위한 강약 중강약의 밀고 당김.

그래서 그의 ㄹ은 더더욱 로맨틱했다.


라이브 공연 실황을 담은, 그가 스스로 세상을 등지고 하염없이 흘러가는 시계추를 스스로 멈춰버리기 고작

반년 전쯤의 그의 음성..그는 환갑을 이야기하고, 꿈을 이야기하고. 살짝 지친듯한 그러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노래하고 있었다.


이미 죽어버린 사람이 죽음을 이야기하고, 꿈을 이야기하고. 광석이형이 자꾸 말을 걸어와서..4시에야 씨디피

배터리가 나가고 그제야 잠들수 있었다. 끼적대며 낙서도 하고, 일기도 쓰고..


김광석...광석이형. 그가 왜 죽었는지,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었던 밤이었다.

난 이해한 듯 싶다..고 생각했다.



(이데올로기전이다. 이데올로기전에서도, 근래의 과학전에서처럼 정밀한 외과수술과 같은 surgical strike,

국부공격이 필요하다.)


다물으다. (잃은 것을) 되찾는다는 뜻을 지녔다는 우리의 고어로 알려진 이 단어는, 80년대 초 민족주의와

민족사관의 열풍을 선도한 베스트셀러 '다물'로 처음 소개된 바 있다. 식민시기 일제의 잔인한 악행과 천여번의

침탈만 당했던 애끓는 약자의 비애를 미래 언젠가 통일한국의 기개와 대비시키며 식민사관의 사슬을 끊어내자는

줄거리의 소설이다. 언젠가 '그 때'가 되면, 남북한의 통일은 물론 토문강 이남의 연해주, 만주를 되찾고 (여전히

일각에서 주장되듯) 산둥반도 부근의 동중국까지 '다물'하여, 토끼같은 형상의 한반도에 짓눌려있던 한민족의

기개가 되살아나 평균신장까지 서구인보다 더 크게 된다는 거다. 그게, 우리가 다물해야 할 세계최강 최고민족

최종 버전의 역사이자, 원래의 우리모습이라는 주장. 흔히 민족사관이 빠져버리고 마는, 결과적인 자기 부정 내지

자기 혐오의 모순이 극단적으로 나타난 소설이다. 형이상학적인 또다른 목적론과 병든 인간.



아직 주몽이 이끄는 일단의 무리들이 내건 '다물多勿'의 의미는, 수세적인 상황인지라 그 외연이 적절히 통제된

상황에서 그나마 다소간의 설득력과 적실성을 확보하고 있다. 지역-내지 당시의 전세계-패자인 한나라와 이에

기댄 부여에 대항해서, 상실한 삶의 기반(다소 서정적), 혹은 고토(다소 국가주의적), 혹은 민족의 터전

(다소 선동적)..이랄까, 뭐가 되었던 간에 그 땅뙈기를 되찾겠다는 데에만 제한되어 있는 것이다. 뭐..물론 그 땅에

'백성이 주인되는 땅'을 어떻게 만들겠다는 것인지, 왜 하필 주몽이 왕이 되어야 하는지, '이 땅 위에서 가장

강대하고 융성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 고토만 회복하면 되는지 아님 어디까지 쳐부셔야 가능해지는지, 왜

전쟁에서 잔인하게 죽어나가는 건 '주몽의 착한 백성'과 '적들의 무장한 병사'들 뿐인지 등등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것들투성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고대 왕국의 성립을 위해 제창된 '되찾음'의 이데올로기는 적어도 상실한

그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제시되고 있을 때, 그리고 상대편이 그에 대항하여 무언가 더욱 설득력있고 피끓는

명분을 제시하지 못할 때 강력한 호소력을 갖게 된다. 아무래도 목표로 삼아야 할 대상의 외연을 좁히고 명확히

할수록 유리해지는 거다. 지금의 미국이 제시한 '테러와의 전쟁'이란 이데올로기가 그 외연을 이슬람 문화

일반으로 넓혀버리고 말아 더욱 곤란해지고 만 것은 반대의 사례일까.



