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폭염으로 혀빼물고 헥헥대게 만드는 요즘, 주펀의 사당에서 만났던 혀빼문 저승사자 이야기.

주펀, 2차 세계대전 후 한동안 금광도시로 '골드러쉬'를 맛보며 불야성을 이뤘던 계단식 마을이다. 타이페이의

북동쪽에 위치해서 버스로 한 두시간 정도 달려야 도착하게 되는 마을.

점점 고지가 높아지는 느낌이 강하다가 어느 순간 확 트인 풍경, 한쪽으로는 산등성을 따라 계단형으로 차곡차곡

채워진 네모난 건물들, 그리고 반대편으로는 타이완 앞 바다와 굴곡진 해안선. 구름들은 저멀리로 밀려난 채

꼬물거리며 쭈삣거리고 있었다. 역시나, 작렬하는 태양.

주펀의 메인스트리트로 가기 위해서는 좀더 경사로를 올라야 했다. 무슨 등산로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각도를

보여주던 그 곳의 길들. 오랜 연륜이 묻어보이는 벽돌건물들과 삐뚤빼뚤한 시멘트 계단이 왠지 살갑다.

짙푸른 하늘, 눈부시도록 하얀 구름, 그리고 동굴속에라도 들어선 듯 온통 깜깜하게 만드는 먹장 그늘.

어느결에 아스팔트 차도 위로 합류해선 차들을 옆에 끼고 걸었다. 사방을 이리저리 찔러대는 화살표들은, 왠지

보는 사람을 더욱 혼란에 빠뜨릴 거 같다는 생각을 잠시.

주펀에 본격 진입했음을 알리는 듯 한 누렁색 기와지붕.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등이 축축해지는 날씨였다.

2층짜리 집의 1층과 2층 사이에 커다란 부채를 꼽아넣으면 이런 모양이 되려나, 얇고 넓은 차양을 올려친 채

햇볕을 가리고 느긋이 퍼진 채 쉬고 있는 주펀의 주민분들. 나름 신경써서 배열한 타일 무늬도, 꽤나 산뜻하게

빛났을 파란색 페인트도 과거의 흥청댔을 분위기를 소근대는 듯 싶다.

사실 조금 당황하고 있었다. 대체 어디서부터가 '관광용' 주펀인 걸까, (난 보지도 않았지만) 드라마 '온에어'에

나온다는 주펀, 여행자들이 찾는 주펀은 어디서부터일까. 원래 그런 거 신경쓰지 않고 외려 일상적인 공간에

더 재미를 느끼긴 하지만, 어쨌든 주펀에 왔으니. 조금 당황하던 즈음에 내가 가진 '주펀 지도'에 내 좌표가

찍혔다. 소영묘昭靈廟.

별 생각없이 들어선 내부에서 딱 마주친 기괴한 인형 두 개. 딱 보고 살짝 허걱, 했다. 이 섬뜩한 얼굴표정하며

두툼한 눈썹털, 그리고 귀신나올 것 같이 정신머리없는 복장까지. 첨엔 그 압도적인 표정과 복장에만 온통

시선이 쏠려 몰랐는데, 사람만한 사이즈의 유리장에 사람만한 사이즈의 인형이 들어가 있었다.

가만히 보니 정신사나운 모양의 꽃관도 쓰고, 왼쪽 분께서는 혀도 길다랗게 빼물고 계시고. 오른쪽 분께서는

금세라도 턱뼈를 덜컥, 떨어뜨릴 것처럼 덜그럭덜그럭. 얼핏 들으니 사람이 죽고 나면 그 영혼을 끌어가는

역할을 하는 귀신탈이라 하니, 우리 식으로 따지면 저승사자겠다.


뭔가 주펀에서 행사나 제례가 있을 때 장식장 속에서 뛰쳐나와 행렬의 앞에 서서 융숭한 대접을 받는 분들이

아닐까, 절로 나오는 이 존대말은 뭘까.

햇살이 드문드문 침투한 사당 내부, 한줌의 햇살이라도 사방에서 번쩍이는 금박과 장신구들에 기대어

사방으로 튀기고 있던 그 공간에서 개의치 않고 고요히 앉아 뭔가를 기원하고 있던 할아버지.

대만의 대부분 사당의 기둥은 전부 이렇게 용이 칭칭 감겨 있었다. 이곳 역시 격하게 올록볼록한 용들이

기둥마다 하나씩 붙잡고는 또아리를 튼 채 대가리를 정면 쪽에 대고 사람들을 위협하려 했다.

사당 옆에 있는 특이한 모양새의 탑. 아마도 도교식 탑이 이렇게 생긴 걸까, 싶도록 낯선 모양이었다.

탑 위에 올라선 사람의 형체하며, 탑의 기단마다 새겨진 사람들의 모습과 기왓장이 올려진 처마에서 꿈틀대는

구름같기도 하고 용비늘같기도 한 무늬.

왠지 사당에 들어설 때보다 더욱 뜨거워져버린 듯한 땡볕. 그나마 선선했던 사당 밖으로 나설 엄두가 나지 않던

발길이 문득 주춤했다. 사당 안의 반들반들한 대리석 바닥에 최대한 몸을 밀착시킨 채 완전 뻗어버린 검정개

한 마리를 밟을 뻔 했다.

아마도 그 검정개한테 밀려난 걸까. 땡볕이 지배하는 주펀, 용틀임한 기둥 뒤로 만들어진 가뭇한 그림자 속에

꼭 맞게 들어간 고양이 녀석도 정신을 놓고 늘어져 버렸다. 조금씩 움직이는 그림자, 슬쩍 삐져나온 꼬리와

뒷발이 맘에 걸려 조금 밀어넣어주고 싶었지만 잠이 깰까봐 참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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