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사유 궁전도 멋지고 중간중간 박혀있는 별궁들도 이쁘지만, '베르사유의 장미'라는 만화책 제목처럼 그

잘 다듬어진 정원이 가장 볼 만한 거 같다. 기하학적인 구조를 감안하고 좌우의 균형을 감안해 다듬어진 정원.

이런 광대한 정원을 돌아보려면 걸어서야 택도 없는 거고, 미니 트레인이던 뭐던 잡아 타야 하는 거다.

게다가 중간중간엔 사람들 발길도 뜸하고 폐쇄된 구역이 있어서, 나처럼 길 잘 잃는 사람은 자칫 어딘가 산속에

홀로 버려진 느낌으로 삼십분쯤 패닉상태에 빠져 사방에 대고 '헬프 미'를 외치기도 하는 거다.;

사람 하나 없고, 비는 주룩주룩 내리고, 날씨는 어둑어둑해지고 추워지긴 하고, 사방으로 들뛰어보아도 대체

어디로 가야 베르사유 궁전이 나타날지 감도 안 잡히고, 무슨 덫에 갇힌 건 아닌지 계속 같은 곳만 돌고 있고.

길조차 어느 순간 끊어져 발목을 잡아먹는 높이로 잡풀떼기가 자라나 있단 걸 느끼면 문득 두려워지는 거다.

패닉 상태로 거의 울먹울먹한 지경에 이르러 숨이 턱에 차도록 한길로 달리다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불쑥 마주친

너무나도 한가로운 풍경. 저 아저씨는 내가 미쳤거나 누군가에 쫓기고 있다고 생각했을 거다.

어딘가로부터 여기로 들어온 길, 대체 난 어딜 헤맸던 것일까. 아무리 지도를 봐도 각은 안 잡히고, 어쩜

18세기 어디메로 이어지는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그 비밀의 문을 들어섰다 다시 나온 건지도 모른다.

누구도 아니라고, 혹은 맞다고 이야기할 수 없는 그런 순간 하나를 지나친 셈인 거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축축하게 흘러내린 머리도 좀 털고, 옷도 좀 털고. 잘못했음 베르사유에서 불귀의 객이

될 뻔 했다고, 또 인생의 위기 하나 넘겼다고 스스로 다독다독. 에구 대견해라.

벅찬 마음에 불을 질렀던 건 그렇게 삼십분 헤매다가 사람 사는 곳으로 다시 나와 두번째 만난 분이 한국말을

하시는 한국분이셨다는. 방금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노라며 흥분흥분하다가 기쁜 맘을 몸으로 표현.

연못에서 노니는 오리들이야 날개가 있어서 여차하면 푸드득 날아오르면 끝이라지만 나야 어디 그런가.

좀 차분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살아나왔다는 기쁨에 급방긋. 여긴 마리 앙투아네트가 일반인이 사는 것을

체험해보겠다며 만들었던 농사짓기 테마파크,

옆에는 포도농장에서 품종별로 제법 기르고 있었다. 여긴 멜롯.

그러다가 마주친 나무들, 왠지 동양식 분재를 한게 아닐까 싶게 다복솔이 나뭇가지마다 얹혔다ㅏ.

그 옆에선 아슬아슬한 가지 하나가 기어이 하늘을 향해 잎사귀를 틔웠고.

베르사유 궁전까지 내처 걸으면서,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속담을 실감했다. 그래도 화사하기만 한 꽃송이들.

돌아나오던 길, 이렇게 베르사유 궁전에서 근 여덟시간 방랑하며 생명이 경각에 달했던 위기 한번을 무사히

극복하고 한국으로 귀환할 수 있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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