고구려의 역사는 태왕사신기로 이어지면서, 아니 거기까지 나가지 않더라도 당장 어느정도 고구려의 기틀이 잡힌

후에는, '다물'이란 단어가 폭주하기 시작한다. 외부의 제약으로 눌려있던 그 폭력성과 저속성이 드러나는 것

뿐이지만. 물론, 당시 고구려가 실제로 '다물'을 의식적인 이데올로기로 차용했는지는 모르겠지만-고구려

초기에 건원칭제하며 '다물'을 연호로 썼다는 설도 있다만-모든 국가, 조금 줄이면 고대국가는 동일한 행태를

보인다. '다물' 등 나름의 관제 이데올로기를 동원한 정복 전쟁. 더이상 우아한 '역사강역'의 문제나 합리적

(국제법적?)인 영유권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전쟁을 위한, 그리고 전쟁을 수행할 백성을 동원하기 위한, 혹은

(아직 이데올로기가 백성에게까지 유효하지 못하다면) 자신의 정복욕을 채우기 위해 스스로 납득하기 위한

핑계거리일 뿐이다.



독도의 영유권이 한일 중 어디에 있던 큰 상관이 없는 것보다 더, 주몽이 옛 조선의 영토를 다물하던, 대조영이

발해를 꿈꾸던, 그건 사실 사는데 별 상관 없는 일이다. 하잘것 없는 민족적 일체감을 5분정도나마 느껴보거나,

우리민족도 이만큼 해낼 수 있다는 이중으로 왜곡된 자기 비하에 빠지고 싶다거나..이런 건 비추. 그저 하나의

퓨전사극으로만 볼 수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암만해도 붉은악마가 재등장시킨 '치우천황기'나 민족주의를 빙자한

온갖 극우주의적인 주장들과 종교들이 낭자한게..일본이 뭐만 하면 헤드라인으로 '극우주의 부활' 이러는데

사실 한국이 더 문제다. 멀쩡하게 잘 사는 인간들을 갑자기 한이 가득한 못난이로 비하한 채, 과거 '깃발을

꼬나들고 대륙을 호령하던 영웅'을 처방하는 민족주의(내지 민족사관)는 이미 정부의 FTA 옹호 광고에서 그

절정에 달했다. 미국하고 경제 자유화하자는 거지, 누가 깃발쥐고 말달리며 쳐들어가자했냐 말이다. 그런

메타포가 정부에서조차 흘러나오는 상황이라니..볼 때마다 참..가슴이 덜컥덜컥한다. 조금만 비정상적인 상황에

처하면, 이 병든 인간들은 영웅을 부를 게다. 전쟁을 부를 거 같다. 아니, 이미 전쟁과도 같은 사고방식은

시작된지 오래다. 우리는 이미 전쟁에 동원된지도 모른 채로, 나와는 상관없는 전쟁중인지도 모르겠다. 대개

은폐하고 있는 사실이지만, 자기가 순순히 죽으러 나가는 게 아니라, 상대를 죽이러 나가는 게 전쟁이다.



(민족주의는 식민주의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전도된 이미지 그 자체일 뿐이다.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은 단지

'일본인이 없는 일본의 지배'를 고도화했을 뿐인지도. sub-altern학파의 이야기.)

#1. 엊그제는 성대에서 진중권의 르네마그리트 강연을 들었다. 진중권이 애초 미학자였단 사실은 한동안 잊고

있었지만, 그의 목소리가 '왕의남자'나 '타짜'에 나왔던 유해진과 똑같단 생각은 들을 때마다 하게 된다.

개인적으론, 내가 많이 겹친다고 생각하는 인물. 정치적인 입장이나 그걸 표현하는 방식, 그리고 말투도 조금.

그는 하이데거의 '존재체험'이라는 단어로, 일상성에 함몰된 사물을 복권시키는 마그리트의 예술을 해명하려

했다. 일상적으로 친숙한 이미지를 고립시키거나, 중첩시키는 잡종화의 기법은 우리가 사물에 부여한 도구적,

실용적 의미를 벗겨내고자 하는 시도라는 해석. 존재하는 세계에 대한 메타적 해석과 비판적 재구성, 그건

내가 마그리트를 예술적 의미의 좌파라 부르고 싶은 이유다.



