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빈치 코드'의 배경이 되었던 교회이자, '사디즘'이란 단어를 만들어낸 마르키 드 사드, 또 보들레르가 세례를

받은 곳이 바로 이 곳, 생 쉴피스 성당이다. 파리에서 두번째로 큰 성당이자 세계에서 가장 큰 파이프 오르간이

있다나. 그렇지만 그런 식의 사이즈 과시에는 별 관심도 없었고-사실 다녀온 후에야 알게 된 정보들이다-게다가

내가 갔던 작년 9월에는 한창 가림막으로 온통 둘러친 채 공사중이었다.


그래도 앞에 있는 거대한 분수 조각상이 꼭 맘에 들었었다. 묽은 초코렛이 흘러내리는 이층 케이크처럼, 보드라운

물살이 층층이 흘러내리는 그 멋진 광경, 그리고 그 소란스럽지만 유쾌한 분수대를 향해 둥그렇게 자리잡은 온갖

그림쟁이들. 그림으로 밥을 벌어먹는 사람인지, 단순한 취미로 그리는 사람인지 일군의 사람들이 그렇게 분수를

꼬나보며 살짝 인상쓰고 있는 풍경에 나도 녹아들고 싶었다. 그림을 배워보고 싶단 생각이 살풋.

생제르맹 거리에서 친구를 만나 점심을 먹기로 했는데, 갑작스레 비가 내렸다. 파리의 날씨란 게 워낙 햇빛도 귀한

데다가 날씨도 대개 꾸물꾸물하기 마련이어서 사람들은 갑작스런 비에도 별로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더러는

저렇게 의연하게 비를 맞으며 가던 길을 가고, 더러는 잠시 근처 까페에 앉아 비를 긋기도 하고.

비 내리는 풍경을 구경하는 걸 좋아한다. 김한길의 소설에서 얼핏 본 구절인 듯 한데, 비가 내리면 사람들은

조금씩 더 착해 보인다는 느낌. 수천년동안 인류는 비를 맞아왔지만 여전히도 비를 긋는 장비라곤 얄포름한

비닐 조각 하나에서 크게 진보하지 못했다.

비가 내리면, 사람들은 살짝 '어쩔 수 없다'는 체념어린 표정을 지으며 거리로 나선다. 서울에서도, 파리에서도.

부슬부슬 내린 비였는데, 친구와 맥주 한잔 하며 돌아본 거리는 어느새 흠뻑 젖어서 번들번들거릴 정도다.

생제르망 거리면 나름 한국의 대학로에 비길 수 있을까, 번화가라긴 뭣하지만 그렇다고 고즈넉한 교외라거나

외곽지역은 분명히 아닌데...쏴아 내리붓는 빗소리에 묻혀 외려 조용해진 거리.

나서기로 했다. 금방 그칠 비는 아닌 거 같아, 우리도 의연히 저 비맞고 다니는 사람들의 대오에 합류하기로 결정.

가게의 처마 끝에서 똑, 똑, 떨어져내리는 빗방울을 포착하고 싶었는데 왠 의식치 않은 아가씨의 뒷모습만

도촬해 버린 사진이 나왔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모노프리(MONOPRIX)'에서 장을 보고 숙소에 돌아가기로 했더랬다. 외국의 마트를 돌아보며

한국에서 못 본 것들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당장 쇼핑한 물건들을 담는 바구니부터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바퀴달린 바구니에서 길다랗게 손잡이가 당겨져 나오는 형태, 무식하게 큰 카트를 끌 필요도

없고, 무거운 바구니에 절절 맬 필요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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