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관 관저에 들어섰다. 중간에 좀 문제가 생겨 알제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헌화하는 기회는 사라졌다.

마음이나마, 그의 인간적인 면모와 문제의식..들에 흰 국화를 바친다.

유실수가 있는 대사관저 앞마당에서 벌어진 조촐한 만찬이었다. 날씨는 선선했고, 지중해를 접한 터라 다소 끈적하지

않을까 했던 예상은 빗나갔다. 뽀송뽀송하고 시원한 바람. 사계절이 뚜렷하다는 한국의 날씨가 사실 그렇게 좋은 건

아니지, 여름철의 끈적하고 짜증나는 더위라니. 그치만 이곳의 푸르름도 5,6월 한때라고 했다. 그 이후엔 누렇게

말라붙어 죽어버린댔다.

조그마한 양 한마리가 통째로 구워져 나왔고, 현지음식과 한식, 그리고 과일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열여섯시간에

걸친 비행, 게다가 에어프랑스의 구리구리한 기내식에 질렸던 후라 다들 지쳤고 굶주려 있었던 듯.

옆의 어떤 상무님한테 물었더니 제라늄이라던데, 맞나 모르겠다.

하얀 대사관저 창가에 놓여선, 격자무늬 방범망 사이로 삐죽삐죽 꽃대궁을 내밀은 빨간 꽃무더기들.

대사관저 입구를 지키고 섰는 경비, 그 너머로 보이는 다른 고만고만한 건물들.

콧수염이 그럴듯한 관저 경비 아저씨는 마치 어렸을 적 '아람단'을 연상케 하는 하늘색 반팔셔츠에 곤색바지를
 
입고 있었다. 오른가슴팍에 붙은 태극기까지.

파리드랑 내일 배차계획에 대해 이야기하러 관저 밖으로 나갔다가 발견한 초소. 초소에 거대하게 그려져있는 저

태극무늬라니. 이왕 그릴 거면 사방 귀퉁이에 궤도 함께 그려넣던가.

어느새 하늘도 어둑어둑해지고, 베이지색 관저 건물은 역시 군청빛을 금세 머금고는 사위어간다. 아마 아까

황금빛 석양이 내리쬘 때 역시 제일 먼저 반짝거렸을 거다.

초록빛 잔디가 폭신한 마당에 조명이 밝혀졌고, 알제리 와인을 홀짝거렸다. 부쩍 서늘해진 기운이 그나마 남았던

한줌의 더위조차 사그라뜨리고 있었다.

그림같이 꾸며진 관저 입구. 온통 하얀색으로 칠해진 벽면, 방범망, 현관, 하얀색 셔츠를 입은 웨이터..그 풍경에

내려뜨려지는 하얀빛 조명.

벽 한쪽에 걸린 주먹만한 놋쇠종이 미풍을 타고 땡그랑거렸다. 이제 내일부터 2일동안 조찬, 합동회의, 오찬,

분과별 회의, 만찬, 장차관 면담, 현장 방문...국제행사 종합세트. 각오를 단단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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