#2. 그의 그림인 줄 모르고 좋아했던 몇개의 작품들이 있었다. 진중권의 강연회 다음날에는 세시간동안 그의

전시회에서 놀았다. 일단 한번 쭉 돌고, 빽빽한 인파를 피해 다시 한번 거닐면서 맘에 들었던 그림들만 다시 보기.
 
이런저런 작품들이 내 걸음을 잡고서 놔주지 않았지만 그다지 리뷰는 내키지 않으므로 생략. 그저..단지 나뭇잎과

비둘기를 합쳐놓은 그림들보다..'눈물의 맛'이라는 제목의 그림이 훨씬 맘에 들었다. 이런 그림에다가, 송충이

하나가 커다란 나뭇잎-새(?)를 갉아먹고 있는 장면이었는데, 요새 주위에 하도 사랑 문제로 아파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랬는지..와닿았다. 눈물의 맛은 누가 보고 있는 걸까. 새의 가슴을 갉아먹는 송충이? 가슴이 휑하니

갈아먹힌 새? 둘다? 누가 누구를 울게 했고, 누가 누구의 눈물을 맛보고 있는 걸까..라는. the flavour of tears.

오케이, 그림 찾았다.ㅋ

사용자 삽입 이미지



#3. 이레네, 혹은 아이린(Irene)이라는 인물의 발굴.
 
첫째, '이레네 혹은 금지된 책'이란 작품. irene의 철자와 어디로도 갈 수 없는 계단이 그려져 있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둘째, '대화의 기술'이란 작품. 다소 해석하기 쉬운 듯한 이 그림에는, 그려진 글자가 숨어있다. 내가 보기엔

IRENE정도로 보이는데.

사용자 삽입 이미지

 


셋째, 마그리트가 찍은 무성영화를 보면 Irene이란 인물이 종종 등장한다. 뭉실대는 궁금증을 참을 수 없어

도슨트에게 질문했더니, 그녀는 그의 가장 친한 친구의 와이프였다나. 음..그래서 저 그림의 밑에는 남자 둘이

서 있는 건가. Irene이 저만큼 커보였을 수도, 그녀를 저 불분명한 글씨만큼밖에 이해하지 못한 걸 수도, 혹은,

위태롭지만 아름답게 쌓아올려진 저 돌들처럼 그녀와의 추억을 떠올리는 걸 수도. 어쨌거나, 어쩐지 공식적인

사생활이 깔끔하다했다. 머..말년까지도 마그리트 부부는 무지 행복해 보이긴 했지만. 아, IRENE을 마그리트와

묶어보는 건 어디까지나 내 상상.



#4. 부모되긴 무지 힘들 거 같다. 평일이었고, 오전이었음에도, 인간들이-특히 학부형과 아이들이-파도처럼

철썩댔다. 애들한테 쉼없이 질문하거나 설명하거나..이건 뭘까, 저건 어떻게 생각하니, 이런 열린 질문은 그래도

무언가 귀를 기울일 만한 아이의 대답을 유도하지만, 표현기법이 어떠니 저 사물은 무엇을 의미한다느니 등의

진부하고 꽉 막힌 설명은 참..힘들어 보였다. 열을 올리며 설명하는 어머니나, 지루하고 다리아파하는 아이나

서로 못할 짓 같기도 하고. 인터넷에서 이번 전시회 관련해 뭔가 찾아봐도 마찬가지다. '검증받은' 작품들만

그림파일로 쉼없이 전파되고, 그에 대한 '검증받은' 감상 역시..들불처럼 번져나간다. 작년 피카소전때도, "난

뭔지 잘 모르겠고 뭐라 의견을 낼 만한 자신도 없지만, 내가 긁어온 글에 의하면 대단하다더라, 이그림이

대단하다더라"..거개가 이런 '안전한' 태도다. 흠...싫어.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