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터키는 뭔가 심심하다. 차가 달려도 빵빵거리지 않고, 사람들이 막무가내로 무단횡단을 하지 않으며, 공항도

좀더 럭셔리한 티가 풀풀 난다. 물론 터키항공의 불친절과 덜된 서비스정신엔 할 말 없지만, 적어도 트랜짓 동안 쉬라고

별 넷짜리 호텔을 제공했으니 그 또한 봐줄 수 있다. 밤 3시 45분 비행기로 날아서 6시에 이스탄불을 다시 도착한

참이었다. 자, 이제 저녁 8시 비행기 타기 전까지는 12시간 정도 시간이 있으니 뭘 할지 생각했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번 하는데 꾸정물이 줄줄 나온다. 그런 시설에서 한번 씻고 났더니 피로가 대번에 풀리는 느낌,

대신 무지하게 배고파져서 일단 에미뇨뉴로 나와 고등어케밥부터 먹었다. 역시 맛있다. 파샤 모스크를 찾아가서 기대

이상의 인테리어를 좀 인상깊게 봐주고, 슐레마니에 가서 그들 술탄들의 무덤을 먼저 보았다. 천년쯤 된 무덤들이

그토록 고스란히 남아있다니, 종교의 힘이 아마도 그 시간을 지켜냈으리라. 도저히 눈이 감기고 피곤해서 모스크의

천장 그림을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여기 터키의 사원들은 그다지-아니 절대-편히 쉬고 누워 잠잘 만한

정도의 분위기가 안 되었지만, 어쩔 수 없이 구석에 가서 벽에 기대앉아 한시간쯤 잤나.


주섬주섬 일어나 한바퀴 돌며 인사해주곤, 중심가 산책이나 어슬렁대며 하기로 했다. 그랜드 바자르 한번 돌아보고,

이집션바자르도 한번 돌아보고, 블루모스크까지 걸었다. 도중에 격하게 친절했던 삐끼 아저씨들한테 잡혀서

양탄자 가게에 앉아 설탕 듬뿍 들어간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뜬금없이 정치학 얘기까지. 그리곤

이집트 카르낙 신전에서 들고 와 이스탄불의 한 광장 복판에 서있는 오벨리스크에게 그곳의 안부를 전해주었다.


다시 블루모스크다. 근데 이집트를 거쳐 다시 바라본 이곳은, 정말 시장바닥이다. 전혀 모스크로서의 기능,

성소로서의 아우라를 잃은 채 그냥 관광지같다. 애들 뛰어다니고 단체관광객 줄서서 돌아보고 다니고. 그냥

한군데 퍼져 앉아 이리저리 고개 갸웃대며 바라보고 싶었는데, 왠 이상한 관광객들이 같이 사진찍자고 하질않나,

아님 애들이 놀자고 장난걸질 않나..머 나름 전부 여자였으니 불만이야 없었지만. 내가 원했던, 이집트에서

만끽했던 그런 분위기는 아무리 기다려도 절대 나올 법 하지 않아 걍 나와버렸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